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청첩장

korman 2007. 6. 1. 23:05

청첩장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도 주말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생활이 변해감에 따라 결혼하는 날과 시간도 많이 변화된 듯싶다. 물론 요새도 토요일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평일 저녁에 식을 치루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또한 혼자 살기에 편한 세상이 되어서인지 아니면 젊음을 좀 더 즐기기 위해서인지 결혼 연령도 많이 늦어지는 느낌이다.


결혼하는 당사자들이야 결혼날짜를 어디 철학관 같은데서 받는 사람이 많으니 어떨지 모르겠지만 결혼식에 가야 하는 사람들은 주말에 초대 받는 것을 싫어한다. 요새는 토요일도 휴무하는 회사들이 많고 일요일과의 연휴를 위하여 회사에서의 금요일 회식자리도 싫다고 하는데 주말에 결혼식이 있으면 계획에 차질을 빚거나 계획이 없어도 결혼식 참가를 위하여 주말 낮 시간을 모두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즈음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목요일 저녁 6시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시간이 왜 하필 6시냐. 그러면 결혼식 핑계를 대고 좀 일찍 퇴근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러다 죽는 날도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 죽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계절로 치면 많은 사람들이 5월과 6월을 선호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5월에 4번, 6월에도 2건이 예약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가정과 사회 구조에서 50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많은 행사를 치러야 한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실 나이이고 아이들은 결혼을 해야 할 시기가 되며 자신들도 병원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본인이 가는 사람도 있으며 친구나 배우자를 먼저 보내는 사람들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그런 자리가 부담이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청첩장이나 부고를 고지서라고 하였을까.


며칠 전에 가까운 사람의 자제가 결혼을 한다는 청첩장을 받았다. 그런데 그 청첩장을 펴 보고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집안과 집안간의 행사이기도 하고 젊은 사람 본인들의 행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남녀노소가 다 참여하지만 본인들 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대부분의 청첩장에는 겸손하고 조심스러우며 상대를 존중하는 문구를 골라 사용한다. 그러나 내가 받은 청첩장은 전혀 그렇지 못할뿐더러 심하게 표현하면 불쾌한 생각이 들기도 하게 만들어져 있다.


보통사람들은 “모시는 글” 아니면 “초대합니다”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청첩장을 보내는데 내가 받은 청첩장의 겉장은 자신들의 사진과 더불어 “Wedding Invitation"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결혼청첩장을 영어로 직역하면 그렇게 되니 우리글은 적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냥 이해하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 ”Please share this special day with 

us and our family“ 라는 문구가 또 나온다.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단순하게 해석하면 ”(우리들의) 이 특별한 날을 우리와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하여 주십시오“ 라는 좋은 해석이 될 테고 그 의미로 썼다고 이해 하지만 그러나 영어로 표현 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말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지만 영어의 표현은 더 어렵지 않을까. 나는 이 영어 문구가 그 의미는 비슷하지만  ”(당신의) 특별한 날을 우리와 우리가족과 함께 하여 주십시오“ 라는 의미가 된다고 본다. 기쁨의 주체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따른다.


해석의 전자는 자기들의 기쁨을 나에게 나누어 준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나의 기쁨을 자기들에게 나누어 달라는 의미이다. 본인들은 전자의 의미로 썼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후자의 해석이 맞다고 본다. 따라서 기쁨의 주체와 해석에 따라 청첩을 받는 사람의 기분이 달라지는 문구이기도 하다. 어느 문구가 청첩에 맞을까 하는 문제를 떠나 더욱 모를 일은 외국인에게 보내는 청첩도 아니며 영어를 모르거나 나이든 사람들에게도 보내져야 하는 청첩인데 굳이 이렇게 완전하지도 않은 영어 문구를 겉장에 넣어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스스로를 축하하는 ”Happy Wedding Day” 라는 또 다른 영어 문구로 겉장의 끝을 맺는다. 물론 속장에는 우리말로 된 초대의 글이 간략하게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요새 유행하는 말로 “이건 아니잖아!” 하는 혼자말이 절로 나온다.


나 나름대로의 해석이 맞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건 나의 해석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영어 만능시대라고 하지만 이런 한국인 대중에 보내는 철첩에 까지 영어로 치장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설사 본인들이 영어가 유창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쓸 곳과 안 쓸 곳을 가릴 줄 알고 그럴수록 우리말과 글을 더욱 아끼고 사랑할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영어를 교육한다는 것과 외국과 하는 상업행위와는 전혀 문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2007년 6월 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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