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성덕대왕 신종

korman 2006. 9. 29. 23:47

과학으로 풀어본 천년의 소리


성덕대왕 신종에는 신라인들의 음항공학의 진수가 깃들여져 있다. 비대칭구조와 맥놀이, 음관과 울림통은 부처님의 소리를 만들기 위한 치밀한 셜계였다. 오늘에야 밝혀진 신라인들의 과학적 예지를 추적해 본다.



<그림1>1915년 신종을 박물관으로 옮기는 모습


30여년이나 신종 주조에 매달려 왔던 신라인들은 실패가 계속되자 신종의 소리를 얻기 위해 어린아이를 희생양으로 바치기로 했다. 불국토의 도래를 알리고 신라의 종소리를 만들기 위해 엄마 젖을 빨던 한 아이가 펄펄 끓는 쇳물 항아리에 바쳐졌다. 그리고 종은 완성됐다. 그런데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에밀레~ 하는 소리가 났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애절한 소리가 종 속에 깃든 것이다. 봉덕사종, 혹은 성덕대왕 신종이 에밀레종이라 불리게 된 내력이다.

높이 3.66m, 무게 18.9t의 신종은 종의 규모, 예술성, 은은한 여운을 내는 소리 등 어느 면으로 보나 최고의 걸작품으로 국보 29호로 지정돼 있다. 종 겉면에 새겨진 하늘을 나는 천사 그림은 종의 예술성을 한껏 발산하고, 타종 때마다 퍼져나가는 낮고 긴 여운은 1천3백여년 동안 변함없이 우리 민족의 심금을 달래주었다.

그러나 신종에는 신라인들의 음향공학의 정수가 깃들여져 있다는 것이 현대과학으로 밝혀졌다. 1996년 가을 경주박물관을 주축으로 신종의 종합적인 건강을 진단하고, 음향실험을 한 결과 신종이 고도의 과학적인 설계를 거쳐 완성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과연 어떤 소리, 어떤 종을 만들기 위해 신라인들은 34년 동안이나 종 하나에 매달렸을까?

은은하게 울리는 여음


종의 생명은 두말할 필요 없이 소리에 있다. 소리는 종 몸체에 외부 타격으로 만들어진 진동이 주변 공기를 진동시키고, 이 진동이 귀의 고막을 진동시켜 뇌에서 감지되는 것이다. 종을 치면 종 몸체는 지름 방향, 원주 방향, 길이 방향으로 3가지 진동을 만드는데, 이중에서 가장 큰 진동은 지름방향에서 만들어진다.

타종 후 종소리는 대체로 3구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구간음은 타종 직후 1초 이내에 소멸되는 소리로, 탕! 하고 울리는 타격 순간음을 말한다. 여기에는 종 전체에서 발생하는 각종 진동수 성분이 섞여있다. 제2구간음은 타격 후 10초 이전까지 계속되는 고음성분으로 먼 곳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은 이 구간음 때문이다. 제3구간음은 타격 후 1분 이상 계속되면서 점차 감쇄되는 소리로 여운이라고 한다. 여음은 은은한 울림(맥놀이)이 뚜렷하고 긴 것일수록 좋은 소리로 친다.

타종 직후에는 많은 부분진동음이 발생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감소하고 기본진동과 울림만이 남게 돼 종의 고유 소리를 나타낸다. 신종의 소리 또한 기본 진동음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은은한 여음이 생명인데, 신라인들은 이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첨단 음향학적인 설계를 신종에 적용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로 밝혀진 것이다.

비대칭 구조가 만드는 맥놀이



<그림2>신라인들은 신종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34년을 바쳤다.

신종의 소리는 맥놀이현상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진동수가 다른 두 파동이 진행하면서 합쳐진 파동의 세기는 반복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변화가 생긴다. 음파의 경우 소리의 세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맥놀이라 한다.

KAIST 김양한 교수팀에 따르면, 신종은 타종한 직후에 여러 가지 진동수의 음파들이 나타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차츰 제거되고 기본진동수의 음파가 맥놀이 현상을 일으켜 신종 고유의 소리를 만든다(그림 2). 신종의 소리는 기본 진동수 64Hz 근방의 음파와 168Hz근방의 음파가 주성분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들 기본진동수의 음파들이 각각 진동수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 두쌍의 음파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들은 각각 64.06Hz와 64.38Hz, 168.31Hz와 168.44Hz로 이들 진동수의 미묘한 차이가 음파의 맥놀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때문에 신종은 타종 후 소리가 퍼져 나가면서 이들 기본진동수들의 맥놀이현상으로 인해 웅~ 웅~ 웅~ 하는 은은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신라인들은 어떻게 이러한 맥놀이를 만들었을까. 신종의 맥놀이는 신라인들의 정교한 음향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신라인들은 은은한 여음을 만들기 위해 고도의 계산을 통해 맥놀이를 일으키도록 종을 설계했던 것이다. 김교수에 따르면, 맥놀이는 종의 형태나 재료가 미묘한 비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맥놀이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종을 균일하지 않게 제작한 셈이다. 아직까지 종의 각 부분에 따른 성분 차이나 구조적인 비대칭성이 조사된 적은 없다.

그러나 종 내부를 보면 부분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철덩어리가 덧대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종의 비대칭성을 만들기 위해 신라인들이 일부러 설계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 철덩어리들은 신라인들의 주물제작 기술이 뒤떨어져서 생긴 것으로 치부됐으나 이것이 정교한 설계의 산물임이 1천3백년 후에 밝혀진 것이다.

잡음을 제거하는 음관


또한 신종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관이라는 독특한 장치가 있다. 음관은 종의 윗부분에 파이프와 같은 관을 설치한 것인데, 이 또한 신종의 소리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첨단 장치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이 음관은 신라에 왜적이 침입했을 때 피리를 불어 적을 물리쳤다는 만파식적 설화를 본떠 범종에도 이와 같은 의미를 담고자 한 것이라는 설화적인 의미가 있다는 설과,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어떤 기능이 있을 것이라는 설이 분분했다.

그리고 많은 연구자들이 음관이 종 내부의 소리를 외부로 방출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측했지만 최근까지 확인할 만한 조사는 별로 없었다. 이론적으로 음관의 지름이 너무 작으면 휘파람 소리 같은 진동수가 아주 높은 소리만 빠져나가고, 지름이 너무 크면 모든 음파가 다 빠져나가므로 가두어야 할 소리의 진동수에 따라 적당한 크기의 음관을 설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 신종의 음관 지름은 종 안쪽 입구가 82mm, 바깥쪽 출구가1백48mm인 일종의 나팔형 구조로 돼 있다. 김양한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음관의 모양은 파이프처럼 단면적이 일정한 관에 비해 종을 칠 때 내부에서 형성되는 음향 파워를 효율적으로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 음관을 통해 나오는 종소리의 특성을 정밀 측정한 결과, 음관이 종소리의 고유 성분인 저진동수 성분은 내부로 되돌려보내 종소리의 고유성분을 보호하고, 높은 진동수 성분(3백Hz이상)의 음파는 재빨리 방출해 잡소리를 줄이는 기능을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신종의 음관이 종소리의 주 진동수인 64Hz와 1백68Hz의 기본 진동은 내부로 되돌려 보내고 높은 진동수의 잡음은 재빨리 방출해버리는 첨단기능을 담당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것임이 입증된 것이다.

땅바닥에 설치한 울림통



<그림3>신종의 음파특성을 분석하는 연구진

한국 종에는 모두 종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종을 설치했는데, 이 또한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한 첨단 과학의 산물이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울림통의 진동수가 맥놀이를 일으키는 주 진동수인 64Hz가 되면 종소리와 울림통이 공명을 일으켜 좋은 울림, 즉 긴 여음을 낼 수 있다. 그런데 김양한 교수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의 내부와 울림통에서 느껴지는 신종의 고유 진동수는 67Hz 정도였다. 이는 신종의 기본진동수 64Hz와 약 3Hz정도 차이가 난다. 최근까지 신종이 설치돼 있던 경주 박물관의 울림통이 완전한 공명을 일으키기에는 조금 작은 것이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신종이 처음 주조되고 설치됐던 봉덕사의 울림통은 지금보다 크기가 커서 고유진동수가 64Hz에 딱 맞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울림통은 종을 설치하면서 여러가지 크기로 실험을 해가면서 종의 맥놀이 현상을 가장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크기를 찾아서 만들 수 있다. 이미 맥놀이를 만드는 비대칭적인 구조로 종을 설계 제작하고 잡음을 제거하는 음관을 만든 신라인들의 음향공학적인 능력에서 보면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양한 교수팀 따르면, 울림통이 완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부피는 지금보다 약 3배 큰 3.96㎥ 정도이고, 울림통의 유효반지름은 0.83m, 유효깊이는 1.83m가 될 것으로 계산됐다. 신종의 소리를 더욱 완벽하게 재현하려면 울림통을 지금보다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경주박물관에 설치된 신종의 울림통이 원래 신라인들이 만든 것을 재현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까지 신종에 들어있는 우리민족의 과학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첨단 장비도 없이 사람의 귀에만 의지해서 이러한 첨단의 신종을 만들어 낸 우리민족의 과학정신의 뿌리를 오늘날의 우리는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신종의 비밀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우리 문화유산 속에 깃든 조상들의 과학정신이 더 많이 발굴돼야 할 것이다.

 

 동아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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