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학교 어디 나왔나?
“들어가서 좀 심하다 생각되면 재떨이 만져.”
직장 다닐 때 모 상무가 직원을 자기 방으로 불러들이면 동료들이 하던 소리다. 어느 날 상무실에 불려갔던 직원 하나가 가정사까지 들추어내는 모욕적인 말을 듣고는 그것을 삭히느라 무심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재떨이를 만졌는데 그것을 본 상무가 “그만 나가봐” 했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본사와 지사 그리고 현장의 삼각무역을 담당하던 나는 대금 결제에 대한 외화입금이 원활하지 못한 이유로 국내의 외환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제재를 당하게 되는 사유를 사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사장에게서 “니 학교 어디 나왔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부임한 사장은 금융이나 외환과는 거리가 먼 공직에 있던 분이었는데 상황설명에 대한 이해가 어렵자 도리어 자신이 나에게 설명하겠다고 하고는 내가 그 설명에 동의하지 않자 그리 이야기를 한 것이다. 결국 난 되지도 않는 설명에 10%쯤 동의하는 말로 얼버무리고야 사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설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장으로서의 권위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국회에서는 각종 청문회나 대정부질문에서 유난히 큰 소리를 내는 의원들이 있다. 답변하러 나온 사람들이 무슨 큰 죄를 지은 피의자 신분으로 취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분들은 취재 카메라가 다가가면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것 같다. 심지어는 같은 질문을 이분 저분 계속할 때도 있고 가끔 피질문자로부터 역으로 질문을 받는 분도 계신다. 내게는 안건에 대한 공부는 안 하고 자신의 존재감이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질문 같아 보인다. 그런 분들에게서는 아마 그 자리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지 않는 일반적인 직장이라면 재떨이를 만질 수 있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직장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빠른 통로가 수 없이 많고 사회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예전에는 통상적으로 인식되던 것들이 요새는 민감한 사안이 되어 인격적으로 많이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직장이나 단체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존재감이나 우월성을 내세우려는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이런 사람들은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 특히 목소리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사무실에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 큰 소리를 잘 내거나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도 존재감에 대한 주위의 시선을 더 끌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많은 직장 상사들이 부하직원의 잘못에 대하여 질책은 하되 인격적으로 무시하지 않으면서 그 잘못이 잘 해결되어 부하직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감싸주려 애쓴다. 그러나 한편 그러한 잘못을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데 이용하려는 상사도 존재할 것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도 “니 학교 어디 나왔나”보다 더한 이야기도 들었지만 진작 나는 부하직원을 거느려야 할 즈음 사직을 했으니 날아가는 결재판을 좇아가기는 하였으나 내가 날려보지는 못하였다. 결재판 날릴만한 강인한(?) 성격도 못 가졌지만.
요새 땅꽁항공이 연일 화제에 오른다. 그만한 자리에 있으면 설사 다른 승객과 승무원 사이에 뭐가 잘못 되었다 하였어도 자신이 나서서 사과하고 수습하였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일을 저질렀다. 잘못이 있었으면 돌아와 회사 내부적으로 조치를 취했어야 함에도 그녀 역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하직원을 핑계 삼아 자신의 존재감이나 우월감 및 권위를 보이려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속담대로 X인지 된장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땅콩항공은 물론이려니와 그룹전체에 타격을 주고 국제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항공 이미지에 검은색을 칠했다.
운행 중인 비행기의 총 책임자는 기장이라 한다. 비행기 운행에 관한 한 기내에서는 대통령도 기장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나 기장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아직 미생인가? 내가 직장 다닐 때 해보지 못한 소리 한번 하고 싶다.
“그대들은 학교 어디 나오셨오?”
2014년 12월 18일
하늘빛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