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
토요일 아침,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른 아침일 수도 있는 시각, 민간 헬기 한 대가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25층 정도에 부딪쳐 추락하였다는 속보가 이어졌다. 그 정도 높이면 지상에서 70m 정도도 안 될 텐데 헬기가 어찌 그런 낮은 고도로 날다 변을 당했을까 하는 마음에 한 종편 케이블방송의 뉴스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게 토요일 아침의 비보보다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방송국은 인적자원이 많고 인맥도 많다. 따라서 온갖 관련 정보가 눈 깜빡하는 사이에 방송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비록 전화 인터뷰였기는 하지만, 온갖 전문가들을 다 동원하여 뉴스를 진행하는 방송국의 능력에 새삼 놀라움이 앞섰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이 진행하는 방송 내용은 또 다른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취재기자를 포함하여 뉴스를 진행하는 분들이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과 동시에 충돌과 추락에서 채 한 시간도 안 된 그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 그들 스스로 결론을 내고 싶어 하였으며 진행자들의 주관적인 곳으로 결과를 몰고 가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보가 전해진 토요일 아침에는 안개가 짙게 껴 있었고 조종사 두 분은 사망하였으며 제3자가 원인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아무런 단서가 나타나 있는 상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진행자들은 전화로 연결된 전문가들에게 계속 원인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고 같은 말을 되묻고 있었다. 물론 그 원인은 시청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눈에 보이는 단서가 없는데 전문가들이라고 누군들 그것을 즉각적으로 알까? 모두가 시청자들도 추측할 수 있는 원론적인 대답일 뿐. 그와 더불어 진행자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임원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단지 그가 잠실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회사의 무리한 지시가 있었지 않았느냐, 또한 가상관계로 김포공항에서 이륙허가를 해 줄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외압이 있었지 않았느냐 쪽으로 성급한 뉘앙스를 풍기며 자신들의 주관대로 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다.
뉴스는 추락현장에 서울시장이 나와 시찰을 하고 한 말씀 하시는데 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그 분 말씀은 또 다른 놀라움이 되었다. 서울의 수장이 공식적으로 마이크를 잡았으면 우선 상황이야 어떻던, 자신의 진정성이 있든 없던, 먼저 희생당한 분들과 매우 놀랐을 아파트 주민에 대한 위로의 말부터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불행 중 다행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이라는 표현으로, 그리고 “서울시 책임은 아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하였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그 사건의 대소나 책임 유무를 떠나 희생당한 분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위로의 말이 우선이어야 하였거늘! 그리고 화면 하단에 흐르는 자막은 “...당에서는 우리의 영공 관리에 구멍이 뚤렸다.....”라 평하였다는 것이었다. 전후좌우도 모르는데 어찌 그런 평을 마치 사고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 재빠르게 할 수 있는지 의아하였다. 계속 보고 있자하니 회사 임원의 이름과 그 당의 평은 확인 결과 그게 아니었는지 자막에서 슬그머니 없어졌다.
저녁에 또 그 방송뉴스를 보았다. 아침과 같은 취재기자에 전문가들과 연결하여 인터뷰하는 형식은 아침과 다를 바 없었지만 저녁이라고 그 원인이 밝혀질까. 그런데 저녁에도 내가 의아하였던 것은 전문가라는 분들의 대부분이 기상이나 조종사들의 판단착오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크며 기체결함에 의한 사고는 아닐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유로 동 헬기는 영국 왕실에서도 사용하고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장 안전한 기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그렇다고 고장이 없을까. 아무리 헹기 자체가 좋은 기종이고 정비를 잘 하였다 하더라도 고장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헬기가 갑자기 예정항로를 이탈하여 건물에 충돌하고 그 높이도 70m 정도로 매우 낮았다면 헬기의 방향과 고도를 조정하는 부분이 고장 났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찌 고장은 아니었을 거라 그리 쉽게 단정할 수 있는지 마치 유명한 브랜드 가방이니 찢어지지 않을 거라는 말과 흡사하였다.
뉴스에 참여한 기자는 블랙박스에 대한 상식이 없는지 혹은 음성기록장치와 혼돈을 하는지 “당국에서 블랙박스를 판독하여 원인을 알려준다고 하였는데 그 발표가 계속 미루어져 기다라고 있다”고 하였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객관적이고 냉정하였어야 할 뉴스진행자들이나 뉴스에 참여한 전문가들 모두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하루였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고장 가능성을 제시하는 분들은 없는 것 같다. 원인이야 시간이 지나고 전문가들이 블랙박스를 분석하고 파손된 기체를 조사하면 밝혀지겠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2013년 11월 17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