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17년 5개월의 인권

korman 2013. 12. 17. 12:06

 

 

 

 

 

17년 5개월의 인권

 

머그잔 가득 커피 한 잔을 들고 내다본 하늘이 밝아오는 여명에도 열릴 줄 모르고 회색빛을 낮게 드리우고 있다. 문득 그는 아직 중천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잿빛하늘에 잠시 눈을 매이게 한다. 그가 하늘로 간지 아직 49일이 지나지 않은 것 같으니 지금도 그곳에 머물며 그가 사랑하였던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며 17년 기억을 더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사경에 들어간 게 6월이라고 하니 여름옷을 입고 있었을 텐데 중천에서 춥지나 않은지, 혹여 지녔던 그 무거운 장비들이 천상으로 가는 그에게 아직도 짐이 되지는 않는지 부질없는 생각에 빈잔 가득 새 커피를 부었다.

 

17년 5개월이 지났다고 하였다. 그가 의경으로 시위진압에 나섰다가 학생 시위대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정신을 잃은 채 집단 구타를 당하고 깨어나지 못한 세월이. 그 때 그의 나이는 20세였고 시위대와 같은 대학생이었으며 병역의 의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리 긴 세월동안 그 애틋한 청춘을 병원 침대에서 다 보냈으나,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집단 구타를 한 사람들 앞에 당당히 일어섰어야 했음에도, 안타깝게도 그는 부모님의 애절한 바람을 뒤로하고 지난 달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이른 아침 커피 한 잔을 들고 여명을 바라보다 문득 그를 떠 올린 것은 틈만 있으면 나라 안에서는 온갖 것에 다 “인권”을 외치는 식자들이나 단체들의 그의 죽음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라 밖이나 북한의 그것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할 줄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 하는지, 요새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무지한 처형 소식에 대한 그들의 고요함에 대한 섭섭함 때문이었을까?

 

국제적인 인권단체 중에 ‘ㅇㄴㅅㅌ'이라는 단체가 있다. 영국에 본부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지부가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온갖 시위가 있을 때 마다 정부가 시위대의 인권을 탄압한다고 외쳐댔다. 얼마 전에는 밀양 송전탑 시위진압에도 언급을 하였다. 국제인권단체로 유명세를 떨치며 인정을 받고 있으니 그들의 말에 개인적으로 다 동조를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운동으로 잘못된 인권이 바로 잡히는 경우도 많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 대고는, 시위대의 인권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그들은, 그러나 시위대가 불법으로 휘두르는 죽창이나 쇠파이프에 부상당하는, 그래서 17년 동안이나 병원에 있다 끝내 숨을 거두는 전.의경들과 시위대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나 각종 권리에 대해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언젠가 쇠파이프에 죽창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때 시위대의 인권에 대하여 연일 언급하던 그 단체에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시위대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하겠지만 시위를 막는 전.의경도 인권이 있으니 경찰병원에 한번쯤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17년 동안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있다 세상을 뜬 그와 그 부모에게서 그들이 느끼는 인권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른 당사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가끔씩 힘이 없어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만만한 게 홍어 X이냐”라던가 혹은 “왜 자꾸 나만 가지고 그래” 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사용한다. 내가 그 단체에 이메일을 보낸 이유는 힘 있는 나라에는 인권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하지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대한민국이 홍어X"처럼 보이는가 싶어서였다. 미국과의 FTA체결에 대한 시위가 한창이던 때 미국 원정을 가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고 되지 않은 물품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아스팔트에 강제로 엎어져 (‘패대기쳐졌다’라 하고 싶다)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지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되었다. 그들은 하였는데 내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시위대에 대하여 연일 인권을 외쳐대던 동 단체는, 우리나라 지부에서 조차도, 그 일에 대하여 인권을 내세우는 어떠한 행위를 하였다는 보도를 접하지 못하였다. 또한 예전은 물론 최근 ‘장성택’을 비롯하여 일반 국민들 까지도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을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하여도 그들은 함구하고 있는 것 같다. 국제적으로 그리 명망이 있는 인권단체라면 최소한 그 단체의 본부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지부에서 만은 뭔가 언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라 안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던 그 많은 인권관련 식자들과 단체들은 북한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조용한 것일까? 혹시 나중에 혼날까봐? 아니면 북한에는 인권이 아예 없으니 거론 할 주체가 없어서?

보호해야 할 인권은 우리나라 시위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무엇을 하건 지구상의 모든 나라 모든 국민들에게 똑 같이 존재함을 민권을 외치는 그들이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17년 5개월 동안 의식 없이 살다가 저세상으로 간 의경의 인권이 그의 사후에라도 살아나 아들 없는 세상에서 더는 시를 쓸 수 없다는 그의 부친이 아름다운 시를 계속 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2013년 12월 16일

하늘빛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치기 소년  (0) 2014.01.11
탁상달력  (0) 2013.12.31
눈병 이야기  (0) 2013.12.10
늦가을의 멜랑꼴리  (0) 2013.11.27
동방예의지국  (0) 2013.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