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총을 맞을 수 있다

korman 2021. 12. 14. 18:37

총을 맞을 수 있다

 

좀 오래되었다는 표현을 해야 할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 출장을 가면 출장지의 대중교통이 우리처럼 편리하지 못했던 관계로 목적지를 갈 때 마다 택시를 타던가 아니면 차를 빌려서 다녀야 했다. 그러나 짧은 기일 내에 여기저기 다녀야 할 장소는 많은데 계속 택시를 타면 주머니 속이 곧 보이기 시작하니 되도록 차를 빌려 지도를 봐 가면서 열심히 운전하고 다녔다. 지금에야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면 되지만 당시에는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아가야 했기 때문에 운전에 부담이 많이 되었다. 더군다나 남의 나라에 잠깐 다니러가서 익숙하지 않은 도로와 표지판을 마주해야 하니 어려운 점이 많아 늘 긴장하고 다녔다. 다행이 그렇게 다니면서도 교통경찰을 마주할 일은 없었으나 우리처럼 교통경찰이 “000 차 우측으로 대세요”하면 어찌하여야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늘 걱정스러웠다.

 

매번 출장계획이 잡히면 ‘주미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이 없나 검색을 해 보곤 하였다. 그러던 중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교포들에게 ‘운전 중에 경찰이 차를 멈추게 하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교육메뉴를 접하였다. 그 내용은 대충 ‘차를 멈추고 경찰이 다가올 때 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릴 것, 창문을 열라고 하면 얌전히 창문만 열 것, 면허증 보자고 하면 갑자기 면허증이 있는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을 게 아니라 주머니에 손을 넣겠다고 경찰의 허락을 먼저 받을 것, 자동차 등록증을 보자고 하면 넣어 놓은 대시보드를 무조건 열게 아니라 그게 대시보드에 있으니 열겠다고 이야기 하고 허락하면 열 것 등등’. 갑자기 예고 없이 행동을 하다 총을 맞을 수 있으니 명심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글을 읽는 중에 가끔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운전자가 내려서 ‘내가 뭘 잘못했냐’고 단속 경찰관을 밀어 붙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 우리의 경우와 비교하면 소름이 끼치는 교육이었다.

 

오래 전에 대전에서 칼을 들고 길거리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던 흉악범에게 총을 든 경찰이 총을 뺏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는 층간소음으로 흉기난동을 부리는 현장에 경찰이 출동했다가 범인을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경찰이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 그런 소식을 접하면서 그런 위험한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들은 총기류 같은 기본 장비를 휴대하고 있을 텐데 기본 장비들을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오히려 범인에게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경찰들에게는 범인에게 총기류를 사용할 때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테이저건이나 실탄을 발사해서 범인을 검거하였다는 소식도 많이 접했지만 그럴 때마다 언론들은 칭찬이 아니라 무기를 원칙대로 사용했는지를 놓고 경찰들을 주눅 들게 한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범인도 인간이니 기본권이 있겠지만 그러나 흉기를 들고 난동을 피우는 범인에게 그런 규칙을 온전히 적용해 가면서 범인을 제압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흉악범에게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경찰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도 범인에게 무기를 뺏기기도 하고 달아나기도 했다. 그래서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필요한 무기를 소지하고도 그걸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경찰들의 입장은 어떠하였을까? 아마 그들은 흉악범 앞에서 무기를 꺼내들기 이전에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관념과 잘 못 되었을 때의 언론의 질타가 머리에 먼저 떠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벅지를 겨냥한 총탄이 가슴을 맞출 수도 있다. 고의가 아니라 제압 과정에서 현장 사정상 그리되는 것이다. 총기사용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범인을 검거하였다 하여 그게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게 옳은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층간소음난동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이 파면되었다고 한다. 오늘 인터넷 뉴스엔 동 사건으로 언론의 질타를 받은 후에 경찰관들의 무기 사용이 대담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이야기는 경찰의 과잉대응이 염려 된다고 하였다. 흉기난동을 피우는 범인을 온전한 규칙과 언론의 질타를 염두에 둬 가면서 원칙대로 제압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 이유들로 경찰이 무기 사용을 제때 적절히 하지 못하고 망설인다면 그건 더 큰 사회적 손실이 될 수 있다.

 

경찰이 대담해 졌다며 과잉대응 운운하는 것은 경찰에게 흉기를 맨몸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흉기를 들고 덤비는 범인을 미국이나 선진국 경찰들은 어찌 대응하고 있는지 기사를 쓴 기자는 알고 있을까? 교민을 위한 주미대사관의 총을 맞을 수 있다는 그 운전교육 프로그램이 대변하는 것 같다.

 

2021년 12월 14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2InWFulVbY 링크
Winter sonata instrumenta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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