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여름의 끝자락에서

korman 2015. 8. 15. 14:26

 

 

 

여름의 끝자락에서

 

창문 밖으로 이른 아침을 바라보고 있는데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계절의 변화를 전하고 있다. 그 중 한두 마리는 나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방충망에 앉았다 떠오르기를 계속하며 내방을 훔쳐보고 있다. 중복 즈음에는 매미가 앉아 조용한 아침을 깨우더니만 며칠 사이에 밖의 모습이 바뀌었다. 시간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고들 말 하지만 이처럼 매미와 잠자리가 자리를 바꾸는 모습에서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가을의 문턱이라고 해도 좋으려나? 하늘과 햇빛의 색이 바뀐 듯 보인다. 아직 더위가 한창이지만 입추와 말복이 지나더니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의 변화가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변화라 하지만 실은 덥다덥다 외우던 며칠 전과는 한 2도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몸은 그 차이의 민감함을 느낀다. 날이 갈수록 조금씩 더 내려가겠지만 아직 한낮의 기온은 높기만 하다. 그러나 복중에는 하늘이 파랗다기 보다는 파란색이 바래서 흰빛을 띄는 것 같은, 그래서 눈이 부실지경의 색이었는데 지금은 하늘을 봐도 그런 눈부심은 없다. 하늘의 파란색이 점차 짙어지면서 햇빛의 색도 투명한 그것에서 아주 미약하게 노란 빛이 느껴진다. 가을 어귀의 색이라 할까. 아울러 구름의 색과 모습도 변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밖이 조용하다. 엊그제까지만 하여도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시각부터 짝을 찾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온 동네의 다른 소음을 덮을 지경이었는데 하루의 한창 더위가 다 지나갔는데도 매미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가을의 문턱이라 하여도 아직은 더위가 한창인데 내가 사는 동네 매미들은 벌써 다 짝을 찾아 그들만의 고요를 즐기고 있음인지 한마디 울음이 없다. 아직 계절의 바뀜으로 하여 다른 자리를 찾아갈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잠자리들의 극성스러운 날갯짓이 그들의 울음을 멈추게 한 모양이다.

 

남반구에 사는 친구가 그곳에 갑자기 콩알보다도 큰 겨울 우박이 쌓이게 내렸다고 한 움큼 집어 사진을 찍어서는 카톡을 보내왔다. 겨울이라는데 눈이 내려야지 웬 우박이 내렸을까? 그 친구가 사는 곳에 우리처럼 함박눈이 쌓이게 내린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하였지만 우리와는 반대되는 계절에 날씨 이야기도 늘 오가는 철새와 같다. 철새들은 계절이 바뀌면 자기들에게 맞는 날씨를 찾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잠자리에 그 자리를 내어준 매미들은 모두 어디로 살아지는지 초등학교 자연책을 펴볼 때가 온 듯하다.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주위 건물이나 주택의 옥상들이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아파트의 주차장 몇 칸도 빨개졌다. 고추잠자리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계절의 변화를 준비하는 분들이 널어놓은 고추가 여기 저기 붉은색 바둑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젖기도 하고 주차구역이 모자라는 곳에서는 운전자들에게 짜증을 선사하지만 그것은 도시인에게도 추수하는 모습으로 다가와 정겹고 넉넉한 마음을 심어주기도 한다.

 

멀리 새롭게 하늘로 치솟는 아파트 외벽에 흰색이 칠해지기 시작하였다. 서쪽에서 비쳐지는 석양을 받은 흰 벽은 캔버스가 되어 붉은색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 높은 곳까지 고추잠자리가 오를 수 있을까? 잠자리들은 해가 기우는 무렵에 자태를 더 자랑하는데 아침 창밖에 어른거리던 많은 잠자리들도 매미소리를 따라갔는지 모두 살아졌다. 오지마라 하여도 내일 아침에는 또 뜨는 해를 나와 같이 맞으러 내 창문 밖을 오르락내리락 하겠지만.

 

가을을 안 좋아 하는 게 이유라 하여도 여름을 보내는 것이 서운하다. 그게 아니라 세월의 흐름이 아쉽다고 해아 하는 게 더 솔직하다 하겠다. 그래서 여름의 끝자락에서 일찍 피어난 동네 작은 공원 속 코스모스의 가는 줄기가 바람에 꺾일세라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5년 8월 14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