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서울시 성북구 개운사 숭정기원후팔십년명 범종 (開運寺 崇禎紀元後八十年銘 梵鍾)

korman 2017. 4. 6. 17:28

서울시 성북구 개운사 숭정기원후팔십년명 범종 

(開運寺 崇禎紀元後八十年銘 梵鍾)



문화재명 : 개운사 숭정기원후팔십년명 범종 (開運寺 崇禎紀元後八十年銘 梵鍾)
지정사항 : 시도유형문화재 

소재지 : 서울특별시(特別市) 성북구(城北區) 안암동(安岩洞) 5가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의식법구

시대 : 조선 범종(朝鮮 梵鍾)년대1712年(숙종(肅宗) 38年,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80年)


요약정보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를 갖추고 있으며 종정(鍾頂)인 천판(天板)은 반구형(半球形)으 로 되어 있다. 천판(天板)과 종신(鍾身)이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3.5cm의 높이의 입상 대(立狀帶)를 돌리고 있으며 그 밑으로 일조(一條)의 태선대(太線帶)를 돌렸으며, 이 태선 (太線) 밑으로 직경 4.5cm의 범자문대(梵字文帶)를 돌려 종신(鍾身)과 정상부(頂上部)를 구 분하였다. 신라(新羅)와 고려종(高麗鍾)에서 보이는 뚜렷한 상대(上帶)는 없다. 융기된 일조(一條)의 태선(太線) 횡대상(橫帶上)에서부터 24.5cm 거리에 4개소(個所)의 유곽(乳廓)을 설치하였는 데 유곽(乳廓) 내(內)의 유두(乳頭)는 전부 화좌(花座)로 처리하였다. 유곽(乳廓)과 유곽(乳廓) 사이에는 두광을 갖춘 보살상(菩薩像)을 선조(線彫)로 장식하고 있으나 그 중 2구(軀)는 신체에 영락과 신광(身光)을 갖춘 보살상(菩薩像)이며 나머지 2구 (軀)는 운문(雲紋) 위에 합장(合掌)하고 있다. 특히 4구(軀)의 각 보살상(菩薩像) 좌측 하대(下帶)에는 각 1구(軀)씩의 사천왕상(四天王 像)과 유사한 신상(神像)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종신(鍾身)의 유곽(乳廓) 하단(下段)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의하면, 숭정기원후(崇禎紀元 後) 85年(1712) 임진(壬辰)은 숙종(肅宗) 38年(1712)임을 알 수 있어 이때에 제작된 종(鍾) 으로 보인다. 이 두 명문은 하단(下段)에 양각(陽刻)되어 있으나 후각(後刻)한 점자(点字) 명문(銘文)이 며 종신(鍾身) 상부(上部)와 하부(下部) 등에 가득히 각자(刻字)되어 있어 범종(梵鍾)의 몸 전체를 어지럽히고 있다.


실측정보

총고(總高); 110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cm, 유곽장(乳廓長); 29×19.5cm, 구경(口徑); 77.5cm, 종신고(鍾身高); 91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下帶幅); cm 종구후(鍾口厚); 6cm, 용뉴고(龍?高); 21.5cm, 천판경(天板 徑); 51.5cm, 유곽폭(乳廓幅); 3cm, 당좌경(撞座徑); cm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2017년 4월 6일 현재

http://portal.nrich.go.kr/kor/buddhistView.do?menuIdx=805&idx=34#link


=================================================================================================




개운사(開運寺) 숭정기원후팔십년명(崇禎紀元後八十年銘) 범종(梵鍾)(2-91, 3-68)


소재지(所在地) : 서울특별시(特別市) 성북구(城北區) 안암동(安岩洞) 5가

연 대(年 代) : 1712年(숙종(肅宗) 38年,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80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110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cm, 

유곽장(乳廓長); 29×19.5cm, 구경(口徑); 77.5cm, 종신고(鍾身高); 91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下帶幅); cm 종구후(鍾口厚); 6cm, 용뉴고(龍鈕高); 21.5cm, 천판경(天板徑); 51.5cm, 

유곽폭(乳廓幅); 3cm, 당좌경(撞座徑); cm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를 갖추고 있으며 종정(鍾頂)인 천판(天板)은 반구형(半球形)으

로 되어 있다. 천판(天板)과 종신(鍾身)이 접하는 계선상(界線上)에는 3.5cm의 높이의 입상

대(立狀帶)를 돌리고 있으며 그 밑으로 일조(一條)의 태선대(太線帶)를 돌렸으며, 이 태선

(太線) 밑으로 직경 4.5cm의 범자문대(梵字文帶)를 돌려 종신(鍾身)과 정상부(頂上部)를 구

분하였다.

 신라(新羅)와 고려종(高麗鍾)에서 보이는 뚜렷한 상대(上帶)는 없다. 융기된 일조(一條)의 

태선(太線) 횡대상(橫帶上)에서부터 24.5cm 거리에 4개소(個所)의 유곽(乳廓)을 설치하였는

데 유곽(乳廓) 내(內)의 유두(乳頭)는 전부 화좌(花座)로 처리하였다.

 유곽(乳廓)과 유곽(乳廓) 사이에는 두광을 갖춘 보살상(菩薩像)을 선조(線彫)로 장식하고 

있으나 그 중 2구(軀)는 신체에 영락과 신광(身光)을 갖춘 보살상(菩薩像)이며 나머지 2구

(軀)는 운문(雲紋) 위에 합장(合掌)하고 있다.

 특히 4구(軀)의 각 보살상(菩薩像) 좌측 하대(下帶)에는 각 1구(軀)씩의 사천왕상(四天王

像)과 유사한 신상(神像)을 배치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종신(鍾身)의 유곽(乳廓) 하단(下段)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의하면, 숭정기원후(崇禎紀元

後) 85年(1712) 임진(壬辰)은 숙종(肅宗) 38年(1712)임을 알 수 있어 이때에 제작된 종(鍾)

으로 보인다.


라 되어있다.

 이 두 명문은 하단(下段)에 양각(陽刻)되어 있으나 후각(後刻)한 점자(点字) 명문(銘文)이

며 종신(鍾身) 상부(上部)와 하부(下部) 등에 가득히 각자(刻字)되어 있어 범종(梵鍾)의 몸

전체를 어지럽히고 있다.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