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울림 속으로/아시아의 종

(중국) 인천박물관 소장 원대철제범종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korman 2007. 4. 25. 21:05

원대철제범종 (元代鐵製梵鍾)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종 목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명 칭 원대철제범종 (元代鐵製梵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기타/ 기타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2.03.02

소 재 지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량로160번길 26 (옥련동, 인천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인천광역시

관리자(관리단체)

상 세 문 의 인천광역시 연수구 문화공보실 032-810-7076


중국 범종 특유의 모습을 하고있는 높이 2.45m의 중국 원나라 범종으로 고려 충렬왕 25년(1299)에 만들었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2마리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살아 움직이는 것 같으며, 종의 어깨부분은 둥글고 위쪽으로는 덩굴무늬를 새겼다. 덩굴무늬 사이에는 8개의 구멍을 뚫어 우리 범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몸체에는 ‘황제만세, 중신천추’의 글자가 새겨 있으며, 정사각형 무늬를 종의 중간 띠 아래와 위에 새겼다. 종 입구는 8개의 반원 모양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8괘를 배치하였다. 원래 중국에 있던 것을 일본이 전쟁 막바지에 빼앗아 부평조평창에 옮겨 두었던 것을, 해방 후 발견하여 인천 시립박물관에 보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 페이지 2017년 7월 5일 현재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1,00030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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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대철제범종

 

 

지정번호  시 유형문화재 제3호
분      류  종
면      적  1기
지정일  1982년 3월 2일
소재지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시립박물관)
시      대  고려 충렬왕 25년(1299)
상세내용
 중국 원대(元代)에 만들어진 이 철제범종(鐵製梵鐘)은 그 양식에 있어서 한국종과는 다른 중국종 특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신(鐘身)에 대덕(大德) 2년 3월이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元의 성종(成宗) 3년(1298)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작연대가 확실하여 중국 문화유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종의 전체적인 형태는 간결한 형태로서 경쾌한 맛을 풍긴다. 윗쪽의 용뉴(龍 ) 밑으로부터 종견(鐘肩)을 걸쳐서 양주(陽鑄)된 간명한 당초문(唐草文)이 배열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의장(意匠)을 잘 통어(統御)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초문(唐草文) 사이로는 일정한 거리로서 등분된 8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종신부(鐘身部)의 상단에는 역시 양주(陽鑄)된 여러 대곽(帶廓) 안에 "황제만세 중신천추(皇帝萬歲 重臣千秋)"를 비롯한 명문(銘文)이 있다. 하단에도 세문자의 긴 내용으로서 종명(鐘銘)이 배치되어 있으나 판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아랫변의 종구(鐘口)는 8릉파상형(8稜波狀形)으로 넓은 구연부(口緣部)를 이루고 있는데 종신(鐘身)의 평행대문(平行帶文) 사이의 공간은 8卦가 배치되어 있다. 위의 용뉴(龍 )는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어 절묘하게 몸을 꼬고 있는 쌍룡(雙龍)의 사실적인 형태가 매우 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반적으로 의장(意匠)은 소박하게 처리된 편이며 기하학적 비례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이 범종이 우리나라에까지 유입되게 된 배경 경로는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전쟁에 일제(日帝)가 군수품 조달을 위해 당시 철의 부족량을 보충하려는 수단으로 우리나라 전국 각지는 물론 중국 대륙으로까지도 손을 뻗쳐 공출(供出)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반입된 이 범종은 부평의 조병창(造兵廠)에 산적된 각종 철제 생활용구와 함께 전쟁무기로 둔갑될 위기를 맞았다가 해방과 동시에 다행히 그 수명(壽命)을 건지게 된 것이다.
전쟁 말기에 중국대륙에서 유입된 물품으로는 엽전이나 동전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미술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물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후 인천시립박물관 관장이던 이경성(李慶成)씨가 미군정청과 교섭하여 미군당국의 도움으로 부평조병창에 방치되어 있던 철제품 가운데 미술품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는 여러 점을 인수하여 박물관 소장품으로 귀속시켰는데, 이 범종도 그 때 접수된 것이다. 오랫동안 인천 자유공원에 있던 구인천시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오다가 인천시립박물관이 송도(松島)로 이전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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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박물관 소장 원대철제범종 (元代鐵製梵鍾)


이름 원대철제범종

국적 중국(中國)

시대 원(元)

재질 금속(金屬)

내용

이 범종은 일제강점기의 병기창(兵器廠)이었던 부평 조병창에서 인수되어 전해지고 있는 유물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철이 부족하게 되자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의 각종 금속 기물들을 조병창으로 모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연유로 한반도에 들어오게 된 중국의 유물들이 해방이후 인천광역시립박물관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유물은 철로 제작된 종으로 중국은 우리나라가 동종(銅鐘)이 대부분인 것과는 다르게 철제 범종의 예가 많이 있다. 종을 위에 매달아 두는 용뉴(龍鈕)는 쌍룡(雙龍)으로 종의 윗부분인 천판(天板)을 입으로 문 채 서로의 몸을 휘감고 있다. 전체적인 종신(鐘身)의 모습은 안으로 잘록하게 살짝 휘어진 완만한 곡선 형태를 보이다 아래의 종구(鐘口)를 향해 벌어지면서 마무리된다. 천판과 종신(鐘身)의 경계 역시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져 있고, 연판문(蓮板文)이 돌아가며 새겨져 있는 가운데 원형의 구멍이 같은 간격을 두고 뚫려 있다. 종신은 상․하 이단으로 나뉘어 도드라진 가로 방향의 선으로 공간을 크게 구획하였다. 상하단의 공간은 다시 여러 개의 돋을 선으로 승려의 가사(袈裟)에 보이는 무늬와 같은 일명 가사문대(袈裟文帶)를 만들었으며, 그 안으로 명문을 새겨 놓았다. 이처럼 종신부 전체를 구획하여 명문을 새겨 넣는 것은 우리나라의 범종이 연봉우리를 조각하여 연곽(蓮廓)안에 두거나, 당좌(撞座)를 조각한 것과는 크게 다른 형식으로 중국 종의 특징이다. 종구의 끝 부분은 물결무늬(波狀形)를 보이고 있으며, 그 위로는 팔괘(八卦) 무늬가 돌아가며 배치되었다.


출처 : 인천박물관 홈페이지 2017년 1월 10일 현재

       http://museum.incheon.go.kr/board/1090/1629821?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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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시도유형문화재   3호 (연수구)
명   칭원대철제범종 (元代鐵製梵鍾)
분   류
수   량1기
지정일1982.03.02
소재지인천 연수구 옥련동 525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유자인천시
관리자인천광역시립박물관
설    명

중국 범종 특유의 모습을 하고있는 높이 2.45m의 중국 원나라 범종으로 고려 충렬왕 25년(1299)에 만들었다.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는 2마리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살아 움직이는 것 같으며, 종의 어깨부분은 둥글고 위쪽으로는 덩굴무늬를 새겼다. 덩굴무늬 사이에는 8개의 구멍을 뚫어 우리 범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몸체에는 ‘황제만세, 중신천추’의 글자가 새겨 있으며, 정사각형 무늬를 종의 중간 띠 아래와 위에 새겼다. 종 입구는 8개의 반원 모양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8괘를 배치하였다. 

원래 중국에 있던 것을 일본이 전쟁 막바지에 빼앗아 부평조평창에 옮겨 두었던 것을, 해방 후 발견하여 인천 시립박물관에 보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종은 중국(中國) 원(元)나라 성종(成宗) 3년(1299) 주조(鑄造)된 것으로 중국 범종 특유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용유(龍紐)부에는 두 마리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동적(動的)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고, 용유와 종견(鍾肩) 사이에는 당초문을 양주(陽鑄)하였으며, 당초문 사이에는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종신(鍾身)에는 "황제만세(皇帝萬歲), 중신천추(重臣千秋)"등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으며, 팔능파상형(八稜波詳形)의 종구(鐘口)에는 팔괘(八掛)가 배치되어 있다.
 
상 세 문 의인천광역시 연수구 문화공보실 032-810-7076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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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철제범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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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천 연수구 옥련동에 있는 중국 원나라의 철제범종.
지정번호인천유형문화재 제3호
지정연도1982년 3월 2일
소장인천광역시립박물관
소재지인천 연수구 옥련동 525
시대중국 원
분류
본문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에서 1298년(원나라 성종 3)에 주조된 것으로 중국종 특유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 범종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제가 철이 부족한 것을 조달하기 위하여 한국은 물론 중국 각지에서 공출하여 부평 조병창에 쌓아두었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그대로 철수하였기 때문에 인천에 들어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범종은 용유, 종신, 하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종은 용유부에 있는 두 마리의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동적인 분위기를 살려준다. 용유와 종견 사이에는 당초문이 양주되어 있으며, 당초문 사이에는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종신에는 양주된 ‘황제만세 중신천추’를 비롯한 대소문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하대의 종구는 팔능파상형으로 넓은 구연부를 이루고 있다. 또한 종신 하단부와 구연부 사이에는 8쾌가 배치되어 있다. 이것 때문에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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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철제 범종








• 코드: cp0501b05501


• 명칭 : 원대철제범종


• 지정 : 시도유형문화재 3호(인천)


• 조성연대 : 중국(원) 성종 3년(1298)


• 제원 : 전체높이 240㎝, 입지름 153㎝


• 소재지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관리자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설명


이 철제 종은 종신에 새겨진 글로 보아 대덕(大德) 2년 3월, 즉 중국 원나라 성종(成宗) 3년(1298)에 주조된 중국종임을 알 수 있다.


용뉴는 몸을 꼬고 있는 쌍룡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살아 움직이는 것 같으며, 종의 어깨부분은 둥글고 위쪽으로는 당초무늬를 새겼다. 그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8개의 둥근 구멍을 뚫어 우리 범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종신부 상단에는 여러 대곽(帶廓) 안에 「황제만세 중신천추(皇帝萬歲 重臣千秋)」를 비롯한 큰 문자로 된 명문(銘文)이 있고, 하단에는 작은 글자로 된 긴 내용의 종명(鐘銘)이 있으나 판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상단과 하단 사이에는 가사문대(袈裟文帶)가 있는 것이 중국종의 특징이다.


종 입구는 8개의 반원 모양으로 넓은 종구를 이루고 있는 팔능파상형(八稜波狀形)의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종구와 종신의 평행대문(平行帶文) 사이 공간에 8괘(八卦)를 배치하였다.


높이가 240㎝이고, 직경 153㎝인 이 범종의 전체적인 형태는 번잡함이 없는 간결한 형태로서 우아하기보다는 경쾌한 맛을 풍긴다. 원래 중국에 있던 것을 일본이 전쟁 막바지에 빼앗아 부평조평창에 옮겨 두었던 것을, 해방 후 발견하여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보관하게 되었다.


<자료참조 : 문화재청, 직지성보박물관, 인천광역시립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 문화컨텐츠닷컴 2017년 8월 1일 현재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7&cp_code=cp0501&index_id=cp05010066&content_id=cp050100660001&search_left_menu=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