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늦가을의 멜랑꼴리

korman 2013. 11. 27. 20:07

 

 

 

 

늦가을의 멜랑꼴리

 

겨울로 가는 빗길에 거센 바람이 밤새 동반 하더니 아침에 보니 아파트 정자곁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던 까치밥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직 아파트단지 안에는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한 단풍은 남아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한밤 베란다 문을 두들겨대던 요란한 비바람에 쓸려 담장 넘어 큰길에 누워 온갖 자동차 바퀴에 밟히고 찢겼다. 오늘 어디엔가는 눈이 왔다고 하였는데 내가 지금 있는 곳에는 밤에 오려는지 아직은 비와 진눈깨비와 바람과 햇빛이 어울려 서로 오락가락 하고 있다.

 

늦가을과 초겨울이 겹치며 만들어지는 이런 을씨년스러운 날씨에는 문득 어렸을 때 읽었던, 지금은 줄거리도 잊어버린 그러나 담쟁이 잎 하나는 기억에 남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Last Leaf)’라는 소설과 비운의 가수 배호의 ‘마지막 잎새’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리고 계절이 겹치듯, 무슨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한 잔의 블랙커피와 소주가 지난 세월 위에 오버랩 되며 지나간다. 이런 기분을 ‘멜랑꼴리’하다 하였던가!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고 한 어느 시인을 들먹이며 마누라에게 소주 한잔을 청해 보지만 그래도 이런 날의 소주잔에는 긴 세월을 나누어 마신 친구가 그립다.

 

어느 주말 아침방송에서 “고독사”에 대하여 이야기 하던 날에 언뜻 들은 이야기, “같은 건물 3층에 살고 있는 아들이 1층에 살고 있던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한 달이 지나서야 알았다”라던 이야기가 왜 하루 종일 생각났을까? 젊은 시절 장기 출장에 심신이 지쳐있을 무렵 오늘 같은 날씨를 경험하였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밀려와 커피 한 잔을 들고 카페 창가의 테이블에 앉으려는데 한 할머니가 합석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내게 어머니가 살아 계시냐고 묻고는 하는 이야기 “내 아들이 일주일에 꼭 한번씩은 전화를 한다우”였다. 그게 아들에 관한 자랑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나는 속으로 “아들X이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아? 이 나라에서는 그것도 자랑이 되나?”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안 계신 지금 그 할머니의 자랑이 3층과 1층 사이에서 같이 맴돌았다. 과연 그게 자랑거리였구나.

 

날씨가 기분을 만든다더니 오늘 너무 멜랑꼴리 하였나? 그 이야기를 나누며 마누라가 따라준 소주잔을 들려는데 손주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오는 아들 녀석의 손에 맥주와 치킨이 들려있다. 이심전심이라고 이 녀석도 오늘 멜랑꼴리 하였나? 아들과의 소맥 한잔에 하루의 멜랑꼴리는 눈 녹듯이 살아지며 나이 생각 않고 쌓이는 눈이 기다려진다.

 

2013년 11월 27일

하늘빛

노래출처 : http://cafe.daum.net/cham102 (다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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