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보다 이웃 간의 정이 먼저였으면
주말, 아들내외와 손녀들이 모두 와 저녁을 같이하는 시간에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연즉 아래층에 사는 젊은 부인이었다. 그런데 이 부인은, 평소에 만나면 목례정도는 하는 사이였는데, 남의 집 저녁 식탁에 갑자기 찾아와서는 문을 열자마자 가벼운 인사조차도 없이 이마에 주름살가득하게 찡그리고 다짜고짜 짜증어린 소프라노톤 목소리로 “아이들이 뛰어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어요. 좀 뛰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순간, 머리가 위로 솟구치는 느낌을 받아 생각없이 손주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할아비의 갑작스런 큰 소리에 놀란 손녀들이 울음을 터트리고 할머니가 얼른 일어나 사과를 하자 그녀는 멋쩍은 듯이 자기는 괜찮은데 그 아랫집, 그러니까 내 집의 아래 아랫집에서 자기 집에 뭐라고 한다는 한 마디를 남기곤 내려갔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이 심장마비씩이나.....
이제 세네살 된 손녀 둘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내 집에서 있는 시간은 어미가 퇴근하여 데려가는, 늦어도 저녁 7시 이전까지, 3시간여에 불과하다. 물론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들이 한창 콩콩거리며 뛰기 좋아하고 잔소리 한들 먹혀드는 나이도 아닌지라 할머니는 그녀를 만날 때 마다 그 시간 동안 불편하더라도 좀 이해를 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그 저녁시간에는 아이들이 맨바닥도 아니고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좀 뛰다가 곧 식탁에 앉았기 때문에 아래층에 별로 들린 것이 없었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자기 집 아래층에서 자기 집에다 대고 뭐라 한다며 내 집에다 그리 일갈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울음을 그치라고 안아주며 “얘들이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잠시 뛴 것이 한층 건너에 까지 들리나”하는 의문이 들어 할머니에게 그 아래층에 가 이야기 좀 하고 오라고 하였다. 그 집과도 늘 인사는 하고 지내는 사이지만 아이들이 뛰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껏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집 아래층 그 젊은 부인 집에는 아들이 둘 있다. 연년생으로 모두 여기서 낳아 길렀으며 형이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아직도 아래층 생각 안하고 어른들 잔소리가 없으면 한 창 뛸 나이이다. 그리고 사내아이들이니 그녀의 아래층에서는 많이 시끄러웠을 것이다. 아래 내려갔던 할머니가 올라와 “젊은 여자가 자기애들은 생각 안 하고 너무 하구만” 하면서 들어왔다. 이야기인즉슨 그 집에서는 내 집 아이들이 뛴 것을 이야기 한 게 아니라 그녀의 집 아들들이 뛴 것을 이야기 하였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몇 번 이야기를 하였는데 대하는 태도가 좀 험하였고 그래서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닌데 그녀가 내 집에 올라 온 그 시간에도 아이들이 뛰어 이야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댁의 아이들을 아는데 그 어린 여자 아이들이 콩콩 뛰는 것 하고 큰 남자아이들이 쿵쿵 뛰는 게 어찌 같겠으며 또 댁은 한 집 건너인데 그 애들이 뛴다 한들 무슨 소리가 우리 집에까지 그리 못 참을 정도로 크게 들리겠냐”고 하였다는 것이다.
내 윗집에서는 시간 가리지 않고 소음이 들린다. 새벽 두, 세시도 좋고 늦은 저녁이나 이른 아침을 가리지 않고 무얼 끄는 소리, 부딪는 소리들이 들린다. 집사람에게 물으니 부부가 어디 3교대 하는 직장엘 다니는지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일정치 않다고 한다. 그러니 이웃 생각 안 하고 자신들이 편한 시간에 집안일을 하는 모양이다. 올라가서 12시 넘어서 아침 까지는 소음을 좀 자제해 달라고 하겠다는 집사람을 만류하였다. 내 집이건 남의 집이건 생활소음은 늘 있는 것이고 참을 수 없을 정도도 아니며 수시로 나는 것도 아니니 아파트나 다가구 주택에 살면서 좀 이해하고 살자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내 아랫집 부인의 생각대로라면 내 윗집에서 내는 소음이 내 아랫집으로 전달되는 것을 내 집에서 내는 소음으로 착각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정부에서는 소음을 측정하여 소송을 하면 이웃에서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기준치를 발표하였고 벌써 강남의 여러 집들이 돈을 들여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에 더하여 어떤 소음 전문가는, 자신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는지, 무슨 고주파, 저주파를 들먹이며 정부의 수치가 잘못 되었다고 하였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이웃에서 내는 소음은 참 짜증스럽기는 하다. 그렇다고 늘 정부에서 정한 수치에 맞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의 사람들은 정부의 수치에 앞서 서로간의 배려와 이해와 자제가 우선이라 하겠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소음수치보다는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방안과 국민 계도에 앞서야 하고 전문가들은 국민을 부추기는 이론 보다는 소음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웃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해결방안 제시 없는 이론적 발표는 그저 국민에게 자신을 내세우는, 잘난척하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와 내 집사람은 손녀들 덕분에 아래층과 그 아래층 이웃에게 당당하지 못하다. 강제 보다는 이웃 간의 정이 먼저인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2014년 4월 3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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