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조선의 종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홍치4년명 동종(海印寺大寂光殿“弘治四年”銘銅鐘) (보물 제1253호)

korman 2008. 10. 16. 15:18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33> 수종사종·해인사종

 

조선 왕실 여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다

 

이번 호에 소개할 두 점의 범종은 왕실의 권위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적 작품이라기보다 왕비와 같은 왕실 관련 여성들이 발원한 종이다. 그런 점에서 규모가 이전의 대형 종에 비해 축소되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 두 종은 종각과 같이 외부에 거는 목적이 아니라 실내 의식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이러한 왕실 발원 범종은 연맥이 끊긴다. 개인 발원의 범종이 주류를 이루어간다는 점에서 거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수대비 인혜왕비 발원 조성

규모 작아져 실내의식용 추정

왕실발원 범종 마지막에 해당

저자세로 천판에 붙은 용뉴

원 양식 기본으로 명 양식 수용

 

홍치4년 해인사종

    보물 1253호. 해인사종이다. 높이 85cm, 구경 58cm로,

    조선 1491년에 조성됐다. 현재 해인사에 있다.

 

조선 전기의 범종 가운데 외형의 장식이 가장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주조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종신의 외형은 위가 좁고 밑으로 가면서 조금씩 벌어지다가 직선화된 원추 모양을 하였다. 두 마리의 쌍룡으로 이루어진 용뉴는 서로 몸을 얽혀 고리 부분을 만들고 양쪽에 머리를 돌려 천판에 맞댄 모습이다. 용뉴 아래로는 천판이 둥글게 솟아오르고 그 바깥을 돌아가며 폭이 넓은 연판문의 상대(上帶)를 배치하였다.

 

종신은 중간을 세 줄의 띠로 나누어 위아래로 분류했다. 상부 종신에도 중간에 하나의 띠를 둘러 위쪽에는 방형의 연곽과 보살상을 번갈아가며 배치했고 그 아래쪽에는 굴곡진 모습의 유려한 연당초문을 부조하였다. 아래쪽 종신에는 두 줄의 띠로서 3구 구획하여 가장 위쪽에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며 여의주를 쫓는 웅혼한 모습의 용을 구름무늬와 함께 표현되었다. 그 아래 단에는 파도무늬를, 다시 하단에는 팔괘문(八卦文)을 둘러 종신 전체를 돌아가며 빈틈없이 문양을 새겼다.

 

이와 같이 매우 복잡한 구성을 보이는 것은 이 종이 조선 왕실 발원 범종 가운데 명대 종 양식의 영향을 가장 뚜렷하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마리의 쌍룡이 등을 맞대고 앉아 용뉴, 연판문대, 굵은 횡대 구획으로 종신을 세밀하게 분할한 점, 파도문과 팔괘(八卦), 여의주를 쟁취하는 쌍룡의 문양대 모습은 앞서의 종들과 달리 명대 성화년간(成化年間)에 만들어진 종과 매우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15세기 후반에는 당시 명대 종 양식이 보다 더 조선시대 범종에 영향을 주었음이 파악된다.

 

해인사종에 새겨진 보살상.

 

특히 보살상의 모습은 마치 불화의 도상을 따른 듯이 늘씬한 신체에 얼굴은 매우 사실적이면서 양 어깨에 걸친 대의(大衣)와 다리 아래의 군의(裙衣)에는 화려한 영락이 장식되었다. 명문은 상부 쪽 종신에 연곽 아래마다 ‘홍치사년신해춘성해인사대적광전종(弘治四年辛亥春成海印寺大寂光殿鍾)’이라는 양각 명문을 4자씩 나누어 배치하고 있음이 독특하다. 이 종 역시 앞서의 수종사종을 시주하였던 인수대비와 예종(睿宗)의 계비인 인혜왕비(仁惠王妃)의 발원에 따라 대적광전(大寂光殿)과 기타 건물들을 대규모로 중수 중창하던 때인 홍치4년 성종 22년(1491) 봄에 해인사 대적광전 종으로 함께 주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왕실 발원 범종과 달리 종명과 조성감독, 장인들의 인명이 없이 조성연도와 종의 봉안처만을 간략히 새긴 점은 인수대비라는 왕실의 권력자에 의해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종이 국가적인 사업이 아닌 개인적인 발원에 의해 조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흥천사종으로부터 해인사종에 이르기까지 15세기 왕실 발원 범종의 용뉴 표현은 다양한 중국 종의 용뉴 중에서도 저자세로 천판에 붙은 모습의 용뉴를 채택했음이 확인된다. 또한 종신 중앙을 두른 횡대의 표현도 중국종의 요소이지만 불규칙적인 중국종의 횡대에 비해 왕실 발원 범종은 모두 조선의 규칙성을 지니고 있으며 가운데 선만이 유달리 굵게 표현되는 것이 차이점이다. 따라서 조선전기 왕실 발원 범종은 기본적인 형태에서 고려 말 연복사종과 같은 중국 원대 종 양식을 받아들였지만 새롭게 등장한 명대 종 양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사실이 파악된다.

 

이후 16세기에 제작된 범종에서는 왕실 발원 범종과 같은 권력층의 시주자와 자세한 발원의 내용을 담은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사찰 관련의 범종을 제작하기 위해 사대부 보다 일반 대중들과 스님 신분의 시주자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불교신문3403호/2018년6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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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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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31일 현재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홍치4년명 동종(海印寺大寂光殿“弘治四年”銘銅鐘) (보물 제1253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 사진은 복제본인듯 함.

 

종 목 보물  제1253호

명 칭 해인사 동종 (海印寺 銅鍾)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정(등록)일 1997.06.12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해인사 (치인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해인사

관리자(관리단체) 해인사성보박물관 

사의 대적광전 안에 있는 높이 85㎝, 입지름 58㎝, 두께 6㎝의 종이다.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두 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부분에는 연꽃을 새겼다. 밑으로는 돌출된 9개의 유두가 사각형모양의 유곽안에 있으며, 유곽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이 있다. 종 중앙에는 3줄의 굵은 가로줄을 돌리고 그 위쪽에는 꽃무늬를, 아래로는 용무늬를 새겨 종 전체가 무늬로 가득 차 매우 화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아랫부분에는 다시 2줄의 가로줄을 돌리고, 윗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괘를, 아랫쪽에는 아무런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유곽 아래에는 조선 성종 22년(1491)에 만들었다는 글이 있다. 이 종은 시대적 변천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불교 공예품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출처 : 문화재청 사이트 2014년 1월 30일 현재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12530000,38

 

추가 관련자료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95230&cid=40942&categoryId=33062============================================================

 

 

해인사 동종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대적광전에 있는 종. 보물 제1253호이다. 1997년 6월 12일 보물 제1253호로 지정되었다. 1491년(성종 22)에 해인사 대적광전에 봉안하기 위해 주조하였다. ‘해

terms.naver.com

 

2008년 10월 18일 현재

 

해인사대적광전“홍치4년”명동종(海印寺大寂光殿“弘治四年”銘銅鐘)

 

  종목 : 보물  제1253호 소재지 :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해인사  지정일 : 1997.06.12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해인사 관리자 : 해인사 해인사의 대적광전 안에 있는 높이 85㎝,  입지름 58㎝, 두께 6㎝의 종이다.

이 동종은 해인사 금당(金堂)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종으로 주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신라, 고려시대의 동종양식을 따르지 않고 조선 초기의 여러 동종양식을 보이고 있다.
 종신(鍾身)과 용뉴(龍뉴)로 구분된 이 종의 몸체는, 연화문(蓮華文)의 상대(上帶)와 무문(無文)의 하대(下帶) 사이를 5단으로 구획하여 각각 돌선대(突線帶)를 돌렸고 그 안에 여러가지 문양을 장식하였다. 종의 정상에는 용통(甬筒)이 없는 쌍룡(雙龍)의 용뉴가 원각(圓刻)되었는데 용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쳐나며, 어깨부분의 상대에는 21葉의 단판복연(單瓣覆蓮) 밑으로 유곽(乳廓)과 보살이 교차하여 4좌(座)씩 배치되었다.

 당초문대의 유곽내에는 아홉 개의 유두(乳頭)가 돌기되었고 보살은 양각된 입상으로서 원형두광과 보관, 천의 등을 모두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종신 중앙에는 3개의 굵은 돌기선을 돌려 중대를 이루었으며 이 돌기선을 중심으로 상·하부에는 각종 장식문양이 가득하다. 즉 상부는 당초문과 보상화문을 연속된 무늬로 도안화하여 양각하였고, 하부는 운룡문과 파수문을 양각해 놓음으로서 종신전체가 무늬로 가득하여 매우 화사하다. 하대는 파상문 밑에 태선일조(太線一條)로 구획되었는데 위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팔괘(八卦)를 배치하였고, 아래쪽에는 아무런 무늬도 새기지 않았다. 특히 유곽이 있는 단 아래부분에는 주조년대와 소장처를 알려주는『해인사 대적광전종 홍치사년신해춘성(海印寺 大寂光殿鍾 弘治四年辛亥春成)』이라는 해서체(楷書體)의 양주명문(陽鑄銘文)을 고식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횡서하였다.


이로보아 이 종은 조선 성종 22년(1491) 해인사 대적광전의 종으로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용뉴의 힘찬 형상과 종신에 새겨진 정교하고 다양한 무늬들을 통해 심혈을 기울여 정성껏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조선 초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조솜씨가 우수하고 조각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동종으로는 매우 뛰어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동종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범종의 변천과정과 양식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불교공예 자료로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출처 : http://www.nul.pe.kr/history/cultural/etc/0089.htm 2008년 10월 18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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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28일 발췌

문화재명 : 해인사 동종
종목 : 보물 제1253호
시대 : 조선 성종 1491년
크기 : 높이 85, 종구 58cm
소재지 : 경남 합천 해인사

상세설명 :  경남 합천 해인사 금당 대적광전에 있고 홍치4년이란 명문이 있어 "해인사대적광전 홍치4년 명동종(海印寺大寂光殿“弘治四年”銘銅鐘)" 이라 부른다.   높이 85㎝, 종구(입지름) 58㎝, 두께 6㎝다.  종을 매다는 용뉴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쌍룡이다.  종정 구모양으로 둥그렇게 솟아올라 있고 어깨(상대)에는 연꽃무늬(21엽, 葉의 단판복련, 單瓣覆蓮)를 두었다.  상대 아래에는 당초무늬의 사각띠 안에 꽃무늬를 바탕으로 한 돌출된 유두를 두고, 유곽 사이 사이에는 보살상 4구가 있다.  보살상은 양각된 입상으로서 원형두광과 보관, 천의 등을 모두 선각으로 표현하였는데 선이 매우 유려하다.  상대와 유곽사이에 돌출된 가로 띠가 있고 띠 위로 명문이 있는데, 조선 성종 22년(1491)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해서체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해인사 대적광전종 홍치사년신해춘성(海印寺 大寂光殿鍾 弘治四年辛亥春成)』라 양주하였다.  종신(몸통) 중앙에는 3줄의 굵은 가로줄을 돌리고 그 위쪽에는 꽃무늬(보상당초문)를, 아래에는 용무늬(운룡문과 여의주)를 양주하였다.  다시 돌출된 띠를 두르고 대칭적인 수파문을 두고, 그 아래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더 도드라진 8괘를 양주하였다.  그리고 맨 아래 종구 부분은 민무늬로 처리하였다.  돌출된 띠를 이용하여 종신을 여섯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용뉴의 쌍룡, 수파문, 운룡문 등을 통하여 조선 초기의 동종양식을 알 수 있다.

 

종신 가득한 문양과 군더더기 없는 선으로  보는 순간 화려하면서도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주는 공예적인 좋은 종이다.  

 

출처 : 문화상품.com

2008년 6월 28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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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3일 발췌

 

종    목 보물  제1253호
 
명     칭 해인사대적광전“홍치4년”명동종(海印寺大寂光殿“弘治四年”銘銅鐘)
 
분     류 유물 / 불교공예/ 의식법구/ 의식법구
 
수량/면적 1구
 
지 정 일 1997.06.12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해인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해인사
 
관 리 자 해인사
 
 
일반설명 | 전문설명
해인사의 대적광전 안에 있는 높이 85㎝, 입지름 58㎝, 두께 6㎝의 종이다.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두마리의 용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고 있고, 어깨부분에는 연꽃을 새겼다. 밑으로는 돌출된 9개의 유두가 사각형모양의 유곽안에 있으며, 유곽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이 있다. 종 중앙에는 3줄의 굵은 가로줄을 돌리고 그 위쪽에는 꽃무늬를, 아래로는 용무늬를 새겨 종 전체가 무늬로 가득 차 매우 화사한 느낌을 주고 있다. 아랫부분에는 다시 2줄의 가로줄을 돌리고, 윗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8괘를, 아랫쪽에는 아무런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유곽 아래에는 조선 성종 22년(1491)에 만들었다는 글이 있다. 이 종은 시대적 변천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불교 공예품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동종은 해인사 금당(金堂)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의 종으로 주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신라, 고려시대의 동종양식을 따르지 않고 조선 초기의 여러 동종양식을 보이고 있다. 종신(鍾身)과 용뉴(龍뉴)로 구분된 이 종의 몸체는, 연화문(蓮華文)의 상대(上帶)와 무문(無文)의 하대(下帶) 사이를 5단으로 구획하여 각각 돌선대(突線帶)를 돌렸고 그 안에 여러가지 문양을 장식하였다. 종의 정상에는 용통(甬筒)이 없는 쌍룡(雙龍)의 용뉴가 원각(圓刻)되었는데 용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쳐나며, 어깨부분의 상대에는 21葉의 단판복연(單瓣覆蓮) 밑으로 유곽(乳廓)과 보살이 교차하여 4좌(座)씩 배치되었다.

당초문대의 유곽내에는 아홉 개의 유두(乳頭)가 돌기되었고 보살은 양각된 입상으로서 원형두광과 보관, 천의 등을 모두 선각으로 표현하였다. 종신 중앙에는 3개의 굵은 돌기선을 돌려 중대를 이루었으며 이 돌기선을 중심으로 상·하부에는 각종 장식문양이 가득하다. 즉 상부는 당초문과 보상화문을 연속된 무늬로 도안화하여 양각하였고, 하부는 운룡문과 파수문을 양각해 놓음으로서 종신전체가 무늬로 가득하여 매우 화사하다. 하대는 파상문 밑에 태선일조(太線一條)로 구획되었는데 위쪽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팔괘(八卦)를 배치하였고, 아래쪽에는 아무런 무늬도 새기지 않았다. 특히 유곽이 있는 단 아래부분에는 주조년대와 소장처를 알려주는『해인사 대적광전종 홍치사년신해춘성(海印寺 大寂光殿鍾 弘治四年辛亥春成)』이라는 해서체(楷書體)의 양주명문(陽鑄銘文)을 고식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횡서하였다.

이로보아 이 종은 조선 성종 22년(1491) 해인사 대적광전의 종으로 주조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용뉴의 힘찬 형상과 종신에 새겨진 정교하고 다양한 무늬들을 통해 심혈을 기울여 정성껏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조선 초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조솜씨가 우수하고 조각이 아름다워 조선시대 동종으로는 매우 뛰어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동종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범종의 변천과정과 양식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불교공예 자료로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2007년 6월 3일 현재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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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7일 발췌

弘治 4年 辛亥(1491), 청동, 전체높이 84.8cm, 종높이 66.2cm, 입지름 57.0cm, 해인사성보박물관, 보물 제1253호
이 종은 인수왕비仁粹王妃와 인혜왕비仁惠王妃의 발원으로 해인사 대적광전이 중수되면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뉴는 두 마리 용이 5발가락의 앞발로 둥글게 솟은 천판을 힘차게 딛고 등위에 올려진 여의주를 뒷발로 꽉 거머쥔 모습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하대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벌어지는 ∩모양의 종신은 긴장감이 감도는 조형미를 이루고 있다.


종신은 굵게 도드라진 횡대 사이로 정교하게 조각된 화려한 무늬들이 가득하다. 상단에는 귀꽃장식이 있는 화려한 연판무늬 견대가 돌아가고, 아래에는 4좌의 연곽과 4구의 보살상을 번갈아 배치하였다. 연곽 아래에는 '弘治四年' · '辛亥春成' · '海印寺' · '大寂光殿'등의 주성 기록이 또렷하다. 보살상은 흥천사 종, 낙산사 종, 봉선사 종에서 보았던 우아한 보살상보다 표정
이 엄숙해지고 합장한 자세도 경직되어 있다. 입고 있는 법의도 팔뚝을 드러내지 않고 온몸을 감싸고 있다. 이 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종복을 감싼 3개의 문양대이다. 종복에 띠를 두르는 형식은 중국종의 영향으로 생각되지만 해인사 홍치4년명 종은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아름다운 문양대들을 둘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맨 위에는 커다란 넝쿨 사이로 활짝 핀 연꽃과 연잎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고 아래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며 구름사이를 노니는 용과 거칠게 일렁이는 파도무늬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종구에서 8.2cm 올라간 곳에는 연복사종(1346년)에서 보았던 팔괘八卦가 하대 문양으로 돌아가고 있다.

 

 2007년 3월 27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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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海印寺) 대적광전(大寂光殿) 홍치사년(弘治四年) 범종(梵鍾)(2-61, 3-46)

 

소재지(所在地) : 경상북도(慶尙北道) 섬천군(陝川郡) 가야면(伽倻面) 치인리(緇仁里)

연 대(年 代) : 1491年(성종(成宗) 22年, 홍치(弘治) 4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실측치(實測値) : 총고(總高); 85cm, 용통고(甬筒高); cm, 상대폭(上帶幅); 5.7cm 유곽장(乳廓長); 20.2× 

15.2cm, 구경(口徑); 57.5cm, 종신고(鍾身高); 72.5cm, 용통경(甬筒徑); cm, 하대폭(下 

帶幅); 9.9cm, 종구후(鍾口厚); 5.8cm, 용뉴고(龍鈕高); 14cm, 천판경(天板徑); 28.5cm 

유곽폭(乳廓幅); 2cm, 당좌경(撞座徑); cm

 

 범종(梵鍾)의 정상(頂上)은 반구형(半球形)에 일체쌍두(一體雙頭)의 용뉴(龍鈕)를 구비하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以前)의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의 양식(樣式)을 제대로 갖춘 범종(梵鍾) 중(中)의 하나이다. 종정(鍾頂)인 천판(天板)의 경사면에 따라 비스듬하게 위에서 주회한 단판(單瓣) 복연(覆蓮) 21판(瓣)의 상대(上帶)를 갖추고 있고, 그 밑으로 상대(上帶)와 접하지 않고 독립 구성한 4개소의 유곽과 원형두광과 보관을 갖춘 보살입상 4구

(軀)를 교대로 배치하고 있다.

 

유곽은 사다리꼴이며 문양은 인동초문(忍冬草紋)이며 유곽에의 9유두는 8판연화좌(瓣蓮華座)에 자방(子房)이 돌출된 연봉형의 유두를 갖추고 있다. 유곽 밑으로 명문(銘文)이 4개소(個所)에 명기(銘記)되어 있다.

 

이 명기(銘記)된 명문(銘文) 밑으로 종신(鍾身)을 5등분(等分)으로 융기된 태선대(太線帶)로 구획(區劃) 분할(分割)하고 있는데 중앙(中央)은 3조(條)의 태선대(太線帶)로 하고 그 위쪽은 1조(條)의 태선대(太線帶)로, 3조태선(條太線) 밑으로는 각(各) 1조(條)씩 3개(個)를 주차시켜 종신 4등분하고 있다.

 

중앙의 3조태선(條太線)이 유곽을 바로 밑의 1조(條) 태선(太線)의 간지(間地)에는 화려한 보상화문(寶相華紋)으로 장식 조식하였고, 3조태선(條太線) 바로 밑으로는 박력있고 사실적인 운용문(雲龍紋)을 4개소(個所)에 양주(陽鑄)로 양식하였다. 이 문양대(紋樣帶) 직하(直下)에 1조(條)의 태선(太線)을 늘려 파도문(波濤紋)이 조식되어 있으며, 또 그 밑으로는 융기된 태선(太線)을 상하(上下)로 돌리고 폭 4.2m의 간지에 8괘(卦)를 배치하여 파도문과 8괘문(卦紋)이 하대(下帶)를 이르는 듯 조식처리하고 종구(鍾口) 가까운 곳은 무문대(無文帶)로 처리하고 있다.

 

유곽 바로 밑에서부터 주회시킨 융기태선 전부는 각(各) 0.5cm에서 0.6cm에 이루는 태선(太線)이다.

 

양식상(樣式上)으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전기(前期) 범종(梵鍾)을 따르고 있으며 홍치(弘治) 4年 신해(辛亥)는 22年 신해(辛亥)이고, 1491年이며 성화년간(成化年間) 만력년간(萬曆年間)의 범종(梵鍾)들과 더불어 조선 전기종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의 범종이다.

 

명문내용(銘文內容)은 弘治四年 辛亥春成 海印寺 寂光殿鍾(홍치사년 신해춘성 해인사 적광전종)

 

출처 :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간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