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3일의 가을여행
수원역을 출발한 KTX가 신경주역에 도착한 때는 예정보다 7분 정도가 늦은 시각이었다. 늦은 데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심심하면 터지던 스피커에선 감감 무소식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아무런 설명이나 사과도 없었다. 아마 7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승객들에게 뭔가를 알려야 하는 분이 코리언타임에 대한 인식을 아직 가지고 있다면 7분이야 7초에 가까운 시간이겠지. 모든 탈것들이 항상 정해진 시간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시간 남짓 가는 시간에 7분 정도면 작은 시간도 아니거늘.
중학교 때는 수학여행으로, 첫째가 서너 살 먹었을 때쯤에는 가족 여행으로 왔던 기억과 함께 KTX를 탔다. 자유롭게 배낭 메고 떠나보자고 여행 계획을 세우며 이미 인터넷을 검색하여 내가 타고 다녀야 할 대중교통에 대하여 스크랩을 하고 전화기에 모두 저장하였기로 기차역에서 내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이미 알았지만 좌석버스가 불국사입구까지 가는 시간은 평일 오전인데도 40분이 넘게 소요되었다. 10월 말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녘 측에 속한 지방인데도 불국사를 둘러싼 나무들은 벌써 겨울을 맞이하려는 듯 모든 단풍을 떨어내고 있었다. 코로나를 벗어나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 등으로 불국사를 찾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나목의 가지 사이를 타고 퍼져나가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60년 전 수학여행이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모양이야 변할 리 없지만 40여 년 전에 밟고 올랐던 사찰 앞 계단은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문화재를 보호하는 정책으로 다시 오를 수는 없었다.
불국사에서 경주박물관을 가기 위해 타야하는 버스는 20여분이 지나서야 내가 서 있는 정류장에 모습을 보였다. 어디로 가려는지 이쪽이나 건너편이나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버스 안에는 영어, 프랑스어, 동남아 언어, 다른 유럽언어 들이 섞여 사람에 의한 혼잡도보다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언어가 섞이며 정류장 안내 방송과 함께 전해오는 언어의 혼잡은 흡사 소음에 가까웠다. 불국사에서 박물관까지 또 다른 40여분이 지났다.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봉덕사종)과 금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경주박물관에서는 이 두 가지만 보아도 박물관에 온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허튼소리는 아님을 느끼며 천천히 산책하듯 홍콩 단체관광객 소리가 떠들썩한 동궁과 월지, 해바리기꽃이 무성하여 모든 사람들이 사진 포인트로 차례를 기다리는 첨성대, 잔디가 잘 다듬어진 거대한 두 무덤사이에서 붉은 저녁 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것 같은, 가을 잎을 다 털어낸 감나무를 바라보며 길가의 노란 가게에서 10원빵 하나를 집어 들고는 집사람과 한 입씩 베어 물며 부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배낭은 호텔에 맡겨 놓고 여권만 주머니에 넣었다. 아침 호텔문을 나서다 부산 사투리가 시끌벅적한 택시기사들에게 걷는 것과 택시를 타는 것 중 어느 쪽이 빠르냐고 물었다. 걸어가는 쪽이 빠르다는 대답과 함께 그 분들 중 한 분이 “대마도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되게 무시한다고 들었다”며 일본어로 무언가를 열심히 이야기 하였다. 말은 못 알아듣겠지만 그게 욕인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국인 출입금지’, ‘쓰레기 버리지 마시오’ 등등 대마도에서 지켜지지 않는 우리의 사회성에 대한 대마도인들의 지적에 대한 반감인 듯싶었다. “다 행동하는 대로 대접받는 겁니다.”라고 대답하고는 페리터미널로 향했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일주일 정도 머무르는 양 큰 트렁크를 가지고 배안으로 들어왔다.
도착한 배라고는 부산에서 떠난 배 한 척뿐, 400명정도 되는 사람에 대한 입국(입도)심사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걸려도 너무 오래 걸렸다. 배가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경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단체 버스가 기다리는 터미널 밖으로 나오기 까지는 부산에서 건너온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각자 입국심사가 끝나면 음료대 앞에서 기다리는 가이드에게 통과확인을 하고 버스를 타라는 사전 안내를 여러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버스에 오른 한 사람 때문에 가이드는 터미널 안에서 오랫동안 그를 기다렸고 너무 시간이 지체되자 혹시나 하고 버스에 오른 일행을 확인한 후 그가 체크를 하지 않고 버스에 오른 것을 발견하였다. 욕이 입 밖으로 나오다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자기의 행동 때문에 모든 일행이 오랜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한 아무런 사과도 가이드에게는 물론 일행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런 행동으로 인하여 하루를 위한 잘 짜인 여행 시간표는 빗나가고 말았다. 예전 오사카 공항에서 도착하자마자 쇼핑을 하다 일행을 2시간이나 기다리게 하고도 사과 한 마디 없었던 모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도 그 모녀로 하여 전체 일정에 많은 착오가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가 그리 어려운 것인가 생각되었다.
맑은 날은 육안으로 부산이 보인다는 전망대에 올랐다. 연무 때문인지 내 안경 도수가 낮은 때문인지 부산은 보이지 않았으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잔잔하였고 그 빛은 코발트라 표현하여도 좋을 듯싶었다. 고려를 비롯하여 조선에 이르기까지 왜구로 인하여 여러 번 정벌 당했으면서도 우리나라 땅이 되지 않은 대마도. 우리의 조상들은 땅 욕심이 없었는지 쓸모없는 땅이라 여겼는지 그 대마도는 여태 여권이 필요한 남의 땅으로 남아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조선통신사가 거쳐 갔음에도 덕혜옹주의 망국의 서러움이 떠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적한 바닷가의 푸드트럭이 내어준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곳에 와서도 믹스커피를 찾는 모양이라 생각하였다. 눈에 뜨이는 한국산 믹스커피 한 잔은 200엔이었다. 관광객이라고는 한국인들뿐이었고 보이는 외국 사람도 모두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뿐이었다. 과자 한 봉지, 커피 한 잔, 물 한 병 때문에 돌아오면 쓸모없는 일본 동전이 생겼다. 그래도 여권에 도장은 남겼다. 아니 스티커가 붙여졌다.
돌아오는 배를 타야하는 시간, 터미널 주차장에서 그 큰 트렁크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버스 아래 짐칸에서 빠져나온 그것들은 모두 빈 것들이었고 주차장 바닥에서 열려 쇼핑센터에서 산 물건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하루 만에 다녀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쇼핑을 위하여 대마도를 찾는 것 같았다. 트렁크에는 과자에서부터 라면과 맥주까지 마치 그들이 살고 있는 한국 땅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온갖 것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빈 가방을 열고 물건을 집어넣고 정리하는 모습들이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닌 듯싶었다. 걸음도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는 노인 한 분은 일본 소주를 사기위하여 가끔 대마도를 찾는다고 하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 노인의 쇼핑백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많은 일본 소주가 채워져 있었고 그는 이미 그 소주에 취해 있었다.
부산역 앞에서 꼭 먹어야 한다고 아이들이 권한 국밥을 먹었다. 돼지국밥이라기 보다는 맑은 설렁탕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호텔에 맞겨 놓은 배낭을 찾아 울산 태화강역으로 향하는 동해선 전철에 올랐다. 이번에 이용한 부산 시내 1호선 지하철 경로 우대권은 몇 해 전과는 달리 기계에서 발행되는 종이표를 받아 입구에서 QR을 찍어야 통과되도록 바뀌어 있었으며 처음 타본 동해선에서는 동전 같은 동그란 플라스틱 표가 제공되고 회수되었다. 많은 분들이 QR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전 시간에 울산 대왕암공원에서 바라본 바다의 색채가 물의 깊이 때문인지 대마도바다보다 훨씬 좋다고 느끼며 천천히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 태화강국가정원으로 향했다. 가을 끝 무렵의 작은 국화와 코스모스 정원에 남아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봄에 다시 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현지 정원사들의 친절한 안내를 뒤로하고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KTX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로 네 정류장을 지나도 끝나지 않는 현대자동차공장의 담장, 전기자동차공장을 세우기 위해 설치한 수많은 크레인, 아직도 가셔지지 않은 매운 국밥의 맛, 그리고 자갈을 굴리며 경쾌한 소리를 들려줬던 콩돌해변 잔파의 모습이 다시 배낭을 꾸려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는 것 같다.
2023년 11월 27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rq0yrP6Qp84 링크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을냄새 가득나는 첼로, 바이올린&피아노 연주🍁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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