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korman 2015. 1. 17. 15:02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아침 신문에 파리 주간지 테러에 대한 교황의 말씀이 실렸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선수를 빼앗겼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난 월요일부터 그 테러에 대한 글을 긁적이고 있었는데 생각만 앞섰을 뿐 어찌 표현해야 할지 글귀가 정리되지 않아 그저 운만 띄워 놓고는 커피만 마시다 오늘은 정리를 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교황께서 동남아 방문 중 비행기 안에서 그 테러에 대하여 언급을 하셨다하여 읽어보니 내가 메모하여놨던 생각을 다 말씀하신 것 아닌가! 교황님도 말씀을 하시려거든 다음 주 월요일 쯤 하시지 참 야속하시다 생각하니 순간 며칠 동안의 메모가 머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애써 썼는데 글은 살려야지.

 

중동에서 일하고 있을 때 아랍인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종교가 없다는 내 대답에 그들은 한결같이 종교는 좋은 것이니 어떤 종교든지 하나 가지라 하였다. 자신들이 무슬림이라 하여 이슬람교를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을 미국인에게서 받았다. 그는 자기가 믿는 신이 자신을 돌봐준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무엇에 의지 하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제사문화를 소개하고 내 조상들이 돌봐준다고 믿는다 하였다. 그러자 그는 “그럼 그게 네 종교다”라 하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으니 따지고 보면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이 결국 먼 옛날 자기 조상의 가르침 아니겠냐는 대답이었다. 그의 대답이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운 이슬람 과격단체에 의한 파리 테러 때문에 무슬림들에 대한 지탄이 늘고 있다. 그 단체들 또는 그들과 연계된 사람들이 서방세계에 테러를 자행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들이 종교를 내세우는 건 그저 자신들이 저지르는 잔인한 테러에 대한 자기위안이라 생각하여왔는데 이번 파리 주간지의 이슬람교에 대한 풍자이력을 보면 순수한 무슬림도 반감을 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간지가 무슨 이유로 이슬람을 그리 풍자하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슬림들은 종교가 생활이고 그들 종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를 모욕하는 것은 곧 무슬림 전체를 모욕하는 것으로 인식됨을 그 주간지는 모를 리 없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인식하기에 우리나라 신문에도 소개된 그 풍자라는 이름의 만화들은 풍자를 떠나 무슬림을 조롱 내지는 비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풍자나 만평이라는 미명으로 내 아버지의 엉덩이 벗은 모습을 그려내거나 내 족보에 총을 쏘고 X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나도 그저 웃어 넘겨야 할까? 만일 무슬림세계에서 서방의 종교에 대하여 파리의 주간지에서 행한 것처럼 모욕적인 풍자를 지속한다면 서방의 반응은 어떨까? 테러는 반인륜적이고 극단적인 범죄행위지만 그 주간지는 이슬람 테러집단에게 종교를 빙자한 테러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풍자라는 포장으로 지속된 종교적 조롱행위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일종의 우월감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거늘 두 종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데 내 종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남의 종교를 대중적으로 풍자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서양인들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특정인에 대한 풍자는 한 개인에 그치지만 무슬림에 대한 풍자는 지구상의 이슬람교도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였으면 좋았으련만.

 

이 일로 전 서방세계는 한 마음이 된 듯하다. 여기저기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서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외침 뒤에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은 없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그 주간지에 유대인을 풍자 하였던 직원은 해고되었다는 사실이다. 표현은 자유스러워야 하지만 그렇다고 풍자와 비하를 가리지 않으면 안 되고 비평과 비난은 구분되어야 하며 자유를 위해서는 자율이 선행되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도 상식과 도덕과 윤리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함이 그 외침 속에 녹아 있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그 주간지는 테러 후 첫 발행에도 마호메트를 다시 풍자(?)하였다고 한다.

 

손톱만한 땅에 콘크리트장벽을 두르고 가끔은 테러로 인식되어지는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또 때로는 그저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평범한 범죄행위조차도 테러로 간주하며 학교를 포함한 마구잡이 폭격으로 수많은 어린 생명들까지도 희생시키는 뉴스를 접하며 또 그 폭격이 잘 보이는 언덕위에 소파와 맥주까지 가져다 놓고 불꽃놀이를 즐기는 이스라엘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홀러코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과 같은 종교 혹은 서방종교를 믿고 있다고 하여도 테러에 대한 보복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폭격이 감행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풍자 때문에 테러의 원인을 제공한 주간지에 대해서는 한마음으로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서방사람들이 유엔의 결의안까지 무시하며 과도한 폭격으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왜 함구하고 있는지 난 그걸 풍자하고 싶다.

 

종교의 기본 이념이 인간치유에 있다면 종교를 빙자한 잔인함도 타 종교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일도 존재하여서는 아니 될 것을.

 

2015년 1월 16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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