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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내리면

함박눈 내리면 마른 잎 가득한 겨울 평원에 함박눈 내리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들판의 짐승도 하늘의 새도 속세의 인간도 짐짓 발자욱 남기기 망설여 설원엔 시간의 흔적이 없다. 너울 밀려오는 바닷가에 함박눈 내리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눈 속에 묻힌 듯하다. 파도 부딪는 바위의 울림도 포말 속 모래의 부딪침도 먹이를 찾는 갈매기 울음도 소리 없이 쌓이는 눈에 모두 덮여진 듯 바람조차도 숨을 죽인다. 세상이 잠든 눈밭에 달빛 내리면 달빛은 눈 위에 녹아들고 눈밭은 푸르스름 달빛으로 변한다. 달빛 스민 눈엔 번뇌마저 녹아들 듯하다. 도시엔 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시의 눈엔 세상의 온갖 잡티가 다 섞여 내리는 것 같다. 도시의 발에 마구 밟히고 소금에 절여지며 천덕꾸러기로 버려진다. 그래도 눈이 오면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