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일본속 우리나라 종

일본의 한국종 - 일본 우사시 우사진구 (宇佐市 宇佐神宮) 소장 신라범종

korman 2007. 3. 25. 14:38

우좌신궁종(宇佐神宮鐘)


공예/유물
일본 규슈[九州]의 오이타현[大分縣] 우사시[宇佐市] 우사신궁[宇佐神宮]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종.

 

우좌신궁종(宇佐神宮鐘) (송산촌 대사종)

이칭: 송산촌대사종

분야: 공예

유형: 유물

성격: 범종

제작시기: 904년(효공왕 8)

크기: 높이 86.0㎝

소장처: 일본 규슈(九州)의 오이타현(大分縣) 우사시(宇佐市) 우사신궁(宇佐神宮)

 

정의

일본 규슈[九州]의 오이타현[大分縣] 우사시[宇佐市] 우사신궁[宇佐神宮]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종.

 

내용

904년(효공왕 8) 주조. 높이 86.0cm. 일반적인 통일신라종에 비해 조금 왜소한 크기이며, 형태·주조기술면에서도 거칠고 미숙한 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904년에 제작되었다는 뚜렷한 명문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 말기 범종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용두(龍頭)는 그 입을 천판(天板) 위에 붙이고 있으며, 뒤에 붙은 형식적으로 약화된 음통(音筒)에는 사격자문(斜格子文)의 띠로 구획한 뒤 그 내부에 앙·복련(仰覆蓮)의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종신의 상·하대에는 당좌(撞座)를 반으로 자른 것 같은 반원권의 문양을 연속으로 배치하고, 이 원권 내부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과 당초문을, 그리고 원권 사이의 여백면에는 팔메트(palmette)주 01)형의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상대 아래 4곳에 배치된 방형의 연곽대에는 상·하대와 동일한 형태의 문양으로 시문하였고, 연곽 내부에는 연꽃봉오리 형태의 연뢰가 9개씩 높게 돌출되었다.

 

당좌는 종신 앞뒷면 두 곳에 배치되었는데 통일신라 중기의 종에 비해 훨씬 아래쪽인 하대쪽으로 치우쳐 있는 점이 주목된다. 당좌는 5개의 연과(蓮顆)를 배치한 원형의 자방과 그 주위를 복엽(複葉)의 7엽연판문으로 장식하고, 다시 외구를 소문(素文)으로 처리한 뒤 그 전체를 연주문대의 원권으로 둘렀다.

 

당좌 사이의 종신 앞뒷면에는 동일한 형태의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1구씩 부조되어 있는데, 구름 위에 앉아 머리 위로는 천의(天衣)를 흩날리며 양손을 들어 배 앞에 놓인 장고를 치는 모습이다. 이 주악상은 8∼9세기 범종과 비교할 때 자세가 경직되고 생동감을 잃고 있으며, 종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연곽 아래로부터 거의 하대까지 이르고 있다.

 

한편 이 종에는 당좌와 주악천인상 사이에 해당되는 종신의 한쪽 여백면을 택해 별도의 장방형 명문구(銘文區)를 만들고 좌서(左書)의 양각명으로 ○天復四年甲子二月 日松山村 大寺鑄成 內節本和上能與(興)本村主 連筆一合入金五千八十方(斤)盒掃成(천복4년 갑자2월 일송산촌 대사주성 내절본화상능여(흥)본촌주 연필일합입금5천80방(근)합소성)○이라고 기록하였다. ○천복 4년○은 904년에 해당되며 송산촌(松山村)에 있었던 대사, 즉 큰절에 사용된 종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朝鮮鐘』(坪井良平,角川書店,1974 )

「일본에 있는 한국범종(韓國梵鐘)」(최응천,『강좌미술사』 4,한국미술사연구소,1992)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 1(최응천,『박물관신문』 234,국립중앙박물관,1991.2.)

집필자집필 (1998년)최응천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우좌신궁종(宇佐神宮鐘)) 2022년 5월 23일 현재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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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진구 (우좌신궁)소장 종

(천복4년명종)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⑩ 일본 우사진구 소장 천복4년명 종

 

조선에서 입수 약탈 가능성도

5080근 금속 범종 주조 사용

장인 밝힌 고대 공예품 추정

 

통일신라 말 범종의 쇠퇴와 고려 범종으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10세기의 중요한 작품이 이번 호에 소개될 일본 오이타현(大分県) 우사진구(宇佐神宮)에 소장된 천복4년명(天復4年銘) 종이다.

 

규슈의 벳푸 온천으로 유명한 벳푸(別府)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우사시(宇佐市)의 우사진구(宇佐神宮)는 일본 전역에 4만4000여 곳에 분포하고 있다는 하치만구(八番宮)의 총본산으로 일찍부터 유명한 장소이다. 범종은 신사의 보물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위치한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어 그나마 보관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종이 들어있는 진열장이 여유 없이 좁은 관계로 세부의 조사나 사진 촬영 등이 상당히 불편하였다. 이 종에 대해서는 일찍이 큐슈대(구주대)의 니시타니 타다시(西谷 正) 교수가 <古代宇佐と朝鮮文化, 宇佐-大陸文化と日本文化(고대 우사와 조선문화, 우사-대륙문화와 일본문화)>란 논문에서 원래 우사진구 경내에 있었던 미륵사(彌勒寺, 738년 창건)의 범종으로 수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그 시기는 우사진구와 미륵사 조영(造營)에 크게 기여했던 오오우치(大內) 가문이 14세기 후반쯤 우리나라에서 입수하여 우사진구에 기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점에서 한국에서의 약탈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일반적인 통일신라 종에 비해 왜소한 크기이며 거칠어진 주조기술은 문양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더욱 도식적인 느낌이 든다. 용두는 그 입을 천판 위에 붙이고 있으며 뒤에 붙은 형식적으로 약화된 음통에는 사격자문(斜格子文)의 띠로 구획한 뒤 그 내부에 앙,복련의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종신의 상·하대에는 당좌를 반으로 자른 것 같은 반원권의 문양을 연속으로 배치하고 이 원권 내부에는 보상화문(寶相華文)과 당초문을, 그리고 원권 사이의 여백 면에는 팔메트형의 당초문으로 시문하였다.

 

이 상·하대의 문양은 동일한 형식의 문양이지만 하대의 폭이 조금 더 넓고, 특히 이곳에 사용된 1조의 지문판(地文板)의 경우 상대의 길이가 15cm인데 비해 하대는 36.5cm로 거의 두 배가 넘는다. 상대 아래 4곳에 배치된 방형의 연곽대에는 상·하대와 동일한 형태의 문양으로 시문하였고 연곽 내부에는 지나치리만치 과장된 9개씩의 연뢰(蓮)가 높게 돌출되었다. 종신의 전·후면 두 곳에 배치된 원형 당좌는 통일신라 8~9세기 종과 비교해 볼 때 하대 쪽으로 훨씬 치우쳐 있어 시대적인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 형태는 원형의 자방(子房) 주위를 복엽으로 이루어진 7엽 연판문으로 장식하고 다시 외구를 문양 없이 처리한 뒤 그 전체를 연주문대(連珠文帶)의 원권(圓圈)으로 두른 모습이다.

 

당좌 사이의 종신 앞, 뒤면에는 동일한 형태와 자세를 취한 주악천인상이 1구씩 부조되어 있는데, 구름 위에 앉아 머리 위로는 천의를 날리며 양손을 들어 배 앞에 놓인 요고(腰鼓)를 치는 모습이다. 이 주악상은 8~9세기 범종과 비교할 때 경직된 자세와 느슨해진 도식적인 천의 등 생동감을 잃고 있으며 종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묘사되어 연곽 아래로부터 거의 하대까지 이르고 있다. 한손을 들어 장고를 치는 모습과 달리 양 어깨 위로 들어 올린 어색한 자세와 얼굴 표현은 마치 놀란 표정을 취한 것처럼 어색하고 생경하다.

 

한편 이 종에는 당좌와 주악천인상 사이에 해당되는 종신의 한쪽 여백 면을 택해 별도의 장방형의 명문곽(銘文廓)을 만들어 이곳에 거꾸로 새겨진 좌서(左書)의 명문을 양각하였다. 그다지 길지 않은 두 줄로 구성된 명문은 ‘天復四年甲子二月 日松山村, 大寺鑄成內節本和上能與(興)本村主, 連筆一合入金五千八十方(斤) 盒掃成’ 으로 판독된다. 첫머리에 ‘天復四年’의 천복은 당나라의 연호이지만 3년만 사용되었고 그 4년은 원래 천우(天祐) 원년에 해당되지만 신라에서는 그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예는 꿰 많은 금석문에서 확인되는데, 고려시대의 정우년간(貞祐年間, 1213~ 1216)은 4년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고려에서 10여년 넘게 계속 사용한 경우도 볼 수 있다 천복4년 다음에 갑자년(甲子年)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효공왕(孝恭王) 8년인 904년임이 분명하다. 그 다음의 송산촌(松山村)의 위치는 불분명하지만 다음 내용으로 미루어 그 곳에 있었던 대사(大寺), 즉 큰 절에서 조성된 종으로 해석된다. 다음 줄의 성내(成內)는 ‘이루다’ 란 뜻으로 사용된 이두식 표기이며 절(節)은 ‘그 때’로 해석되어 그 때의 화상(和上, 和尙과 같은 표기)은 능여(能與), 본촌주(本村主)는 연필일(連筆一)로서 둘 다 인명으로 보인다.

 

여기에 ‘합입금오천팔십방(合入金五千八十方)’ 은 주조시 소요된 금속의 총량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앞서 소개한 연지사종(833)에도 동일한 용례로 합입금(合入金), 가입금(加入金)의 명문을 사용한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 종 제작에 오천 팔십근의 중량이 소요되었음을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의 ‘합소성(盒掃成)’은 합소라는 주성 장인이 만들었다고 해석된다.

 

이 마지막의 명문은 판독이 분명치 않지만 통일신라의 주조 장인의 이름이 분명하다면 장인을 밝힌 예가 극히 드문 고대의 공예품으로서 그 의미가 높게 평가된다. 이러한 양각의 명문이 새겨진 방형의 명문곽은 이미 죠구진자(常宮神社) 소장 연지사종(833)에 처음으로 상대 아래 붙여서 사용된 적을 볼 수 있지만 이제 종신의 한 구석이 아니라 하대에 연결되도록 완전히 독립을 이룬 별도의 장식 문양처럼 배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명문곽이 고려 범종에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흥사종(天興寺鐘, 1010)의 명문구는 하대에서 조금 떨어져 당좌와 비천 사이에 해당되는 종신의 여백 면을 택해 위패형(位牌形)으로 바뀌어 자리 잡게 됨을 볼 수 있다. 이후 오랜 기간 위패형의 명문곽은 고려시대 범종에 자주 등장되는 커다란 양식적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가 되면 다음 호에 소개할 조렌지(照蓮寺) 소장 준풍4년명(峻豊四年銘, 963) 종이나 스미요시진자(住吉神社) 소장 고려초기 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1구의 주악상이 아니라 몸을 옆으로 뉘인 채 연꽃을 받쳐 든 비행비천상(飛行飛天像)이란 모습으로 바뀌게 되는 점도 두드러진 고려 범종의 새로운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범종은 일반적인 통일신라 종에 비해 조금 왜소한 크기이며 형태, 주조 기술면에서도 거칠고 미숙한 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904년에 제작되었다는 뚜렷한 명문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말 범종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여음(餘音)

이 종이 위치한 우사역에 내리면 영어로 USA시로 표기된 역 이름이 흥미롭게 들어온다.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일찍부터 관리되어 온 탓에 신사에 마련된 보물관 진열장에 잘 보관되어 있지만 너무 협소한 진열장 안에 넣어져 매우 답답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조명이 어두워 스트로보를 이용하여 촬영하였지만 진열장의 한쪽 면만이 개방되는 관계로 반대쪽 면은 반사가 너무 심하여 제대로 찍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반대쪽 면은 반사 차단 필터를 끼우고 찍은 사진만이 겨우 상태가 괜찮았지만 나중에 현상해 보니 앞면과 뒷면이 동일한 주악상으로 주조된 점을 알 수 있었다.

[불교신문3307호/2017년6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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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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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⑩ 일본 우사진구 소장 천복4년명 종 - 불교신문

조선에서 입수 약탈 가능성도5080근 금속 범종 주조 사용장인 밝힌 고대 공예품 추정통일신라 말 범종의 쇠퇴와 고려 범종으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10세기의 중요한 작품이 이번 호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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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復 4年 甲子(904), 청동, 전체높이 85.8cm, 종높이 66.0cm, 입지름 47.2cm, 주종장 □강, 日本 大分縣 宇佐市 豊前 宇佐神宮, 일본 중요문화재


종복 가득히 요고를 치는 비천상을 조각한 종이다. ∩자형의 용뉴와 3단 구성의 음통, 4개의 유곽과 2개의 당좌, 2구의 비천을 갖춘 전형적인 신라종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당좌와 비천 사이에 명문곽을 두고 주성 연대를 밝힌 3줄의 명문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종은 천복天復 4년(신라 효공왕 8년, 904)에 송산촌의 큰 절에서 조성한 것이다. 그해에 본사의 화상和尙은 능여能與이고 촌주는 연필

 

이며 회유會儒가 주성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상하대와 연곽의 문양이 일관되게 반원권무늬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방식은 상원사 종을 비롯하여 통일신라 시대의 특성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상하대의 반원권은 8개씩이며, 연곽의 무늬도 귀퉁이에서도 서로 잘 들어맞게 배치되어 있다. 반원권의 여백에는 당초무늬로 변화를 주었다. 당좌는 연꽃잎이 7엽이어서 독특한데 꽃잎 사이로 작은 잎들이 살짝 드러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는 같은 시기의 수막새 문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종복을 가득 메운 비천상은 자세가 다소 경직되었으나 온화한 표정으로 장고를 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 종은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사진구의 보물관을 들어서면 전시장 정면의 유리장에 단독 진열되어 있다. 우사진구는 일본의 전국에 있는 4만여 신사 가운데 하치만구八幡宮의 총본산이다. 우사진구 안의 미륵사에 헌납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직지사 박물관 2007년 3월 25일 현재

보완 2014년 3월 2일 현재 http://www.jikjimuseum.org/Gallery_200407/product/UnifiedSilla/08.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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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좌팔번궁사(宇佐八幡宮社) 소장(所藏) 범종(梵鍾)(송산촌대사(松山村大寺)

 

소재지(所在地) : 일본(日本) 대분현(大分縣) 우좌시(宇佐市) 풍전우좌팔번궁(豊前宇佐八幡宮)
연대(年代) : 904年 (효공왕(孝恭王) 8年, 천복(天復) 4年, 천우원년(天祐元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크기 : 높이 86cm 구경(口徑) 47cm


이 범종(梵鍾)이 어떠한 경로를 밟아 도일(渡日)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韓國) 범종(梵鍾)을 집필한 『조선종(朝鮮鐘)해설에 의하면, 용뉴(龍鈕)와 용통(甬筒)은 상원사범종(上院寺梵鍾)이나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에 비(比)하면 그 수법(手法)이 열작(劣作)에 속(屬)하기는 하나, 명문(銘文)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제작년대(制作年代)가 신라말(新羅末)에 속(屬)하는 범종(梵鍾)이라 평(評)하였다. 견대(肩帶)와 하대(下帶) 및 유곽(乳廓) 內에는 동일(同一)하게 반원권문양(半圓圈紋樣)을

한문 스캔

돌리고 원권(圓圈) 內 중앙(中央)에는 심엽형(心葉形) 여의두문(如意頭紋)을 조식(彫飾)하고 그 외부(外部)에는 당초문(唐草紋)과 동일(同一)한 문양(紋樣)으로 사이를 조식(彫飾)하였다. 종복(鍾腹)에는 연주문대(連珠紋帶)를 갖고 있는 7판복엽(瓣複葉)의 연판문(蓮瓣紋) 당좌(撞座)를 2個 갖고 있으며, 당좌(撞座)와의 사이에는 양수(兩手)를 들어 장고(長鼓)를 치면서 천의(天衣)를 날리고 운상(雲上)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비천상(飛天像) 각 1구(軀)씩을 배치하고 있다. 비천(飛天)의 천의(天衣)는 역시 신라 범종들에서 보이는 천인상(天人像)들의 천의(天衣)와 동일형태(同一形態)이나 조식수법(彫飾手法)이 몹시 퇴화(退化)된 조식법(彫飾法)으로 된 것이 주목(注目)된다.

 

특히 당좌(撞座)와 비천상(飛天像) 중간(中間)에 3行으로 명기(銘記)된 명문(銘文)에 의하면 “天復四年甲子二月卄日松山村”이라고 하였는데, 천복(天復)은 당말(唐末) 소종(昭宗)의 연호(年號)이고 4年은 신라(新羅) 효공왕(孝恭王) 8年에 해당되며 천복사년월(天復四年月)에 당(唐)의 소종(昭宗)이 살해(殺害)되고 천우원년(天祐元年)이 됨으로 당(唐)이 멸망던 때이다. 또한 신라(新羅)도 왕조(王朝)가 망(亡)하는 바로 직전에 해당되는 때로서 신라(新羅) 범종(梵鍾)으로서는 지금까지 발견(發見)된 것 중 최후(最後)에 제작된 범종(梵鍾)이 아닌가 한다.

 

명문(銘文)의 내용(內容)


天復四年甲子二月卄日松山村
大寺鍾成內文節本和上能與本村主
蓮筆一合入金五千八十乃□□成


이라 되어 있다. 이두(吏讀)․지명(地名)․주종장(鑄鍾匠)․감독(監督) 등의 명문(銘文)이 보이는 것으로, 역시 범종 연구와 신라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년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