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4월은 잔인한 달

korman 2022. 4. 21. 20:45

동네공원 수변가

4월은 잔인한 달

 

시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4월이 오면, 특히 4월에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을 한다. 어디서 나온 문구인가는 따질 필요도 없다. 알건 모르건 이 구절은 4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문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미국계 영국시인 T.S.엘리엇의 ‘황무지(荒蕪地The Waste Land)’라는 장시의 ‘죽은자의 매장’편에 쓰인 첫 구절로 많은 사람들이 ‘4월은 잔인한 달’이라 기억하고 있지만 실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lest month)”로 번역되고 있다. 난 매번 4월이 오면 잔인하건 가장 잔인하건 간에 이 4월이 그 시인에겐 왜 잔인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늘 궁금하였다.

 

시 전편을 읽어보았다. 매우 어려운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는 것인지, 유럽인과 우리나라 사람 간에 4월을 느끼는 감정이 달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작가가 무슨 허무주의에 빠져 그렇게 쓴 건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기야 우리나라 작가의 시도 그 함축된 표현을 이해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원본을 번역한 한글본을 읽는 것이니 더욱 이해가 힘들 거라고 치부하기엔 참 묘상한 말들로 나열되어 있다. 영어 원본을 사전을 찾아가며 가장 현실적 의미의 변역을 이어간다면 좀 이해될 부분이 나오려나? 그러지 못하니 나부터라도 ‘4월은 잔인한 달’만을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시가 나오면 그 해설판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래서 인터넷에 이 시에 대한 해설을 찾아보았다. 시인의 시대적 배경까지 섞어가면서 시시콜콜 설명한 해설판을 읽기는 읽었는데 시는 철학판이요 해설은 추상판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해설은 더욱 난해하여 무슨 추상화를 보는 것 보다 이해가 더 어려웠다. 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해가 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일기장 쓰듯이 생각나는 대로 평범한 일상을 몇 자 적어보는 나 같은 문외한은 시 전편을 읽는 것이나 해설판을 읽는 것이나 모두가 고욕이었다. 해설에 해설을 곁들여주시던 고등학교 선생님이 문득 그리웠다.

 

그는 이어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피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하였다. 이 표현대로라면 그의 4월은 겨울보다 추웠고 동토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4월은 아름다움의 시작이다. 산야가 모두 푸르러지고 모든 꽃들이 시간적인 순서에 의하여 피어나고 바람은 가슴으로 맞아도 기분이 좋다. 그러니 우리의 4월은 겨울옷에나 잔인한 달이 될지언정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봄, 아름다움의 시작이 될 것이다. 하기야 유럽의 4월은 우리와는 다르게 계절로 치면 겨울에서 깨어나지 못한 달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영국이면 내 경험상 6월에도 우리 늦가을처럼 추운 적이 있었으니까.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로 시작되는 4월의 노래가 있다. 목련은 4월 양지에서는 일찍 피는 꽃이다. 노래에 나오는 베르테르가 괴테의 이야기와 같은 베르테르인지, 왜 목련꽃 아래서 편지를 읽어야 하는지, 목련꽃 그늘이 햇빛을 가려주기에 충분한지도 모르는데 4월이 잔인하다는 걸 어찌 알겠는가.

 

2022년 4월 2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p4S7FpkMhUA링크

Theme from "Somewhere in time" - piano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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