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생각난다
최근 언젠가 북한의 김여정이라는 여자아이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한 이야기에 대하여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삶은 소대가리가 웃겠다”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 쪽에서 김정은에 대하여 좀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하여도 걸핏하면 자신들의 ‘최고존엄’을 모독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리 이야기 하여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이것도 ‘내로남불’의 본거지 중에 하나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모님 생각이 더 난다고 한다. 내가 나를 생각하여도 그런 것 같다.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손주들을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셨던 모든 것을 마치 복사한 듯 내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하여야 하고 또 그렇게 느끼는 과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받기만 하고 뭔가를 보답해 드리지 못하였다는 자격지심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부모님이 많이 그립다고들 하는데 나는 또 다른 이유로 어머니가 매일 생각난다.
내 어머니는 생전에 집안 식구들의 말이나 행동, 다른 사람들에게서나 사회적으로 어떤 어이없고 상식적이지 못한 것, 혹은 코미디 같은 현실을 접하셨을 때는 “삶은 개턱아리가 웃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김여정이 이야기한 “삶은 소대가리”와 일맥상통한다고도 하겠다. 단지 김여정이는 평양에 있고 내 어머니는 황해도 장연 출신이셨으니 같은 말이지만 각기 다른 지방에 따른 방언적 표현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의 행실, 덕목, 인격 혹은 하는 일에 대한 적합성이나 실력 등 많은 사람들에게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과 경쟁적 위치에 있는 사람보다 우월감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기는 스스로 전진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있고 경쟁자를 쉼 없이 흠잡으며 깎아 내려 자기가 상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경쟁자를 흠잡는 대신에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스스로 전진하며 상대를 평가해야 할 때는 무조건 깎아내리는 흠잡기 보다는 사실적 근거에 의한 논리적 주장으로 ‘비난’과 ‘비평’을 구분함으로써 상대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내 어머니의 말씀은 전자의 형태를 가리킨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였거나 하고 계시거나 앞으로 하시겠다고 연일 많은 분들이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신다. 코로나로부터 대통령에 이르는 길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별의별 사람들과 별의별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과 제대로 된 영양가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게 내가 자주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유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20년이 지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돌아가신 후에도 내가 언제 지금처럼 어머니를 생각한 적이 있나 하는 허망함이 떠오른다. 이 생각을 어머니께서 들으시면 ‘네가 언제 나를 그렇게 생각했냐? 삶은 개턱아리가 웃겠다.“ 하실지 모르겠지만.
뭘 듣고 뭘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TV뉴스에 귀를 귀울이다 곧 식상하여 리모컨의 스포츠나 다큐 채널번호를 꾹 누른다. 어머니의 인생 명언을 되뇌면서.
2021년 7월 16일
하늘빛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중 더위에 (0) | 2021.08.03 |
---|---|
한여름 사랑편지 (0) | 2021.07.20 |
이것도 피싱인가? (0) | 2021.07.11 |
백신에 먹먹해진 가슴 (0) | 2021.06.10 |
2021년 현충일에 (어느 어린 해병의 귀환) (0) | 2021.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