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LIVE를 알아?
어느 날 TV채널을 돌리다가 CNN에서 잠시 멈추었다.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과의 교차 인터뷰장면이 나왔다. 채널 돌리기를 멈춘 이유는 그림과 자막이 그 때의 관심사였기는 하였지만 다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였기 보다는 화면 상단 오른쪽에 자주 없어졌다 들어왔다 하는 "LIVE"라는 자막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그 자막은 진행자가 인터뷰하는 사람에 따라 있다 없다를 반복하였는데 한참을 살펴보니 그 시각에 진행자와 인터뷰를 직접하는 사람에게는 LIVE가 주어지고 뉴스 시작 전에 녹화된 인터뷰에 대해서는 그 자막을 없애는 것이었다.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프로그램 자체는 생방송이었겠지만 CNN의 ‘LIVE’ 규정은 스튜디오의 생방 진행자가 아니라 관련 외부화면이 LIVE인지 녹화인지에 중점을 두는 모양이었다.
국내 스포츠방송의 야구 LIVE중계를 보고있다가 공수 교대시간의 광고를 피하고자 채널을 돌리니 그 방송에서는 내가 보던 팀의 지나간 회 경기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LIVE라는 자막이 있었다. 분명 LIVE중계를 보던 다른 방송에서는 8회를 마치고 막간 광고시간이었는데 이 방송의 이미 끝난 경기장면에 붙어있는 라이브는 뭔가 살펴보니 경기의 최종회는 아직 안 끝났지만 야구뉴스를 한답시고 슈튜디오에서 지나간 회의 결과를 하이라이트로 보여 주면서 진행자들이 그 시각에 설명을 곁들인다고 LIVE라는 자막을 넣은 것이었다. 계속 보고 있자니 이미 다 끝난 다른 팀의 경기에도 LIVE 자막은 매한가지였다. 라이브의 대상이 경기가 아니고 그 시각 스튜디오에 앉아있던 진행자들이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 진행자들의 모습은 잠깐씩 비치고 뉴스장면 거의 모두기 이미 지나간 경기들의 녹화물로 채워졌는데, 특히 스포즈의 경우 현장감이 생명인데도 불구하고 LIVE의 대상이 경기화면 자체가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몇 마디 거드는 진행자라는 게 좀 의아스러웠다.
올림픽이 끝으로 가고 있다. 공중파방송 모두 같은 경기를 같은 시각에 중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의 주간방송사에서 송출하는 올림픽 공식 표준화면을 받을 테니 중계진은 다르지만 화면 앵글도 모두 같다. 생중계도 있고 지연중계도 있고 재방송도 있고 하이라이트도 있다. 그러나 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공중파 방송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이 우측 상단에는 각 방송사의 이름과 함께 ‘LIVE’라는 자막이 띄워져 있다. 어떤 종목엔 중계화면 한 쪽에 Delay, Replay, 하이라이트라는 자막을 넣고 있음에도 그 옆에는 버젓이 LIVE라는 자막을 띄우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니들이 LIVE를 알아?”하듯이 생중계가 아닌 지연중계(녹화중계), 재방송, 편집재방송 모두가 LIVE로 통칭되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음인지 중계를 보던 한 사람이 모 방송사의 중계PD에게 공식질의를 하였는데 그 PD의 회신이 Delay, Replay, 하이라이트라는 자막이 들어간 경우에는 LIVE라는 자막을 쓰지 않는다고 알려왔다는 사연이 올라와 있었다. 그 PD가 어떤 중계를 담당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답변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의 중계에서건 LIVE라는 자막은 없어질 줄을 모르고 있다. 차라리 케이블 스포츠 채녈들이 공중파 보다는 솔직한 것 같다.
올림픽중계를 보고 있으면 ‘저런 용어나 장면은 중계진에서 시청자들을 위하여 추가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모르기는 하지만 나만 모르는 것은 아닐 것 같은 영어자막이나 장면들이다. 설명을 하는 방송도 있었겠지만 각 다른 경기마다 채널을 돌려가면서 보았지만 내가 시청한 경기의 중계진들이 그런 설명을 하는 것은 아직 들은 바 없다. 지금까지 Replay는 통상 생중계 도중에 지나간 몇 장면을 다시 보여주거나 그런 장면의 느린 그림을 보여줄 때의 자막으로 많이 보아오기는 하였지만 이번처럼 통중계에 그것도 부가설명 없이 영어로만 간단히 Replay라고 적었던 경기 중계는 본 기억이 없다. Delay 자막은 그리 익숙한 용어는 아니다. 아니 그 숱한 스포츠 중계를 보아 왔지만 솔직히 난 그 자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인터넷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화면에 LIVE라는 자막이 떠 있으니 생중계는 맞을 텐데 좀 늦게 시작된 것 아닌가 생각하였을 뿐이었다. 유도의 Golden Score가 그렇고 심판과 코치 간에 오가는 태권도의 카드가 나에게는 그랬다. 그 외에도 보충설명이 좀 있었으면 하는 익숙하지 않은 장면들이나 자막들이 있었지만 궁금한 것은 경기를 보면서 중간에 인터넷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단지 화면을 읽어주는 듯한 중계는 일반 시청자들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마칠 즈음 형님이 전화를 하셨다. “동생아, 재방송에 왜 LIVE가 들어가냐?” “전들 알겠어요? 다들 살아있으니까 그런가보죠.” 올림픽 중계 내내 어떤 경우에도 꺼지지 않던 ‘LIVE’를 보면서 CNN의 그 철저했던 LIVE 관리가 생각나는 동시에 외국의 올림픽 중계방송사들도 우리처럼 Delay나 Replay나 하이라이트에도 LIVE를 사용하였는지 궁금하였다.
2021년 8월 5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