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약속

korman 2007. 6. 17. 23:40
 

약 속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늘 크고 작은 약속을 하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약속이란 다른 사람과 할 일을 미리 정하여 두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성문화 된 약속이건 구두로 한 약속이건 간에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는 약속을 어긴 쪽은 신용이 없어지고 다른 한 쪽은 어떤 형태로든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서로간의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약속이 성문화 된 경우에는 가능한 한 지키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문서화된 약속은 지키지 않을 경우 법이라고 하는 또 다른 약속에 의하여 그 약속이 지켜지도록 강제적 명령이 주어지고 이 명령을 듣지 않을 때는 약속을 깬 쪽이 더 큰 손해나 신체적 구속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두로 한 약속을 잘 어기는 것은 구두로 된 약속은 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 한 약속을 깨는 당사자는 별로 손해 볼게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상대가 어떤 환경에 처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책임의 극치이다.


약속을 하였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본의 아니게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도 있다. 이런 경우 보통 사람들은 그 사유를 상대에게 이야기 하고 우선 양해를 구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또 다른 약속을 하고 대개는 서로 잘 지켜 나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세상살이가 좋은 쪽으로 계속 이어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단체나 개인과는 서로의 약속이 이어져 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그 단체나 개인과 사람들은 추가적인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신용에 금을 긋는 것이다.


개인들의 일상적인 약속의 경우 자신의 물질적 손해가 결부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상대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어기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에서나 통화가 되는 휴대전화가 있으므로 늦으면 우선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을 텐데 약속시간에 늦게 나타나서는 차가 밀려서 그랬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연락도 없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며 이쪽에서 연락을 취하여야 만이 뭔가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고 약속과 번복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모 회사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자재를 외국에서 사 달라는 연락을 받고 외국회사와의 계약을 비롯하여 은행 및 관련 요식행위 일체를 많은 시간과 노력과 경비를 들여 대행해 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며칠 후 그 모든 약속을 백지로 돌렸다. 나와의 약속은 둘째 치고 외국과의 계약은 어찌하느냐고 하였더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계약이야 깰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러느냐고 간단하게 이야기 한다. 아무런 설명이나 양해의 말도 없이.... 하도 기가 막혀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고 다행이 외국회사는 나의 구차한 양해를 잘 받아주었다. 그 후 국내의 다른 회사에서 같은 자재를 요구할 때 난 외국의 다른 회사를 찾아야 했다.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고 모 회사에 근무하는 젊은 친구와 점심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약속한 시간에 그 친구는 자리에 없었다. 회사 동료의 말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던 까닭에 그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하였다. 혹 연락하지 못할 사정이 생겼을지 몰라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몸이 좀 피곤하여 출근하지 않았다고 하며 약속에 대한 아무런 양해의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 전 약속이었으므로 미리 취소할 시간적 여유도 충분히 있었는데. 이런 친구와 또 다른 약속을 � 수 있을까.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서양 사람들의 약속에 대한 인식도 좀 배워 왔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장구한 시간동안 사회생활을 하여야 할 젊은 친구의 약속에 대한 인식이 이래서야 앞으로 어찌 긴 세월을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을 할까 걱정이 되었다.


몸이 온전하지 못하신 부친의 뒤를 이어 사업을 물려받아 공장을 운영하는 또 다른 젊은 친구와 공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도 미국에서 1년 반 정도를 생활 하였다고 하였다. 그 친구와는 처음 약속이었고 공장에 초행이라 좀 일찍 당도하여 기다리고 있었으나 약속시간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직원 하나가 그에게 연락을 취하고 하는 말이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공장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 역시 아무런 양해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와 또 다른 약속이 이어졌다. 그러나 두 번째 약속에도 그는 아무런 양해 없이 1시간 30분이나 늦은 시간에야 나타났다. 이 뿐만 아니라 그 친구는 전화로 하는 다른 약속도 건성으로 하는 듯 하였다. 한 사람이 약속을 어기면 다른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연쇄적으로 약속을 어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마치 한 회사의 부도가 연쇄 부도를 만들 듯이. 요즈음 들리는 이야기는 그 친구 회사의 직원들이 집단으로 사직하여 공장이 마비된다고 한다.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직원들과의 약속도 나에게 하듯 하였을 테니 그리 될 수 밖에 없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성문화 된 약속이건 구두 약속이건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자신을 지탱하는 첫 번째 요소라고 생각한다. 오늘 북한 사람들이 말도 않되는 트집을 잡아 사전에 약속되었던 6.15 공동축전을 무산시켰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들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많은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남한이라는 버팀목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이 이락처럼 되지 않고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 있었을까.


서양 우화에 “양치기 소년” 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약속을 하는 국가나 단체나 개인 모두가 가벼운 약속도 귀하게 생각하여 스스로 양치기 소년이 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2007년 6월 열일곱번째 날에

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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