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
우리 속담 중에 ‘하던 짓도 멍석 깔아놓으면 안 한다’라는 게 있다. 좋은 행동에 대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에 빗대는 속담이다. 아마도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 짓을 멈추게 하려던 옛사람들의 고품위 아이디어로 보인다.
가끔 손주들이 모이면 어미 아비 외에 형제나 다른 식구 없이 혼자인 외손자 녀석이 누나들과 외삼촌 식구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누나들이 자기 기준에 맞추어 놀아줄 것을 요구한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누나들이 하고 있는 것을 방해하거나 소란을 피울 때가 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관심을 보이면 더 기승을 부린다. 아비나 어미가 혼자 방으로 데리고 가 문을 닫고 혼을 내도 별로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형제 없이 혼자 자라고 있는 부작용인 듯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외삼촌네 식구들과 사촌 누나들에게 반가운 표현을 한다는 게 지나치게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녀석이 그런 행동을 할 때면 내 처방은 긴급히 말려야 하는 아주 못된 짓이 아닌 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고 다른 식구들에게도 “절대로 아는 척 하거나 관심두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이 처방은 약효가 나타난다. 누구도 상대해주지 않으니 혼자 좀 그러다 재미가 없는지 스스로 하던 행동을 멈춘다. 관찰은 하되 말리면 더 하니 혼자 잘 해 보라고 멍석을 깔아주고 아무도 아는 척 안 하니 혼자 머쓱해 지는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 북한의 김정은이에 대한 소식이 거의 매일 전해진다. 새로운 미사일이나 군사행동이라면 몰라도 어디 조그마한 공장 같은 데를 시찰하더라도 사진과 함께 그 소식은 곧바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거들먹거리며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우리나라 대통령소식 보다 더 세세한 것 까지 전달받는 느낌이다. 나는 가끔 얼마나 많은 우리 국민이 이런 사소한 그의 행동에 관심이 있을까 생각한다. 또한 아무리 북한 소식이라도 이런 세세한 그의 움직임까지 전하는 것은 지면 낭비에 전파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국가적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위하여 그들의 군사행동이나 무기개발 및 최고 권력자인 그의 행동이 감시되고 관찰되어야 하며 그에 맞는 대처가 필요하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위험이 감지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공동 전략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 나는 그 ‘멍석’을 생각한다. 우리 안보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제재는 가하되 너무 많은 공개적 관심을 표하지 않으면 그의 행동이 어찌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 내 외손자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 좀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멍석이 아니라도 우리 국민들이 그가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하여 백마를 타고 달리던 흑마를 타고 설원을 질주하던 그의 모습에 그리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 말에서 떨어져 딴 세상으로 갔다면 모를까.
남북이 모여 무슨 행사를 할 때면 꼭 손을 붙들고 ‘우리의 소원’이라는 노래를 열창하곤 하였다. 그 가사 중에 내가 배운 것은 “이 목숨 다 바쳐 통일”이라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시대에 안 맞는다고 어느 정부에서 “이 정성 다하여 통일”이라 고쳐 놓았다. 북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도 그리 고쳐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우리는 시대를 핑계로 가사가 그리 고쳐졌다. 그런데 과연 이 시대에 그 노래를 불러야 할까 생각하면 난 이것도 그냥 멍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로의 이념이 다르고 원하는 통일 방식이 다르다. 그러니 그냥 멍석이나 깔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북한과의 경제적 차이를 고려할 때 얼마나 많은 우리 국민들이 이 시점에, 비록 우리의 방식일지라도, 통일을 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독일처럼 갑자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온다면 모를까 통일에 관한한 인위적인 것 보다는 기다림과 무관심의 빈 멍석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2022년 3월 17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3csayYsoiLY 링크
슈베르트 {백조의노래} 중 제4곡 '세레나데' D.957 / 바이올린 신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