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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엽서 - 반백년의 버킷리스트

korman 2015. 7. 10. 12:52

 

 

 

 

우편엽서 - 반백년의 버킷리스트

 

내가 있는 곳에서 남서쪽으로 난 창에 고개를 삐쭉 내밀면 바로 길 건너로 작은 우체국이 보인다. 간판도 조그마하게 그러나 정겹게 ‘우편취급소’라 걸어 놓았다. 민간이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작은 우체국이다. 요새는 길거리에 그 많던 우체통조차도 찾기 어려운데 창문에서 바라보이는 이 작은 우체국은 그곳이 아니면 연락이 어려웠던 옛 시절의 추억과 함께 이제는 너무 멀찌감치 가 버린 듯한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리게 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켜면 세상 어디와도 시간에 관계없이 소통을 할 수 있고 각종 세금이나 요금고지서 조차도 이메일이면 족한 세상에 길 건너 조그마한 우체국은, 비록 나도 한 해에 서너 번은 들르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직원이라야 두 명이 전부인 그곳은 늘 바빠 보인다. 요새는 전화 한 통이면 앉은 자리에서 다 해결되니 우편물을 가지고 우체국에 갈 일도 별로 없지만 그러나 갈 때마다 살펴본 그 작은 우체국에는 사무실 밖에조차 많은 소포상자들이 쌓인다.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금융에서부터 농수산물구매대행 및 배달은 물론 휴대전화 개통까지 체신이나 통신 이외에도 하는 일이 많은 우체국이지만 이 작은 우편취급소에서는 그저 우체국 고유의 기본 우편물을 다루는 일 뿐인데도 밖여닫이 유리문은 늘 바쁘게 흔들리고 있다. 그곳에 들르면 나는 가끔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무엇을 보내는지 궁금하여 남의 것을 훔쳐보기도 한다. 예전에는 창구 앞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남이 볼세라 손으로 가려가며 몇 줄 소식을 쓰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아 많이 있었다. 지금도 창구 앞에 책상은 있으되 이 작은 우체국에서 그 책상은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온, 군대 간 아들에게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이나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보내드리는 자식들의 작은 정성을 포장하는 용도이외에는 별로 쓰임새가 없는 듯하다.

 

이렇게 저렇게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며 그 조그마한 간판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길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때 준비 없이 우체국에 들러 몇 줄 안부를 전하던 ‘엽서’라는 손바닥만 한 종잇조각이 생각난다. 아무나 다 볼 수 있는 편지이니 중요한 이야기는 쓰지 못하더라도 그저 정겨운 인사 한 마디는 전할 수 있었던 엽서. 지금도 그 엽서가 있을까 찾아보니 있기는 있으되 대부분 기업체에서 홍보용 인쇄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한 장에 270원이라한다. 옛가수 박일남이는 헤어진 그녀가 보낸 인사가 ‘엽서 한 장’이 전부냐고 노래하였지만 아날로그의 그리움을 메워 주는 것에 엽서만한 것이 또 있을까.

 

집을 이사하기 위하여 짐을 정리하면서 눈에 익은 천으로 된 가방 하나를 발견하였다. 큰 아이를 기를 때 사용하였던 기저귀 가방으로 기억되는 그것은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퍼를 열어보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집사람은 예전 연애시절부터 해외에 일하러 나가 보냈던 편지까지 나로부터 받은 모든 편지는 그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이 군대에 가서 보낸 편지도 그곳에 있었다. 진작 나는 집사람에게서 받았던 편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하나도 보관한 것이 없어 문득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살펴보는데 그곳에서 내 기억의 깊은 곳에서 늘 생각나던 몇 장의 엽서가 나왔다.

 

기억하건대 3년여의 연애시절동안 주고받은 사연은 많았지만 늘 봉투 속에 담았었지 누구나 볼 수 있는 엽서를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딱 한 번 장난기가 생겨 엽서를 쓴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우체국 앞을 지나다가 20장의 엽서를 샀다. 그리고 각 엽서에 1부터 20까지 페이지를 매기고는 미주알고주알 이러쿵저러쿵하며 20장을 메웠다. 그 모두를 한날한시에 한 우체통에 넣었어도 같이 배달되지는 못하였겠지만 난 그것을 잘 섞은 다음 하루에 몇 장씩 이곳저곳 볼일 보러 가는 곳의 우체통에 일주일동안 나누어 넣었다. 그리고 그 모든 엽서들이 집사람에게까지 전달된 때는 첫 번 엽서를 우체통에 넣은지 보름 정도 지났을 때라 한다. 그것도 식구들의 주머니까지 뒤져가면서.......그 엽서들이 그곳에 있었다. 45년만이다. 우체국이 보이면, 그래서 늘 엽서 생각이 난다.

 

내일은 길 건너 우편취급소에서 또 다른 20장의 엽서를 살까? 그걸 예전처럼 보내려면 우체통 찾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겠지만 결혼 반백년 기념으로 해야 할 버킷리스트에 넣어봄이 어떠리오.

 

2015년 7월 9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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