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졸업식의 꿈

korman 2024. 1. 13. 19:36

 

졸업식의 꿈

 

1월이 며칠 지나지 않아 동네 학교들이 겨울 방학에 들어갔다. 이제 개학을 하면 모두 한 학년씩 올라가거나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 내 손주들도 방학에 들어갔다. 개학이 언제냐고 물어보니 3월 4일이라고 하였다. 겨울방학이 온전히 두 달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2월에 개학을 하고 봄방학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게 없어지고 3월까지 쭉 방학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방학이 길어지니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맞벌이 부모들은 걱정이 많다.

 

눈이 많이 내리던 엊그제 작은 손녀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새로 지은 강당의 앞에는 학생들이 자리를 잡았고 뒤쪽과 입구에는 학부모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강당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난방이 잘 되는 듯 더운 감마저 들었다. 강당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학교 측에서 나눠준 듯한 덧신을 신고 있었다. 강당 바닥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실제로 쪽마루처럼 되어 있는 바닥은 눈 때문에 젖은 신발은 둘째 치고 하이힐을 신은 분들은 치명상을 입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늦게 도착한 집사람과 나는 덧신도 받지 못했거니와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입구까지 메워져 들어갈 엄두도 없었다. 단지 졸업식이 끝나면 바닥이 손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덧신도 신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좁은 틈새를 비집고 다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하이힐에 버금가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입구에서 졸업식 장면을 바라보려니 졸업식 장면은 고사하고 보이는 건 어른들의 뒤통수뿐이었다. 다행이 아들내외가 좀 일찍 도착하여 앞쪽에 있었던 고로 작은 손녀의 졸업장 받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전송하여 주었다. 내가 졸업할 때는 우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졸업장을 들고 강당을 나오는 아이들마다 모두 싱긍벙글이었다. 하기야 내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매우 먼 곳에 있어서 졸업을 하면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만나는 게 어려웠고 전화조차 없어 소식을 전하거나 받기도 어려웠던 때였지만 요즈음 초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모두가 이웃에 있으며 만나지 못한다 하여도 SNS등으로 늘 소통할 수가 있으니 슬퍼할 이유도 없음이겠다.

 

작년에는 같은 학교에서 큰손녀가 졸업을 하였다. 그 때는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지 않은 때라 각 반 아이들이 교장선생님 계신 곳으로 이동을 하고 졸업장 수여 장면은 카메라에 담겨져 각 반으로 중계되었으며 졸업노래도 후배들의 노래는 다른 곳에서 중계되고 졸업하는 아이들은 소속 반에 모여 불렀다. 졸업식이 여러 곳에서 이원 중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복도에서 이 모든 광경을 교실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하여 시청(?)하였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달라진 졸업식 환경에 코로나를 탓하였지만 또한 평소 대하지 못하였던 특이한 광경에 기술적 발전을 거론하며 감탄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번 작은손녀의 졸업식 경우는 강당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좀 특이한 사항이 있었다. 자기 아이에 상관없이 바라보는 어른들 모두를 미소를 짓게 하는 일이었다.

 

단상에는 교장선생님과 각 반 담임선생님들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여선생님의 호명에 따라 아이들에게 일일이 졸업장이 주어졌다. 그와 동시에 정면 화면에는 졸업장을 받는 아이의 사진과 함께 수상하는 상 이름과 미래의 꿈이 적혀져 있었다. 상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잘 해서 받는 상을 우선 떠올리겠지만 스크린에 비쳐진 상 이름은 그런 게 아니었다. 모든 졸업생에게 다 수여하는 상. 이름도 좋았다. 감성상, 재능상, 지성상......등등. 아마도 아이들을 가르치신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을 관찰하며 지어놓으신 상인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비쳐진 아이마다의 꿈엔 내 세대에서는 그야말로 꿀 수조차 없었던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가끔 방송에서 아이들의 장래 희망에 대하여 걱정스러운 기사가 나오곤 한다. 물론 그 꿈들이 초등학생들에 국한 된 건 아니고 꿈이라는 게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되는 것이지만 내가 엊그제 본 아이들의 꿈은 방송에서 걱정하는 그런 꿈은 아니었다. 기사를 쓰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에서는 요즈음 대부분 아이들의 꿈이 화려한 연예인 같은 것이라며 한 편 걱정을 하고 있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이니 나도 그게 사실이라 받아들이며 정말 그렇다면 그야말로 대부분 허황된 꿈이 될 수 있는데 아이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각자 개성에 맞는 꿈을 꾸기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스크린에 비쳐진 아이들의 꿈을 바라보며 그 생각을 눈 내리는 하늘에 다 날려버렸다. 연예인이라는 막연하고 허황된 꿈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몇 몇 아이들은 기타리스트나 드러머 등 연예계와 관련된 꿈을 적어놓기는 하였지만 예술분야에서 그게 허황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막연히 연예인이라 표기한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내게 자식이 생기고 손주가 생기면서 출장길에 서양 아이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꿈이 무어냐고 자주 물어보곤 하였다. 그 때 내가 느낀 건 그 아이들의 꿈은 매우 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이 때 부모들에 의하여 강요당한 꿈, ‘대통령’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 사회를 지속시키는 현실적인 직업군에 속하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소방관, 간호사, 과학자, 의사, 군인, 선생님, 등등. 그런데 그런 꿈들이 이제 우리 아이들의 꿈속에 있었다. 허황된 건 아니겠지만 내가 본 스크린 속에 ‘대통령’이 꿈이라는 여자 아이 하나가 있긴 있었다. 그 애가 대통령이 되는 날까지 내가 세상에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내 손녀는 무슨 사업을 하려는지 ‘사업가’가 꿈이라 하였다. 지금의 그 아이 성격이라면 어울릴 듯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이 중학교에서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지속되면 좋으련만. 졸업하는 날의 꿈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친 꿈은 ‘트럭운전기사’라고 구체적으로 적은 아이의 꿈이었다. 마침 그 부모가 내 옆에 있었는지 하는 말이 “아빠가 트럭을 운전하니 그런 꿈을 꾸나 봐”였다.

 

아무튼 언론에서 걱정하는 아이들의 꿈은 혹 그 아이들의 것이 아니라 부모들의 허황된 대리 꿈은 아닌지 짚어보는 기회가 되었다.

 

2024년 1월 1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24g9yz5GRB4링크

졸업식노래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스피싱과 심봉사  (1) 2024.02.09
개가 필요한 법  (0) 2024.02.03
이제야 가버린 걸 알았네  (2) 2023.12.27
뭘 정리하나?  (0) 2023.12.20
2박3일의 가을여행  (1) 202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