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우리 종 공부하기

범종과 불교

korman 2006. 10. 5. 00:21

지옥중생 번뇌 날려보내는 ‘범음’
새벽 28회, 저녁엔 33회 타종

상원사 동종.성덕대왕신종
종소리.조형미 세계서 으뜸


▲ 상원사동종


불전사물은 범종.법고.운판.목어를 일컫는데, 이 중에서 사물을 대표하는 것이 범종이다. 종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악기로서의 악종(樂鐘)이 있고, 위급함을 알리는 경종(警鐘)이 있으며, 시와 때를 알리는 시종(時鍾)이 있고, 불법 진리를 전파하는 사찰의 범종이 있다. 절에서는 불사 의식인 법요와 포교가 있을 때 그 개시를 알리기 위해 범종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범종을 아침저녁으로 치는 큰 뜻은 지옥 중생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동시에 불법의 장엄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데 있다.

불이문을 지나면 사찰을 형성하는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첫 번째 나타나는 중요한 전각이 범종각, 또는 범종루이다. 사찰에서 범종을 달아 두는 범종각의 위치 설정에 있어서는 법당에서 볼 때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의 체용설(體用說)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서, 체용설에서 체는 본질을 말하는 것이고 용은 작용을 말하는 것인데, 위치로 볼 때 체는 왼쪽에 해당하고 용은 오른쪽에 해당한다. 소리 공양구인 사물은 용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것을 안치하는 범종각을 법당의 오른쪽 편에 두는 것이다.

교회나 성당에도 종루가 있고 종이 있다. 그런데 사찰의 범종이 이들 종과 다른 점은 교회나 성당의 종의 타종 횟수가 종 잡이 마음에 달려 있는 데 반해, 범종의 타종 횟수는 법식에 따라 엄격하게 규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범종을 치는 횟수는 예불에 따라 다른데, 새벽에는 28회, 저녁에는 33회를 타종한다. 아침 범종은 욕계, 색계, 무색계의 28곳의 하늘에 종소리를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저녁 범종은 제석천왕이 머무는 선견궁을 포함한 도리천 33천에 각각의 종소리를 울려 퍼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일명 경종(鯨鍾)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종의 꼭지에 장식되어 있는 용(이름은 포뢰)에 얽힌 전설과 관련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포뢰는 동해에 사는 고래를 가장 무서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래 모양으로 만든 당(撞)으로 종을 치면 포뢰 용이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되고, 그 때문에 종소리가 커진다고 옛 사람들은 믿었다. 〈삼국유사〉에서도, “…자금종(紫金鐘) 셋을 벌여 놓았는데, 모두 종각이 있고 포뢰(蒲牢)가 있으며 고래 모양으로 종치는 방망이를 만들었다(탑상 제4, 사불산.굴불산.만불산 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범종은 종교적 의기(儀器)로서 뿐만 아니라 금속공예사(金屬工藝史)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종’이라는 학명(學名)을 가지고 있을 만큼 독자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종의 정상에 용뉴가 있고 그 옆에 용통(甬筒)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유곽(乳廓)이 종어깨 밑 네 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과, 종 몸의 넓은 여백에 비천상과 당좌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도 다른 나라 종과 다른 점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종소리와 조형미에서 가장 뛰어난 종이 상원사동종과 성덕대왕신종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용주사동종, 조선시대 전기의 봉선사대종, 낙산사동종을 비롯해서, 해인사 홍치4년명동종, 또 후기의 직지사 순치15년명동종, 통도사의 강희25년명동종, 범어사 옹정6년명동종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상원사동종은 성덕왕 24년(725년)에 제작된 종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이다.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상원사종은 특히 종의 배 앞뒤에 새겨진 정교하고 환상적인 비천상으로도 유명하다. 비천은 무릎을 세우고 허공에 뜬 채 수공후와 생(笙)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인데, 천의 자락이 상승 기류를 타고 위쪽으로 휘날리는 모습이 매우 가볍고 유려한 느낌을 준다. 위쪽의 띠 안의 반달형 권역 속에 피리와 쟁(箏)을 연주하고 있는 2구의 작은 비천상이 종의 둘레를 돌아가며 촘촘히 새겨져 있고, 아래쪽 띠에도 비천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각각 취악기, 피리, 장고, 비파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또한 유곽(乳廓)의 띠 아래 부분과 좌우에도 생과 요고를 연주하는 비천상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상원사종 소리의 특색을 〈한국의 범종〉에서 조규동(趙奎東)은, “종의 양성적인 소리는 엄숙하고 장중한 성품으로, 저음의 느린 울림과 애타게 절규하듯 중심 음이 한없이 길게 푸른 대공(大空) 속으로 아름다운 선을 그어 나간다.”라고 묘사했다.

상원사동종이 만들어진 46년 뒤인 혜공왕 7년(771년)에 사상 최대의 걸작인 성덕대왕신종이 탄생한다.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뒤를 이어 혜공왕이 771년에 완성한 종이다. 이 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하며, 아기를 시주하여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 따서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성덕대왕신종은 현재 남아 있는 한국종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규모가 거대한 범종이다. 종의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이 있다. 몸에는 위로부터 보상당초무늬를 새긴 상대와 연꽃으로 장식된 4개의 유곽, 무릎을 꿇은 채 날아 내려오는 4개의 공양천인상, 2개의 연꽃 모양의 당좌.보상당초무늬와 연꽃으로 이루어진 하대가 양각되어 있다. 또한 모두 1037자의 글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다.

성덕대왕신종의 명(銘)에, “지극한 도는 형상 밖에 포함되어 있어 그것을 보려하여도 그 대원(大原)을 볼 수 없고, 진리의 소리[大音]은 천지에 진동하나 그것을 들으려 하여도 들을 수가 없다. 그러한 까닭에 가설(假說)을 의지하여 삼진(三眞)의 오묘함을 관하고, 신종을 걸어서 일승(一乘)의 원음을 깨닫는다(夫至道包含於形象之外 視之不能見其原 大音震動於天地之間 聽之不能聞其響 是故 憑開假說 觀三眞之奧義 懸擧神鍾 悟一乘之圓音)”고 하였다. 범종은 지극한 도(道)와 대음을 깨닫게 하는 예기(禮器)라는 것을 이 명문은 깨우쳐 주고 있다.

‘좋은 종소리’란 일반적으로 맑은 소리, 즉 잡음이 없고 귀에서 아름다운 소리로 감지할 수 있으며, 소리의 여운이 길어야 하고, 뚜렷한 맥놀이(소리가 일정 간격으로 웅웅 울리듯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현상)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성덕대왕신종은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덕대왕신종 소리의 특색을 조규동은 “태산이 무너질 듯 장중하며 호연히 천지에 후(吼)하듯 굵고 낮은 매듭 속에, 또한 못내 자비로운 높은 여운은 그칠 줄 모르고 또 깊게 사바(娑婆) 속으로 스며들기만 한다. 실로 이 세계적 거종의 생명은 그 종소리와 더불어 영원하기만 하다.”라고 평했다

낙산사 동종은 조선 예종 1년(1469)에 그의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한 종이다. 종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기품 있어 보이는 용 2마리가 서로 등지고 있어 종의 고리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 부분에는 연꽃잎으로 띠를 둘렀으며, 몸통에는 가운데 굵은 3줄을 그어 상.하로 나누고, 위로 보살상 4구를 새겼다. 낙산사종은 조각 수법이 뚜렷하고 모양이 아름답고 보존상태가 좋아 한국 종을 대표하는 걸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혔던 종이었으나 얼마전 산불에 희생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종을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모양은 원래대로 복원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소리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범종을 칠 때 나오는 소리는 음(音)이 아니라 성(聲)이다. 다시 말하자면 종음이 아니라 종성인 것이다. 이것은 우레 소리를 뇌음이라 하지 않고 뇌성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 입술이나 혀를 움직여 조작해 만든 소리를 발음이라 하고, 악기를 음계에 따라 소리를 조합해 내는 것은 음악이라 한다. 불교에서 음교(音敎)라 하는 것은 음성으로써 교법을 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음교는 불법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일 뿐 불법 그 자체는 아니다. 종을 쳐서 나는 성은 결코 꾸미거나 조작된 소리가 아니다. 체가 본체적 존재로서 형이상적이라면, 용은 오관(五官)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현상으로 형이하적 세계에 속한다. 범종을 쳐서 나는 소리는 곧 체를 드러내기 위한 용이요, 범음(梵音)을 듣게 하는 일종의 방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 [불교신문 2143호/ 7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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