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고개 숙인 사람들

korman 2014. 3. 16. 17:13

 

 

 

개 숙인 사람들

 

점심을 같이하기로 한 일행과 퇴계로 골목길 조그마한 음식점의 빈 테이블에 앉아 상차림을 기다리고 있는데 직장 동료들인 것 같은 젊은 친구들이 옆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순간적으로 밥 먹는 시간이 좀 시끄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그 테이블에서는 그저 밥 먹는 그 자체의 소음 외에는 오고가는 대화가 거의 없었다. 순간 우리 일행은 옆을 바라보며 그저 소리 없는 웃음만 지었다. 그 친구들의 테이블에는 사람 수 만큼의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고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각자의 그것과만 식사중의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밥 먹을 때 말을 하면 어른들로부터 야단을 맞고 자란 나에게는 조용한 식사가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그것이 밥 반찬인양 밥 한 수저에 스마트폰 한번 바라보기로 점심시간의 즐거운 대화를 단절하는 모습은 밥 먹는 순간에도 스마트폰 증후군이 이들을 지배하는 것 같아 낯설다는 것을 떠나 애처로움으로 다가왔다.

 

아파트 어귀에서 아기 엄마들을 만났다. 햇볕이 따뜻했음인지 아기와 산책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나였지만 그러나 난 그 젊은 엄마들을 빨리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졸였기 때문이다. 고만한 손주들이 있어서인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는 앞을 보고 손으로 미는 것이 아니라 꾸부정하게 유모차 손잡이에 두 팔을 얹고는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보기에 열중하며 유모차를 밀고 갔다. 순간 내 눈에 뜨인 것은 반쯤 깨져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차.보도 경계석이었고 유모차는 그리로 움직여갔다. 다행이 바퀴 한 쪽이 옆에 살짝 걸리며 엄마의 고개를 들게 하였지만 그새 내 몸은 순간적으로 그 유모차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서너 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걷고있는 엄마의 고개는 아이가 엄마에게서 점점 뒤처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동차들이 지나가건 말건 스마트폰에 숙여진 채 들려지지 않았다. 조금 바라보다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애기가 넘어질 것 같아요.” 했다.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챙겼다. 나이 먹은 자의 괜한 참견이라 느끼면서도 고개 숙인 엄마들 때문에 아이들이 애처롭게 생각되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전철 안에서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지적은 어제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무릎 위에 책을 펼친 사람들은 늘 있어왔지만 그러나 요새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책이나 신문을 펼친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그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차안의 사람들이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앉아있건 서있건 대부분은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있다. 눈이 바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이 바쁘다. 손에는 모두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물론 그걸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옆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훔쳐본 화면에는 우선 손가락 운동을 열심히 시키는 프로그램이 열려있었다. 나 또한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지고 난 후부터 가끔씩이나마 먼 거리를 여행할 때 지니고 다녔던 책이 점차 손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자연히 고개 숙인 사람들 틈에 끼이게 되었다. 물론 그것으로 알고 싶은 것을 찾아보고 공부한답시고 녹음된 것을 듣기도 하고 졸리면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기도 하지만 그것이 종이를 대신 한다는 말에는 쉽게 공감이 안 되는 것은, 보기 편하고 휴대가 간편하기는 하지만, 화면을 본다는 것이 비록 좀 큰 화면일지라도, 종이 보다는 눈이 빨리 피곤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제는 책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귀찮게까지 생각된다. 벌써 나 자신이 스마트폰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니 나도 음식점의 젊은 사람들이나 매 한가지로 애처로워진 것이다.

 

한창 출장을 다닐 때 도쿄에 가 지하철을 타면 “일본X들은 참 책을 많이 읽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오랜만에 작년 봄 오사카의 지하철에 오르며 살펴본 풍경은 우리의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 없었다. 일본사람 특유의 그 신문을 쪼가리로 접어 보는 노인들을 몇 번 보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 탐닉에 열중하고 있었다. 요즈음 TV에 비쳐지는 서양의 길거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다. 그러하니 그들의 지하철 안 풍경도 우리의 그것과 그리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요새 가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그 쓰임새 및 부작용 등에 대하여, 어쩌면 부러움 반 질투심 반으로 신문에 기고한 것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자부심을 느끼지만 고개 숙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의 일원인 나 자신을 생각하며, 세월과 생활이 첨단화 될수록 인간과 사회는 아날로그의 따뜻함이 이어져야 하는데 대화 없는 혼자만의 시간들이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도 고개를 숙이게 하는 건 아닌지 하는 부질없는 잡념에 고개를 치켜본다.

 

2014년 3월 15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