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울림 속으로/일본속 우리나라 종

일본의 한국종 - 경남 진주시 연지사 종 (일본 조구진자 常宮神社 Jōgū Shrine 소장 신라범종)

korman 2017. 6. 26. 18:33

연지사 동종

한자 蓮池寺銅鐘

영어의미역 Bronze bell of Yeonjisa Temple

분야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류덕희

 

[상세정보]

성격 :

제작시기/일시 : 833년연표보기

재질 : 청동

문양 : 연화문|해파문|격자문|보상화문

높이 : 111㎝

소장처 :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츠루가시[敦賀市] 조구신사[常官神社]

소장처 : 주소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츠루가시[敦賀市]

문화재 지정번호 일본 신국보

문화재 지정일 1953년연표보기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연지사에서 주조된 통일신라시대의 동종.

 

[개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된 종으로 추정되며 현재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츠루가시[敦賀市] 조구신사[常官神社]에 소장되어 있다. 종에 새겨진 “태화 7년 3월일 청주연지사(太和七年三月日菁州蓮沚寺)”라는 명문(銘文)으로 미루어 833년(흥덕왕 8)에 주조되었고, 청주(菁州)가 지금의 진주시 지역이므로 진주지역에 있던 연지사에 바쳐진 종으로 추측된다. 연지사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지금의 청소년수련관으로 추정하고 있다.

 

[형태]

높이는 111㎝이고, 입지름은 66㎝이다. 종 꼭대기 부분의 장식인 용뉴((龍鈕)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인데 많이 파손되어 용머리 일부와 음통이 남아 있다. 용통(甬筒)은 통일신라 고유의 양식으로서 3단으로 짜여 있다. 종의 곳곳에는 연꽃무늬[蓮華文]·파도무늬[海波文]·문살무늬[格子文]·보상화문(寶相華文) 등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아랫부분에 2기의 당좌(撞座)와 2구의 비천상(飛天像)이 새겨져 있다.

 

당좌는 자방(子房) 중심에 성광상(星光狀)의 8판중엽화문을 배치하고 그 화문 둘레에 8개의 연자(蓮子)를 표현하였다. 그 둘레에는 역시 끝이 뾰족한 모양의 8엽중판연화가 형성되었다.

 

비천상은 신라종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화형(寶花形) 구름 위에서 천의(天意) 자락을 날리며 무릎을 꿇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특징]

통일신라시대 종 가운데 성덕대왕신종, 상원사 종에 이어 세 번째로 크며, 일본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종으로는 가장 크다. 또한 종에 새겨진 파도무늬는 같은 시기의 동경(銅鏡)에서는 보이지만 종에서는 처음 보이는 문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일본에 있는 종 가운데 제작연대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종이다. 신사 쪽의 설명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출병했다가 귀국한 오타니[大谷]가 노획품으로 가지고 와서 1593년 2월 29일 이 신사에 봉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으로서 한국 범종 연구의 선구자였던 쓰보이 료헤이[坪井良平]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중요한 항구였으므로 임진왜란 이전에 왜구들이 약탈해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1900년(메이지 33년) 미술공예품 갑종 제1등으로 국보에 지정되었다가 1953년에 일본 신국보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염영하(廉永夏), 『한국종연구(韓國鐘硏究)』(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쓰보이 료헤이[坪井良平], 『한국종(韓國鐘)』(각천서점, 1974)

최응천(崔應天), 『일본소재의 한국범종(日本所在の韓國梵鐘)』(나라국립박물관, 1993)

[지식연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연지사동종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6.26 내용 수정 쓰네미야신사->조구신사로 수정(2015.6.26)

 

출처 : 디지털진주문화대전 2017년 6월 26일 현재

http://jin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jinju&dataType=98&callFunc=goSearch()%3B&keyword=%EB%B2%94%EC%A2%85

 

=============================================================================

[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⑦ 일본 후쿠이현 죠구진자 연지사종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 가운데 유일한 국보

통일신라시대 흥덕왕8년 제작

9세기 범종 중 명문자료 유일

용뉴 음통 주위 연화문 ‘독특’

임진왜란 이전에 약탈 추정도

 

연지사종(蓮池寺鐘)이 소장된 죠구진자(常宮神社)는 쿄토〔京都〕에서 동북방으로 2백50km 정도 떨어진 한적한 해안가인 후쿠이현〔福井縣〕츠루가시〔敦賀市〕에 위치한 자그마한 신사이다.

 

현재 범종은 죠구진자의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별도의 보호각 안에 소장되어 있다. 1900년 미술공예품 갑종 제1등으로 지정시켰다가 다시 1953년에 일본 신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범종은 우리에게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9세기 범종의 유일한 명문 자료로서 그 가치가 크며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종이기도 하다.

 

통일신라 후기 종의 경우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2구 1조의 주악상이 이제 단독의 독립주악상(獨立奏樂像)으로 바뀌어 요고(腰鼓)와 횡적(橫笛)을 각기 나누어 연주한다는 점이다.

 

그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선림원지종(禪林院址鐘, 803년)과 실상사종(實相寺鐘)이 만들어졌던 9세기 전반에서 그다지 오래지 않은 833년명의 죠구진자〔常宮神社〕소장 연지사종(蓮池寺鐘)의 짧은 기간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일신라 종의 가장 전성기의 작품인 상원사 종이 만들어진 거의 100년이 지난 시점인 연지사종을 기점으로 중요한 양식적 변화를 맞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형을 보게 되면 전형적인 통일신라 종 양식을 갖추고 있으나 세부 의장이나 문양 면에서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용뉴(龍鈕)는 그 입을 천판(天板) 위에 붙인 채 입안에 표현된 보주로 천판과 연결시켰다. 용두의 모습은 상원사종과 성덕대왕신종에서 보였던 역동감이나 사실성이 결여되어 마치 괴수형으로 변모된 시대적인 차이를 느끼게 해 준다. 용의 가늘고 짧은 목은 직각으로 꺾여 굵은 음통(音筒)과 연결되었다. 이 음통 부분의 상단에 돌출된 연화좌(蓮花座)가 6개 장식되었고, 그 아래로 연곽대(蓮廓帶) 문양과 동일한 형태의 연속문이 얕게 부조되었다.

 

다시 음통의 중앙부분을 융기동심원으로 양각하여 그 하단부인 음통 후면에는 당좌형(撞座形)의 8엽 연화좌로 장식한 점이 독특하다. 그리고 용뉴와 음통의 주위를 돌아가며 동일한 형태의 팔엽 중판연화문이 표현되었다. 음통 주위로 간략한 장식문양이 배치된 범종은 간혹 보이지만, 이와 같이 용뉴와 음통 주위를 별도의 연화문으로 장식한 점은 매우 독특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는 동일한 문양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세밀한 파도문 사이에 작은 암산을 배치한 형태이다. 이 문양들을 연주문의 종선으로 방형 구획하였고, 다시 몇 개의 문양판을 잇대어 연속시켰음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 범종에 등장하는 상·하대 문양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표현이다. 상대에 바로 붙어 네 방향으로는 종신에 비해 비교적 폭이 넓은 연곽(蓮廓)을 배치하였다. 연곽대의 문양은 상·하대와 또 달리 그 내·외연 부분을 집사선문으로 장식하고, 내부에는 방형 연주문 구획 안을 다시 X자형으로 사선 구획한 뒤 각각에 화문과 엽문을 촘촘히 시문하였다. 연곽 내에는 잎이 넓은 연화좌 위에 돌기된 연꽃봉우리〔蓮蕾〕가 표현되었으나 많은 수가 손상 탈락되었다.

 

이 종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독립된 명문구의 등장이다. 즉 연곽과 연곽 사이에 해당되는 상대 바로 밑에 별도의 방형 명문구를 두어, 10행 118자의 양각명문을 새겼다. 그 내용은 ‘태화칠년삼월일청주연지사」종성내절전합입금칠백십삼정」 고금서백구십팔정가입금백십정」 성전화상 혜문법사 ○○혜법사」 상좌 칙충법사 도내법승법사」향촌주 삼장급간 주작대내말」작한사 보청군사 용년군사」 사육○ 삼충사지 행도사지」 성박사 안해애대사 애인대사」 절주통 황룡사 각명화상(太和七年三月日菁州蓮池寺」 鍾成內節傳合入金七百十三廷」古金西百九十八廷加入金百十廷」成典和上 惠門法師 ○○惠法師」上左 則忠法師 都乃法勝法師」鄕村主 三長及干 朱雀大乃末」作韓舍 寶淸軍師 龍年軍師」史六○ 三忠舍知 行道舍知」成博士 安海哀大舍 哀忍大舍」節州統 皇龍寺 覺明和上)'이다.

 

두 번째 행의 '칠백십삼정(七百十三廷)'부분만 음각명으로 된 점이 흥미롭다. ‘태화칠년(太和七年)은 통일신라 흥덕왕(興德王) 8년인 833년에 해당되며 '청주(菁州)'는 경상남도 진주의 옛 이름으로 이후 진주가 '진양도호부(晋陽都護府)'로 개칭된 것은 조선 태조 원년(1392년)의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장 중요한 '연지사(蓮池寺)'의 원 소재는 미상이다. 아마도 이 정도의 범종을 발원한 사찰이라면 진주에 소재하였던 꽤 사세가 컸던 절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명문 중에 보이는 '합입금(合入金)'은 소요된 중량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데, 그 다음에 기록된 '고금(古金)' 과 '가입금(加入金)'의 표현이 주목된다. 아마도 새로운 종을 만들기 위해 이전에 사용되던 청동종이나 청동기물을 다시 녹인 중량을 '고금'으로 표현한 반면, 그 중량을 늘이고자 새로이 추가된 분량을 '가입금'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이 두 중량을 합친 양과 실제 종의 무게가 차이가 났음인지 몰라도 주조된 이후 원래의 양각명을 고치고, 새로이 '칠백삼십정(七百十三廷)'으로 음각한 것이라 해석된다. 말미에 보이는 '황룡사 각명화상(皇龍寺 覺明和上)'은 이 종의 제작을 총괄한 각명화상이 황룡사에 주석했던 점으로 미루어 당시 연지사의 사세를 파악해 볼 수 있는 귀중한 대목이 된다.

 

한편 종신 중단쯤에는 횡선이 한줄 돌려져 있는데, 주조 당시 틀을 합칠 때 생긴 주물이 흘러나온 자국으로 생각된다. 그 하단부로는 2개의 당좌와 1구씩의 주악비천상을 번갈아 가며 장식하였다. 당좌의 형태는 약간 도식화되어 그 바깥 모양이 별처럼 뾰족하게 표현된 연판과 8개의 연과, 그리고 그 여백을 집사선문으로 장식한 자방(子房) 주위로 8엽으로 된 중엽복판의 연화문을 원권(圓圈)없이 장식하였다.

 

당좌와 당좌 사이 종신에는 구름 위에 앉아 천의를 날리며 두 팔을 벌린 채 장구를 치는 모습의 비천상이 배치되었는데, 비록 볼륨감은 많이 상실되었지만 세부의 표현에서 아직까지 생동감을 잃지 않고 있다. 앞․뒤 동일한 문양판이 사용된 듯 모두 장구를 치는 모습으로서, 상원사종에서 보였던 2구1조의 주악비천상이 이제 완전히 독립된 1구의 주악상으로 정착되었다.

 

죠구진자 소장 연지사종은 상원사 종에서 통일신라 말 천복사년명종(天復四年銘鐘, 904년)으로 이행되는 범종의 변천 과정의 가교적 역할을 하는 9세기 범종의 가장 확실한 편년자료인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후의 통일신라 범종은 연지사종에서 시작된 앞, 뒷면 1구씩 배치되는 주악상이 기본이 되어 계승을 이루며 2구 1조의 주악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여음(餘音)

이 종이 일본에 전래된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진왜란 때 출병했다가 귀국한 오타니[大谷]가 노획품으로 가지고 와서 1593년 2월 29일 이 신사에 봉납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한국 범종 연구의 선구자였던 츠보이 료헤이[坪井良平]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중요한 항구였다는 점에서 그 이전 시기에 왜구들이 약탈해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거나 일본에 소장된 한국 범종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더욱 돌아오기 힘든 문화유산이 되고 말았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7691

========================================================================================================== 

경남 진주시 연지사 종 (일본 조구진자 常宮神社 Jōgū Shrine 소장)

太和 7年(833), 청동, 전체높이 111.1cm,종높이 88.3cm, 입지름 66.3cm,주종장 안해애,日本 福井縣 敦賀市 常宮神社,일본 국보


통일신라 시대 종 가운데 성덕대왕신종, 상원사 종에 이어 세 번째로 크며, 일본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종으로는 가장 크다. 후쿠이현의 조구신사常宮神社 보물고에 보관되어 있어 평소에는 거의 공개하지 않는다.
용뉴는 많이 파손되어 있고 앞의 용머리 일부와 뒤쪽에 음통이 남아 있다. 음통 위쪽에는 연꽃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천판에 8잎 연꽃무늬의 용두좌와 음통좌가 직경 14.5cm 너비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성덕대왕신종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상대는 위쪽에 구슬무늬 띠가 한 줄, 아래쪽으로 섬세한 구슬무늬가 두 줄 배치되어 있으며 가는 선으로 파도무늬가 새겨진 연속 사각형 띠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파도무늬는 다른 종에서는 볼 수 없지만, 같은 시기 동경銅鏡에서 보여 주목된다.


종신의 전후좌우에 4개 있는 연곽은 장식문과 연속 구슬무늬로 이루어져 있고, 작은 사각형 구획 안에는 점선 대각선과 섬세한 보상화가 새겨져 있다. 연꽃봉오리는 꽃잎이 18잎인 연화좌에 솟아 있는데, 현재 12개만 남아 있다.


당좌는 용두와 45도 각도 방향의 연곽 사이에 마주 보고 2개가 있는데, 8판 연화문 안쪽에 3각판의 연꽃무늬가 있고, 한 가운데에는 연자 8과가 표현되었다. 당좌와 같은 높이에 비천상이 당좌와 엇갈려 2구 있다. 구름 위에서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두 팔을 벌려 장고를 치는 형상으로, 활달한 자세가 아름답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 15.6x8.3cm 로 양주된 명문구획이 있고, 그 안에 10행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종은 태화太和 7년(신라 흥덕왕 8년, 833)에 경상남도 진주[菁州] 연지사蓮池寺에서 주성된 것이다. 주종관계 인명이 몇몇 나열되어 있는데 주종박사는 안해해安海哀로 나와 있다.


신사 쪽의 설명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출병했다가 귀국한 오타니大谷가 노획품으로 가지고 와서, 1593년 2월 29일 이 신사에 봉납했다고 한다. 쯔보이 료헤이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일본해에서 중요 항구였으므로, 임란 이전에 왜구들이 약탈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메이지 33년에 미술공예품 갑종 제1등으로 국보에 지정되었다가 1953년에 일본 신국보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중요문화재이다.

 

 직지사 박물관 070325 현재

2014년 3월 2일 보완 http://www.jikjimuseum.org/Gallery_200407/product/UnifiedSilla/07.asp

 

====================================================================================

일본이 약탈한 연지사 범종

제목 : 연지사 종  원본보기
설명 : 통일신라 연지사에 있었던 동종. 높이 111㎝. 일본의 국보. 명문을 통해 833년에 제작된 종임을 알 수 있으나 연지사의 소재지는 미상이다. 일본에 전해진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범종이다.
출처 : Copyright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常宮神社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동종. 높이 111㎝, 입지름 66㎝. 일본의 국보. 용뉴(龍鈕)는 수직으로 향하여 종정(鐘頂)에 붙이고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다. 용통(甬筒)은 3단으로 구성되어 유좌형식(乳座形式)의 연화장식이 둘러지고 연판(蓮瓣)도 다소 형식적으로 둘러지고 있다.

 

상하대에는 같은 크기의 방곽(方廓)을 구획하여 그 내부에 파도무늬를 조밀하게 새겨 두른 해파문(海波文)이 장식되어 있고, 그 위아래에는 삼각형상의 무늬대가 있다. 유곽대(乳廓帶)도 역시 같은 크기의 방곽 안에 격자무늬형식으로 구성되어 보상화문(寶相花文)을 배치함으로써 연속무늬를 이루고 있다.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乳頭)가 연화좌(蓮花座) 위에 연봉형으로 표현되었다. 종신 하단에는 2개의 당좌(撞座)와 2구의 비천상(飛天像)이 유곽과 엇갈리게 배치되고 있다. 당좌는 자방(子房) 중심에 성광상(星光狀)의 8판중엽화문을 배치하고 그 화문 둘레에 8개의 연자(蓮子)를 표현하였다.

 

그 둘레에는 역시 끝이 뾰족한 모양의 8엽중판연화가 형성되었다. 비천상은 신라종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유려하게 조식되었는데 보화형(寶花形) 구름 위에 천의자락을 날리며 무릎을 꿇고 주악하는 모습이다.

 

명문은 유곽 사이의 상대에 가깝게 가로 15.6㎝, 세로 8.3㎝의 자리를 설치하여서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 내용으로 보아 833년(흥덕왕 8)에 제작된 종임을 알 수 있으나 연지사의 소재지는 미상이다. 이 종은 일본에 전해진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범종이다.

 

≪참고문헌≫ 韓國鐘硏究(廉永夏,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4)
≪참고문헌≫ 朝鮮鐘(坪井良平, 角川書店, 1974)
≪참고문헌≫ 日本所在の韓國梵鐘(崔應天, 奈良國立博物館, 1993)

 

출처 : 네이트백과 http://100.nate.com/dicsearch/pentry.html?s=B&i=266655&v=44

 

140106 현재

 

===========================================================================================================================

조구진자 소장 종


일본 후쿠이현() 쓰루가시()의 한적한 해안가인 조구진자() 보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통일신라 범종으로,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조구진자종은 성덕대왕 신종(771년)에서 천복4년명종(904년)으로 연결되는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9세기 중엽의 편년 자료로서 매우 귀중하다. 명문 중 첫머리에 나오는 '태화7년()'은 통일신라 833년에 해당되며, '청주연지사()'의 청주는 경상남도 진주()의 옛이름이지만 연지사의 소재는 알 수 없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본에 있는 한국 종 (한국 미의 재발견 - 금속공예, 2003.12.31, 솔출판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755&cid=42679&categoryId=42679

2015년 5월 10일 현재

============================================================================================


상궁신사 소장 범종 (연지사)(常宮神社 所藏 梵鍾(蓮池寺)

 

 

상궁신사(常宮神社) 소장(所藏) 범종(梵鍾) (연지사(蓮池寺))


소재지(所在地) : 일본(日本) 복정현(福井縣) 돈하시(敦賀市) 상궁신사(常宮神社)
연 대(年代) : 833年(興德王 8年, 태화(太和)7年)
지정번호(指定番號) :
크 기 : 높이 111cm 구경(口徑) 66cm


이 범종(梵鍾)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전 왜구(倭寇)들에 의해 약탈되어 간 것으로 추정(推定)되며, 일본(日本)에서는 국보(國寶)로 지정(指定)된 유일(唯一)한 한국(韓國) 범종(梵鍾)이다.


상원사종(上院寺鍾),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그리고 선림원종(禪林院鍾) 다음으로 큰 대종(大鍾)으로서 전체적(全體的)인 각부(各部) 양식(樣式)으로 볼 때, 그 수법(手法)이나 형태(形態)등이 약간 빈약한 감을 주고 있다.
특히 이 종(鍾)에서 주목(注目)하여야 될 몇가지 특징이 보이고 있는 바, 그것은 용뉴부분(龍鈕部分)이 신라종(新羅鍾)의 용뉴(龍鈕)와는 다르게 조잡함을 나타내고 있다. 견대(肩帶)와 하대(下帶)에서는 대종(大宗)을 이루는 주문양대(主紋樣帶)가 반원권문양(半圓圈紋樣)이나 보살당초문양(菩薩唐草紋樣)이 아니고, 산수문경(山水紋景)과 조선시대(朝鮮時代) 범종(梵鍾)에서 보이는 파상문(波狀紋)과 동일한 문양대(紋樣帶)로 조식(彫飾)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큰 특징(特徵)이다.


파상문(波狀紋)은 구간(區間)을 설정하고 파상문(波狀紋) 사이에는 암초(暗礁)와 같은 해암(海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유곽(乳廓)의 주문양대(主紋樣帶)로 견대(肩帶)와 하대(下帶)에 사용(使用)하였던 파상문(波狀紋)과는 달리 연속방곽문(連續方廓紋)으로 조식(彫飾)하고, 각 곽내(郭內)에는 점선(點線)과 유사한 것으로 하여 대각선(對角線)을 나타내고 그 사이를 섬세한 보상문(寶相紋)으로 만조(萬彫) 조식(彫飾)하였다. 종신(鍾身)에는 팔판중엽(八瓣重葉)의 연화문(蓮華紋) 당좌(撞座)를 배치하고, 당좌(撞座) 사이에는 각 1구(軀)의 비천상(飛天像)을 조식(彫飾)하였는데 이 비천상(飛天像)은 운상(雲上)에 천의(天衣)를 날리며 양수(兩手)를 벌려 장고(長鼓)를 두드리는 자세로 하였다. 그러나 조식(彫飾) 수법(手法) 역시 상원사종(上院寺鍾)의 비천상(飛天像)이나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의 비천상(飛天像)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되, 신라종(新羅鍾)의 비천상(飛天像) 연구(硏究)에는 좋은 자료(資料)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유곽(乳廓) 사이에 명기(銘記)된명문(銘文)이 있다. 여기에서 보이는 태화(太和)는 당(唐) 문종(文宗)의 연호(年號)이며, 그 7年은 신라(新羅) 흥덕왕(興德王) 8年이고 833年에 해당된다. 또한 명문(銘文) 中 청주(菁州)는 현재(現在)의 진주(晋州)이며 연지사(蓮池寺)는 진주(晋州)에 있던 사리(寺利)로본다. 그리고 명문(銘文) 내(內)에는 지방명칭(地方名稱)과 이두(吏讀)․승명(僧名)․관직(官職)․무관(武官) 등이 보여 당시의 직제(職制)와 군관직(軍官職)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貴重)한 자료(資料)가 된다고 본다.

출처 :

1996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간 (소장(國立文化財硏究所長) 김동현金 東 鉉))

한국의 범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