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연말, 행복의 조건

korman 2015. 12. 18. 19:11

 

 

 

연말, 행복의 조건

 

2015년, 을미년도 이제 10여일 정도가 남았다. 매해 이맘때가 되면 스마트폰에 도래하는 대부분의 메시지가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과 지나가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지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내년도에 대한 바람 등이 대부분이다. 한 해를 어찌 보냈는지는 모든 사람들 각자의 마음에 있다고 하겠다. 즉, 무엇이 각자의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선제적 요소인가에 따라 연말을 맞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12월에 접어들면서 수술 후 일주일간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하였으나 앞으로 6개월간은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마누라를 둔 나에게는 11월까지의 행복의 조건을 무엇으로 생각하였던 간에 얼마 남지 않은 2015년을 보내면서 건강이라는 것이 인생의 키워드로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한편 10여 차례 이상의 각종 검사와 진료시마다 요구되는 의료비를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선 납부한 영수증이 있어야만 검사고 진료고 이루어지는 병원 절차를 경험하며, 또한 발생 가능한 모든 비용을 한꺼번에 선 징수하고 다음 코너에서 미사용된 비용을 취소하고 다시 실비용을 징구하는 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의료비 징구 시스템을 보며 건강에 앞서서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행복이 병원에는 존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심장 쪽의 이상으로 갑자가 쓸어져 병원신세를 진 사돈을 면회 갔을 때 그 양반 나를 만나 한 첫 번째 이야기가 “병원비 즉시 감당할 돈이 없었으면 난 죽었을 겁니다.”였다. 그 병원에서도 오죽 돈을 앞세웠으면 첫 마디가 그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마누라 수술절차를 밟으며 생각났었다. 입원 신청서에도 병원비에 대한 두 명의 보증인이 필요하였으니 어쩌면 돈의 가치관이 건강을 앞지르는 지도 모르겠다.

 

수술 후 험상스럽게 많은 비닐주머니와 호스를 달고 있는 마누라가 안쓰러워 며칠을 병실에서 보냈다. 밤이라 한들 그런 분위기에서 눈을 붙이지 못하는 나는 한밤이나 새벽시간에도 마누라가 잠이 들었다 싶으면 병실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휴게실을 자주 찾았다. 통유리로 되어 바깥이 잘 내려다보이는 11층의 휴게실은 병원이라 해도 그 시간에는 조명을 어둡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나 말고 이 시간에 누가 휴게실에 있을까 생각하였지만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꼭 거기에 있었다. 그저 밤거리의 실루엣을 한없이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었고 라디에이터 덮개에 엎드려 홀로 눈물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때에는 그 시각 그곳에 발을 들인 것이 미안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휴게실에서 비오는 날 새벽 3시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늘 지나다녔던 그 거리가 그리 낯설게 보일 줄은 몰랐다. 흡사 홀로 간 외국 출장지에서 비오는 날 새벽 거리를 보며 그 낯선 풍경에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끼던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시각 휴게실의 나 외의 그 사람들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수술 후 4일이 지났을 때 마누라가 입원한 병실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52세의 여성환자였다. 동병상련이라 하였던가. 환자와 가족들은 보통 하루정도가 지나면 친숙한 사이가 된다. 그래서 사회성이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병에 대한 이야기며 심지어는 자신이 처한 사정이나 살아온 이야기들을 털어 놓는 경우도 많다. 하기야 한 병실에서 여러 낮과 밤을 같이 보내는 입장이니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현상이라고 하여도 되겠다. 아무 말 없이 하루를 지낸 그녀는 내 손주들이 와서 할머니 빨리 나으라고 재롱도 피우고 그녀에게 인사도 하고 하자 아이들에게 이끌렸는지 그 날 저녁에는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는 수술을 위하여 입원한 것이 아니라 각종 검사를 위하여 들어왔다고 하였다. 특정부위 여러 곳이 아픈데 검사하면 특이사항은 나타나지 않고 의사들은 신경성이라고만 한다는 것이었다. 장성한 아이들 외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그녀는 내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자 한없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그녀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친구들은 많을 테지만 답답할 때 속내를 모두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였다. 자제들과 가족애를 나눌 수 있는 여행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였다.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외할머니가 돌보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 동안 살아온 무게가 무거운 듯 보였다. 의사들 말대로 그녀의 병이 신경성이라면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여행이 필요해 보여 기회를 만들어 보라 하였다. 내 생각에 그녀에게는 의학적 처방에 앞서 인생을 이야기할 말동무가 의학적으로 잡히지 않는 그녀의 신체적 아픔을 치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아픔은 의학적으로 치유되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소주 한 잔에 긴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걸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음으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난 병원에 누워서도 남편의 옷차림을 걱정하는 마누라가 있어 행복하고 할머니의 병이 빨리 나으라고 재롱떠는 손주들이 있어 행복하고 소주 한 잔의 긴 이야기로 그 소주잔을 받아주는 친구들이 있어 이 연말에 마음으로 행복을 느낀다.

 

2015년 12월 18일

하늘빛

http://blog.daum.net/ringing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첫날 빈둥거림  (0) 2016.01.01
12월의 마음을 전합니다  (0) 2015.12.24
스스로 잠자는 스마트폰  (0) 2015.12.10
그대여!-2  (0) 2015.12.05
떨어지는 은행잎에  (0) 201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