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하늘공원의 여름 바람

korman 2007. 5. 28. 00:15

 

 

평화의 공원에서 하늘공원으로 오르는 계단

 

 난지도 (蘭芝島), 난초와 영지가 많아 난지도라 하였다던가. 난 지금 충남 당진에 있는 난지도 해수욕장을 말함이 아니다. 한강 북쪽 하류에 홍수철이면 강이 범람하여 토사가 쌓이면서 만들어 졌다는 평원. 오리가 물에서 노는 모양이라 하여 오리섬 또는 압도 (鴨島)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이곳에 사람들은 땅콩이나 각종 채소등 농작물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이름도 아름다운 이곳 난지도가 서울시의 생활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한 것은 1977년 강가에 제방을 쌓으면서 시작 되었다는데 성산대교를 거쳐 한강을 건너거나 강변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갈 때면 늘 쓰레기를 가득 싣고 난지도로 진입하는 트럭들과 그곳에서 풍기는 쓰레기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던 기억이 난다. 이 쓰레기 매립은 강변에 평균 90m의 쓰레기산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1993년 검단 쪽에 다른 매립지를 확보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고 한다.


그런 난지도가 2001년 월드컵 운동장이 생기면서 공원으로 조성되어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 월드컵공원으로 다시 태어나 시민들에게 즐겁고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누가 이 공간이 예전의 쓰레기 매립지였다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하늘공원에서 본 월드컵경기장

 

그 월드컵 공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원을 하늘공원이라 부른다. 인공으로 쌓아올린 해발 90m의 쓰레기산에 위치한 공원이다. 가끔씩 이곳을 지나 다녔지만 한번 가 보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지난 토요일 가족들과 함께 그곳을 다녀왔다. 토요휴일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늘로 오르는 공원길과 계단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곳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포장도로를 따라 산을 돌아 오르는 길이고 하나는 주차장에서 곧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으로 오르는 방법이다. 입구에서 올려다본 계단은 하늘에 닿아 마치 천국으로 이어지는 계단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나이 드신 분이나 혹은 아기를 동반한 가족들은 포장길을 택하고 있었지만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어린이에서부터 나이가 들었어도 다리가 튼튼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웃음 머금은 얼굴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비록 몇 계단 오르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늘로 오르는 계단

 

하늘공원의 꼭대기는 모두 평원으로 조성되었고 그 평원에서 지난 가을 방송을 통하여 가을의 향취를 물씬 느끼게 하여 주었던 억새와 갈대가 또 다른 가을을 위하여 싱그러운 초여름을 펼치고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 본 서울은, 그러나 스모그인지 황사인지, 희뿌연 모습 속에 한강 줄기를 따라 거대한 아파트와 빌딩군과 바삐 오가는 자동차들의 행렬을 드러내고 있고 그 속에 성산대고 옆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분수 물줄기가 하늘공원의 높이만큼이나 치솟고 있다.

 

 성산대교옆 분수


공원 곳곳에 서울의 모습을 동서남북으로 관찰 할 수 있는 전망대가 아주 잘 다듬어진 목책울타리 안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목책을 따라 온갖 낙서들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낙서들의 대부분은 사랑 타령이다. 얼마나 사랑하면 이런 곳에 꼭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것인지. 요새는 젊은 사람들이 자동차 밖의 뒤편에도 각자 이름의 영문 약자와 하트 모양으로 사랑을 표시하고 다닌다. 자신들을 위함인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으되 공공장소에 낙서를 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자동차에 붙이고 하는 사랑이 과연 얼마나 깊은 사랑인지 낙서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다. 요즈음 이성교제를 하는 대학생들의 30% 이상이 스스로 디카교제를 한다고 한다.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처럼 순간적으로 만나고 순간적으로 헤어지며 서로의 기억은 미련 없이 지워 버린다는 것이다. 하늘공원 목책에 남긴 많은 사랑의 맹세를 보면서 그들의 사랑이 모두  디카사랑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목책에 새겨진 사랑의 맹세

 

무너진 사랑탑

 너무나 사랑한 그대

 

낙서는 비단 그 뿐만이 아니다. 공원의 남쪽을 조망하는 전망대 목책에는 자녀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는 낙서도 있었다. 부모가 되어 자신들의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만 이런 공공장소에 낙서까지 해 가면서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어찌 잘되게 하겠다는 것인지 그 부모의 마음이 못내 아리게 닥아 온다. 짙은 녹색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갈대와 억새풀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고 그 바람을 타고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문득 어린시절 수수깡에 종이를 접어 돌리던 바람개비 생각을 하였다. 바람을 맞으려 마구 앞으로 뛰어가곤 하였는데.

 

다솜이가 이쁘게 크라는 부모의 마음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단 옆으로 노란 유채꽃 군락에 잠시 쉬어 계단 앞으로 탁 트인 평화의 공원을 내려다본다. 많은 가족들이 연못이나 분수가에서 싱그러운 여름을 맞으며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그곳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이곳의 아픈 과거에 대하여 알고나 있을까. 난지도 이름 그대로 앞으로 영원히 난초와 영지가 많이 자라는 들판이 되고 연못에는 오리와 철새들이 헤엄치는 영원한 보금자리가 되어 어두운 과거가 갈대숲에 묻히기 바란다. 

 

 


My Forever Friend
 Charlie Landsborough

 

2007년 5월 스무 이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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