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고려의 종

북한 금강산 장안사 범종

korman 2008. 6. 28. 13:46

 

제목 : 금강산 장안사 유실추정 범종 中뤼순박물관서 소장

이름 : 조계창(연합)

일자 : 2008.06.08

 

금강산 장안사 유실추정 범종 中뤼순박물관서 소장
日승려가 1906년 조선에서 다롄으로 옮겨

 

금강산 4대 사찰로 꼽히는 장안사에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범종이 중국 뤼순(旅順)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8일 확인됐다.

 

연합뉴스가 뤼순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기복종(祈福鐘)의 사진과 기록 등을 입수, 조계종 총무원 등에 확인한 결과 이 종은 1346년 원나라 순종(順宗)의 명을 받고 고려에 파견된 자정원사(資正院使) 강금강(姜金鋼)과 좌장고부사(座藏庫副使) 신예(辛裔) 등 원나라 장인이 금강산 장안사에서 주조한 범종이 유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

 

이 종을 장안사에서 유실된 범종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현재 개성 남대문에 걸려 있는 연복사(演福寺) 신주종(新鑄鐘)에 새겨져 있는 명문에 나타나있다.

 

명문은 "1346년 원나라 순종의 명을 받은 강금강과 신예가 금강산 장안사에서 범종을 만들고 귀국하는

길에 고려 충목왕(忠穆王)과 덕녕공주(德寧公主)의 요청으로 연복사의 종을 주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뤼순박물관의 왕쓰저우(王嗣洲) 연구실 주임이 작년 4월 대련만보(大連晩報)와 인터뷰에서

"원 순제(順帝.순종)가 1346년 사신과 장인을 보내 조선의 금강산에서 주조한 것"이라고 밝힌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원래 금강산 장안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종은 일본인 승려에 의해 1906년 인천을 통해 다롄으로

옮겨지게 된다.

뤼순박물관 안내문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포교를 위해 다롄에 파견됐던 일본인 승려

아베에이젠(阿部榮全)이 1905년 히가시혼간지(東本愿寺)를 세운 이듬해인 1906년 인천을 통해 이 종을

들여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종신의 높이가 2.2m, 종입의 직경이 1.35m, 무게가 1.67t에 달하는 이 종은 아랫단을 수평으로 처리한

한국 불종과는 달리 연잎을 본떠 물결 모양으로 처리한 전형적인 중국 불종의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종의 표면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와 관련, 조계종 관계자는 "이 종이 언제 장안사에서 반출됐는지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본 승려가

다롄에 절을 세워 포교를 하면서 중국적인 양식을 지닌 이 종을 골라 반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는 원대 불종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종을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하고 있다.

이 종은 1945년 일본 패망 이후에도 계속 사찰에 걸려 있다 1958년 다롄 노동공원 구내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2007년 3월 보존을 이유로 뤼순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 1층 로비에 전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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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뤼순까지'..떠돌이 고려 범종의 비운
북관대첩비 사례와 유사..반환문제 쟁점 부상 가능성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에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범종이 중국의 뤼순(旅順)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돼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뤼순박물관에 소장된 고려 범종의 이름은 기복종(祈福鐘). 이 종을 금강산 장안사에서 유실된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바로 비슷한 시기에 주조된 개성 연복사(演福寺) 신주종(新鑄鐘)의 명문에 나와있다.

명문에 따르면 자정원사(資正院使) 강금강(姜金鋼)과 좌장고부사(座藏庫副使) 신예(辛裔) 등 원나라 장인이

당시 원나라 순종(順宗)의 명을 받고 고려에 파견돼 금강산 장안사에서 범종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이들 장인은 장안사에 범종을 만들고 귀국하는 길에 고려 충목왕(忠穆王)과 덕녕공주(德寧公主)의 요청을 받고

고려의 수도 개성에 있는 연복사에 머물려 새로 범종을 만들었다.

중국측에서도 이런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왕쓰저우(王嗣洲) 뤼순박물관 연구실 주임은 작년 4월

대련만보(大連晩報)와 인터뷰에서 이 종에 대해 "원 순제(順帝.순종)가 1346년 사신과 장인을 보내 조선의

금강산에서 주조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역사기록과 언급을 종합해보면 이 종은 금강산 장안사에서 반출된 범종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종이 어떤 경로를 거쳐 금강산에서 뤼순까지 오게 됐는지 그 경위는 분명치 않다.

다만 뤼순박물관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는 이 종의 안내문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포교를 위해

다롄에 파견됐던 일본인 승려 아베에이젠(阿部榮全)이 1906년 인천을 통해 이 종을 들여왔다"고만 반입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또 이 종의 유래를 다소 구체적으로 기술한 중국측 문헌에 따르면 이 일본인 승려는 1905년 다롄에 일본 사찰인

히가시혼간지(東本愿寺)를 세운 뒤 자신이 조선에서 포교활동을 하면서 봤던 이 종을 일본 당국에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 다롄에 들여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이 종은 1906년 당시까지 금강산 장안사에 걸려 있었지만 인천으로 옮겨진 뒤 다롄으로 반출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커즌(Curzon) 후작이 금강산의 장안사와 유점사 등을 둘러보고 내셔널지오그래픽 1924년 10월호에 게재한

기행문에 범종과 관련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장안사는 한국전쟁 당시 화재로 소실돼 축대와 비석 등 일부 문화재만 남아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반출경위가 확인되면 자연스럽게 이 종의 반환문제도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다 2005년 10월 한국을 통해 북한에 반환된 북관대첩비는 이 종이

다롄으로 반출됐던 비슷한 시기인 1905년에 일본군 제2사단장 미요시 중장에 의해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였다.

하지만 중국측을 상대로 반환교섭을 벌이는 데는 난관도 예상되고 있다.

이 종이 금강산 장안사에서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만큼 일단 연고권은 한국이 아닌 북한에 있다는

점에서 북한이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한국에서 일방적으로 반환을 요구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작년 3월까지 다롄시내의 한 공원에서 일반에 공개됐던 이 종을 문화재로서 가치를 새로 평가해

뤼순박물관으로 옮겨놓은 데다 비록 고려에서 주조되기는 했지만 원나라 황제가 파견한 원나라 장인이 만든

범종이라는 점을 들어 연고권을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롄=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phillife@yna.co.kr 

 

출처 : 131229현재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chpri.org/board/content.asp?bCode=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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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동아일보 111117 기사

 

 

금강산 장안사 유실추정 고려범종 현재 뤼순(旅順)박물관 1층에 전시돼 있는 금강산 장안사 유실추정 고려 범종. 연합뉴스

한국 불교계가 일제시대 일본 승려에 의해 반출돼 중국 뤼순(旅順)박물관에 소장된 금강산 장안사의 고려 범종 반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외국에 유출된 문화재의 반환 운동을 벌이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과 조계종 중앙신도회 이상근 사무총장은 17일 뤼순박물관을 방문,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범종 '기복종(祈福鐘)'을 북한에 반환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이날 뤼순박물관 관계자를 만나 "기복종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6년 포교를 위해 금강산 장안사에 있던 것을 침탈, 중국에 들여온 것"이라며 "원래의 자리인 북한의 금강산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일제시대 조선과 중국 모두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항일투쟁도 함께했다"며 "일제에 의해 수탈된 고려 범종을 제자리에 돌려놓음으로써 남·북한과 중국의 전통적인 친선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뤼순박물관 측은 "기복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중국에 들어왔는지 잘 알고 있다"며 "중국은 국제 법률과 관례에 따라 처리하겠지만 이 문제는 외교 루트를 통해 협의돼야 할 일"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혜문 스님은 "이번 뤼순박물관 방문은 한국 불교계가 기복종 반환을 요구한다는 의지를 중국 측에 공식 전달한 것"이라며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반환이 성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북한도 이 종의 반환을 중국에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은 문화재 제자리 찾기와 기복종을 반환받기 위한 방안을 수차례 논의해왔으며 양측은 이달 22일 개성에서 다시 만나 재협의하기로 했다.

혜문 스님은 "중국 역시 청나라 원명원의 문화재들을 서구에 침탈당했고 이의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중국이 기복종 반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불교계와 공조, 기복종이 북한에 반환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중국 당국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기복종은 1346년 원나라 순제(順帝)가 중국의 장인들을 고려에 파견해 주조, 금강산의 4대 사찰이었던 장안사에 내걸었던 범종이다.

높이 2.2m에 직경 1.35m, 무게가 1.67t에 달하는 이 종은 아랫단을 수평으로 처리한 한국의 전통 범종과는 달리 연잎을 본떠 물결 모양으로 처리한 전형적인 중국 범종의 양식으로 주조됐으며 표면에는 산스크리트어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뤼순박물관이 내건 안내문에 따르면 이 종은 1906년 일본인 승려 아베에이젠(阿部榮全)이 포교를 위해 다롄(大連)에 절을 세운 뒤 인천을 통해 들여왔다.

이 종은 1945년 일본의 패망 이후에도 다롄의 사찰에 걸려 있다가 1958년 다롄 노동공원으로 옮겨진 뒤 2007년 3월 보존을 위해 뤼순박물관으로 옮겨져 1층 로비에 전시됐다.


(뤼순=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