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전사자가 아니라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막연히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느 대중가요 가사에 그랬듯이 영화 속에서 난무하던 그 총탄을 내가 맞은 것처럼 멍한 가슴에서는 무슨 말로 서두를 적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서두를 꺼내는 것이 어렵다기 보다는 이 어설픈 아마추어의 솜씨로는 영화 내내 이어진 그 멍한 가슴과 쳐 받쳐 오른 불덩어리 같은 것을, 그리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어찌 표현하여야 할지 그것이 어려워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연평해전. 6월 초입에 이 영화를 시사하며 눈에 흥건히 고이는 눈물을 어찌 참아야 할지 애쓰다 가슴 밑에서 치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느라 몇 번이고 공연히 자리를 고쳐 앉고 다리를 꼬았다 폈다 하면서도 그러나 눈은 화면에서 돌릴 수가 없었다. 오전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인 대상의 이 이른 시사회는 만석이었고 보통 영화가 끝나고 속칭 올라갈 때 (영화 뒷부분에 제작진과 출연진이 소개되며 글자가 화면 위로 올라갈 때) 많은 사람들이 성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느 영화와는 다르게 화면에서 모든 게 사라지며 조명이 켜지는 순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모두가 생각 이상으로 충격을 받았음인지.
6.25가 지나고 이제 그 날이 오고 있다. 6월 29일. 우리가 월드컵 4위를 하던 날이 아니다. 우리의 젊은 수병들이 나라를 죽음으로 지킨 날이다.
“어떠한 위험이 오더라도 상대방이 발포하기 전 까지는 절대로 발포하지 말라. 그리고 확전시키지 말라.”
이게 우리 해군에게 내려진 교전수칙이었다고 한다. 이 명대로라면 우리 해군이 공격당하여 장병들이 희생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들이 발포를 하였으니 우리가 응대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었지 만일 그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모든 함대가 서서히 서해로 내려와 저 제주도앞 바다까지 온 영해를 점령하였더라도 선제공격을 하지 않으니 우리가 대처할 방법이 없었지 않았겠나.
“확전 시키지 말라.”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바다에 수장시키고도 유유히 북으로 살아졌다. 그리고 출동한 대한민국 다른 함정에서는 살아져가는 그들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었다.
온 몸에 100개 이상의 파편을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져 사투를 벌리다 결국 전사한 박동혁병장의 어머니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이쪽에서는 초상 치르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대통령은 일본 축구장에 가서 빨간 넥타이를 하고 손뼉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대통령이 버린 군인의 부모였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아직 내 아들은 전사자로 예우받지 못하고 공무상 사망자로 대우받는다.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난 그가 왜 전사자가 아니고 공무상 사망자인지 모른다. 그 인터뷰기사를 보고 “왜”라는 의문을 가졌을 뿐이다. 그건 법 이전에 상식에서 벗어난 일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북한의 반발을 억제하기 위하여 국방백서에서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는 말을 뺐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주적이 북한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적군과 싸우다 희생당한 군인을 전사자가 아니라 공무상 사망자라 칭한다면 과연 상식적인 이야기가 될까? 해전이라 함은 바다에서 나라와 나라끼리 벌린 전쟁(전투)라는 뜻이다. 그런데 뭐가 부족하여 그가 아직 전사자가 못되는 것일까?
영웅은 영웅이어야 한다. 특히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은 영웅중의 영웅이어야 한다. 내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하여 가장 부러워하는 것은 나라와 사회를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을 국가와 국민들은 반드시 영웅으로 예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동혁상병은 아직 전사자예우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의 주검에 박혀있는 100개가 넘는 적군의 파편은 과연 무엇인가?
장병들이 우리의 바다를 지키기 위하여 적의 총탄과 포탄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순간에 나도 월드컵 4강전을 보며 박수를 치고 패한 것에 한슴을 쉬기도 하였다. TV에 잠깐씩 내 보내 주는 자막을 접하기는 하였지만 우리의 장병들이 그리 희생되고 있는줄은 몰랐다. 당시 자세한 정황을 전해주지 않았으니 국민 대다수가 그랬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가슴 한편이 더욱 미어진 것은 그때문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2015년 6월 26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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