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일본속 우리나라 종

일본의 한국종 - 일본 오사카시 학만사의 고려범종

korman 2015. 7. 14. 15:13

일본의 한국종 - 일본 오사카시 학만사의 고려범종

 

 

제작연도 1030
사조 불교미술
종류 범종
기법 청동
크기 높이 92.4 cm
소장처 일본 학만사

문화재 지정번호

 

 

일본 중요문화재

 

이 종은 오사카시() 시내에 위치한 학만사 경내의 종각에 걸려 있다. 특히 혜일사 종과는 그 제작 시기가 근사하고 형태나 문양 면에서 매우 흡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 동일 공방() 내지 동일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용뉴의 모습은 혜일사 종과 유사하지만 용두가 표현되지 않았고 음통에는 몇 단의 마디로 구획하여 앙 · 복련문을 시문 하였다. 천판 위에는 문양이 없는 대신 그 외연인 상대 위로 문양대를 두어 이곳에 복엽의 연판문을 시문 하였다. 상대의 문양은 혜일사 종과 동일한 십자형의 화문을 연속으로 배치하고 그 여백을 집선문으로 장식하였으나 하대는 그와 달리 상 · 하연을 연주문대로 두르고 그 내부에는 운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상대 아래의 유곽대 및 내부에 9개씩 표현된 종유는 혜일사 종과 같이 3중권의 원좌형()이며 공양자상 역시 천의를 날리며 무릎 꿇어 합장한 모습으로서 얼굴과 신체, 그리고 천의의 흩날림 등이 거의 흡사하여 동일 문양판이 반복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당좌의 형식도 동일하여 연과없는 자방과 6엽의 여의두문을 시문 하였으나 그 외구의 연판문이 12엽이 아닌 11엽으로 표현된 것이 다르다.

한편, 하대에 붙어 장방형 구획으로 배치된 명문대에는 「태평십년십이월일 사동량원염절□, 청금종입삼백근 장이척사촌이□( □, □)」라는 2행의 양각명을 새겨놓았다. 태평십년은 고려 현종() 21년인 1030년에 해당하며 혜일사 종보다 4년 뒤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종에는 앞의 원명과 더불어 「영화5년()」인 1379년에는 현재의 야마구찌현()의 송강산보제사()에서 있었다는 추각명문을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학만사종 [鶴滿寺鐘, Buddhist Bell of Kakuman-ji Temple]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2015년 7월 14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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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만사종
[간략정보]
  • 한자
  • 분야
  • 유형
  • 시대
  • 성격
  • 제작시기/일시
  • 수량
  • 재질
  • 크기(높이, 길이, 두께, 너비)
  • 소장처
  • 집필자
 
 
일본 대판(大阪, 오사카)에 있는 고려시대의 동종.
높이 92.4㎝, 입지름 8.5㎝. 용뉴(龍鈕)는 n자형으로 새의 부리처럼 길게 되어 있으며, 왼쪽 앞발은 전체가 결손되었고 오른쪽 앞발은 선단(先端)이 손실되었다. 음통(音筒)의 표면은 앙련판(仰蓮瓣)과 복련판(覆蓮瓣)을 6단(段)으로 장식하였다. 어깨 부분의 입상문(笠狀文)은 연판을 연속하여 둘렀다.
상대(上帶)는 상하 둘레에 연주문을 장식하고 내면에는 원상(圓狀)의 무늬를 연속시킨 것인데, 그 무늬는 선형(旋形)·사엽화형(四葉花形) 등이며 그 둥근 무늬 사이에 당초덩굴로 연속무늬를 이루었다. 상대 밑변에 붙여서 4개소에 유곽(乳廓)이 설치되었다. 유곽대(乳廓帶)는 양쪽 가에 연주문 장식이 있고 그 안에는 S자형 당초문으로 채워졌다. 유곽 안에는 각기 9개의 유두가 연화좌(蓮花座) 가운데 작게 표현되었다.
종의 몸체 하단에 2개의 당좌(撞座)가 각기 앞뒤에 배치되었고, 그 양 옆면에는 비천상이 양주(陽鑄)되었다. 이 종의 상대와 유곽·당좌·비천상 등은 태평6년명(太平六年銘) 혜일사종(惠日寺鐘)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 두 종이 같은 거푸집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하대(下帶)는 상대에 비하여 훨씬 넓게 구성되었다. 상하에 연주문장식이 돌려졌는데, 아래에는 두 줄로 장식되어 있고, 내면에는 당초형의 운문(雲文)이 채워졌다.
원명(原銘)은 비천상과 당좌 사이에 하대와 접하여 단책형곽(短冊形廓)을 18. 5×3. 6㎝의 크기로 설치하고, 그 안에 2행으로 돋을새김하여 주조하였다. 그 내용은 “太平十年十二月日寺棟梁元廉節□靑金鐘 入三百斤長二尺四寸二□(태평10년12월일사동량원렴절□청금종 입3백근장2척4촌2□)”인데, ‘태평10년’의 ‘태평’은 요(遼)나라 성종(聖宗)의 연호이므로, 고려 현종 21년(1030)에 해당된다. 이 명문 외에 그 상부 유곽 사이에 추각명(追刻銘)이 있다.
 
[참고문헌]
  • 『日本所在の韓國梵鐘』(崔應天, 奈良國立博物館, 1993)

출처 : 민족문화대백과 2015년 7월 14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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