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새해편지

korman 2015. 1. 1. 10:38

 

 

 

 

 어머니!

 

제야의 종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또 해가 바뀌었네요.

여기 계실때 커피 무척 좋아하셨는데

새해 따뜻한 커피 한 잔 드릴께요. 

 

어제 저녁 무렵에 전화로 인사를 나눈 한 분께서

올해에는 77키로로 차를 몰아야 한답니다.

저야 아직은 60키로 초입이지만

곧 그 분의 차 속도를 따라 잡을 겁니다.

무슨 이야기 하냐고요?

어머니 계실 때는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세월 가는 게 나이가 먹을수록 빨라진다고 해서

요새는 그걸 자동차 속도에 빗대어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어머니 모르시는 말이 나왔습니다.

 

엇 그제 어머니께 편지를 드린 것 같은데

그게 벌써 2년이 지난 오늘이었네요.

그 2년 동안에 어머니 증손주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2년 전 결혼 소식을 알려 드렸던 어머니 손녀가

작년 여름 초입에 아기를 낳아

벌써 이방저방을 뛰어 다닙니다.

그간 어머니 증손녀들은 많이 자라서

어디 부딪칠까 걱정은 없는데

이 녀석은 사내라 그런지 좀 더 거칠게 놀아

손녀들 그만한 나이 때 보다 더 조마조마합니다.

어머니 외증손자는 어머니 손녀사위와

정말 제대로 꼭 닮았습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아들과 딸이 처가와 시댁에 먼저 다녀오거나

새해 첫 날에 다니러 갔었기 때문에

어머니 손주, 증손주들이

모두 저의 집에 모여 저녁을 같이하고

저도 아들, 사위와 한 잔 하였었는데

지난 저녁에는

아들은 처가로 보내고 딸은 시댁에 가서

연말을 보내라 하였습니다.

사돈들이 식구가 별로 없고

또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니까

연말시간을 저만 즐기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대신 올해 첫째 토요일에 모두 모여

가족시무식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럼 제 나이에 마누라와 둘이 뭐 했냐고요?

어머니 며느리가 어머니께

자기가 소주 마시는 건 고하지 말라 했는데

이렇게 둘이 보내는 연말에 대비해서

제가 소주 몇 잔은 같이 마시게끔

훈련을 시켰거든요.

그래서 둘이 마주 앉아

순댓국 한 사발 놓고 소주 한 병 마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특히 여자가 술 마시는 걸

무지하게 싫어 하셨는데

어머니 며느리도 이제 환갑을 넘었고

시대도 어머니 때와는 많이 달라졌으며

어머니께서는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셨지만

어머니 며느리는 이 막내 아들과

오순도순 한 잔 하는 재미도 있어야

나중에 어머니 만나면

들려드릴 이야기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점심쯤에 요 근처에 사는 어머니 손자 식구들은

떡국 먹으러 올 겁니다.

어머니 증손녀들은 요새 말을 무척 잘 하거든요.

그래서 어제 저녁에 외가에 가서

무얼 했는지 아마 한참은 조잘댈 겁니다.

이 겨울에 가끔 큰손녀가

어머니 계신 곳에 눈이 오면

춥지 않으실까 걱정을 합니다.

두 녀석이 온갖 질문을 너무 많이 해 대는 통에

좀 귀찮기는 하지만 그 재롱이 참 좋습니다.

예전 어머니께서

귀찮아 하셨지만 즐거워 하셨던 것처럼요.

 

작년에 나라에 안 좋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사 이야기 들려드리는 것 보다는

어머니 증손주들 이야기가 더 좋을 것 같아서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잘 돌봐주시는 덕에

무럭무럭 잘 자라고 나날이 똑똑해 지고 있습니다.

올해도 이 녀석들이

그저 무탈하고 건강하도록 잘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제 소원은 없냐고요?

뭐 복권 한 장 맞게 해 주시면 좋구요.

안 되시면 그냥 가정에 별 일 없게 살펴 주세요.

 

따뜻한 봄날이 와 한식 때가 되면

어머니 외증손자까지 모두 데리고 뵈러 가겠습니다.

그 때 까지 편히 계십시오.

 

2015년 첫 날

막내아들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