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정리하나?
매해 12월 후반이 되면 지난해 12월에는 어떤 글을 썼나하고 찾아 읽어본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12월에는 세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비단 12월이 아니더라도 70이 넘으면서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세월타령이 많았던 것 같다. 보이지도 않는 것에 모든 사람들이 신경 쓰는 것은 세월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아들이야 세월이 빨리 가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뒤를 돌아보며 ‘그 때가 좋았지’하는 게 세월 아니겠나.
작년 연말에 버려야지 하고 들춰 놓고는 또 다시 집어넣었던 노란 대봉투속 서류들을 다시 꺼내 보면서 올해도 ‘이걸 버려야 하나’ 고심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서류들의 폐기연한은 5년이라는데 작년에 들춰보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봉투가 눈에 거슬려 다시 들춰내었는데 또 망설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 내 사적인 종잇조각들이니 내가 버리고자 하면 그런 기한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세월동안 가장 중요한 시기에 생성된 문서들이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을 버렸음에도 이것만은 견본으로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된 각종 영문, 한자 및 한글 계약서들이 그것이고 완치판결을 받고도 몇 해가 지난 집사람 수술 기록과 치료 기록들이다. 병원기록이라면 집사람 다니던 병원에 다 남아 있고 계약서라면 PDF로 스캐닝 하여 컴퓨터에 들어있는데 그 오래되고 불필요한 종이문서에 왜 그리 미련이 남는 것인지. 이것도 라떼근성일까?
연말에는 모두들 한 해를 정리한다고 한다. 모두들 무얼 정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각자 정리하고자 하는 것들은 다를 것이다. 보이는 것을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정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나도 하고자 하는 계획을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정리를 생각해 보았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버킷리스트를 만들었었다. 그야말로 버킷에 집어넣어야 할, 지금은 전혀 쓰임새가 없어 가지고 있으면 공간만 차지하는, 그래서 버려야 좋을 물건들의 리스트를 만들긴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 둘러보아도 버린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은 정리할 것이 없다. 책을 몇 권 읽어야 하겠다고 정해 놓기는 하였지만 그것도 작년에 비하면 모자라는 숫자다. 핑계를 대자면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어 동네에서 참여하고 있는 단체의 행사가 많은 해여서 시간이 좀 모자랐다고 하면 마음의 정리까지 되려나. 오늘 올해의 마지막 책읽기를 끝냈다. 이 책의 독후감 쓰는 것을 끝으로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정리를 했다고 위안을 삼아야겠다.
연말에는 또 많은 사람들이 내년의 계획을 세운다. 난 무슨 계획을 세워야 할까 생각해 보지만 뭐 신통하게 생각나는 게 없다. 있긴 있다. 버려야 할 것에 대한 버킷리스트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그걸 이월하여 실행하면 될 것이고 책읽기는 올해만큼만 하여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코로나를 겪으면 인사법이 많이 바뀐 듯하다. ‘건강하라’는 인사가 주를 이룬다. 건강이야 해야 하겠지만 이건 결심한다고 되는 건 아닌 듯싶다. 물론 상식선의 건전한 생활을 하고 각자 몸에 맞는 운동도 열심히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는 건강하리라 생각되지만 건강이라는 게 외적인 변수가 많이 작용하는 것이니 자신만 조심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내년에도 올해만큼의 건강이 유지되기를 바래본다.
동네의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며 어제 저녁 같이 한 잔 하던 젊은 친구들이, 젊다고 하지만 나 보다 젊은 것이지 다들 50은 넘은, 나에게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뵐 때 마다 매번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인데 행복을 뭐라 생각하십니까?” 내 대답은 “행복이 뭐 별거냐? 지금처럼 그대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지”
2023년 12월 20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ApCL2GomTD4 링크
Passacaglia - Handel/ Halvorsen (Relaxing Piano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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