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감동있는 멘트를
새해 둘째 날 친구들과의 점심모임이 있어 전철에 올랐다. 달력이 잘 만들어져서 신정 연휴가 3일씩 계속되니 사람들 얼굴에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듯하였다. 학생들이야 지금 방학 중이지만 직장 다니는 분들은 이런 연휴는 황금연휴라 부른다. 온 국민들이 유유자작하게 연휴를 다 같이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직업상으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건강상의 이유 등등으로 연휴라 말조차도 잊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전철이 다음 정거장에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진한 하늘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한 중년의 남성이 한 손에 전단지 같은 것을 잔뜩 들고 탔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손에 들었던 것을 승객들에게 나누어주며 일장 연설을 하였다. 그것도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모를 요상한 어투로 느닷없이 북한 타령으로 시작하였다.
“북한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없에. 그래서 종교가 없에. 북한에 교회가 있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여. 그래서 김일성과 김정일이는 다 지옥에 가 있에.”
여기까지 난 수긍을 하였다. 공산주의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배웠으니 교회가 없다는 건 그렇겠고 그들이 예수님을 믿건 안 믿건 민족에게 나쁜 일을 많이 하였으니 천당이나 지옥이 있다면 당연히 지옥에 갔겠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종교가 없다면 종교인도 없겠거늘 우리나라 종교인들이 북한 종교인들과 교류하겠다느니 북한 교회에서 또는 사찰에서 합동 종교행사를 하겠다고 하는 건 뭔지. 그런데 그분의 다음 말이 걸작이었다.
“여러분도 김일성이나 김정일이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다 지옥에 가여.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비도 안 와여. 그래서 농사도 못 지어. 그러니 다 굶어 죽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전도 하시는 분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니 그러리라 이해하겠는데 비가 안 와서 농사도 짓지 못해 다 굶어 죽는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인데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지금 어떤 시대인데 젊은 사람들이 잔뜩 버티고 있는 전동차에서 저런 말씀을 하실까 하는 생각을 할 찰나에 또 갑자기 한 말씀 하시는데
“부처를 믿으면 지옥에 가여.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부처가 부활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에. 부처는 천오백년전에 죽었에. 그래서 예수님 안 믿고 부처를 믿으면 지옥가.”
‘엥?“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전도하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갑자기 부처를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무슨 말씀이신지. 다시 한 번 부처님 이야기를 하고 그는 다음 칸으로 유유히 살아졌다.
세계가 인정하는 4대 종교가 있다. 그 속에 개신교도 있고 불교도 있다. 그리고 예전에 우리가 예전에 미신이라고 부르던 것들도 이제는 미신이라 하지 않고 토속신앙이라 부른다. 난 토속신앙도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종교가 되겠지만 모든 종교의 존재 이유가, 또한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동 종교의 창시자인 성인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므로 인하여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인간 자신을 치유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성인의 말씀이건 공통된 점은 혼자만의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법 이전에 상식과 도덕과 윤리와 양심에 준하여 살아가는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러지 못하였을 때는 종교에 기대어 그 분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치유하려 애쓰는 것이 아닐까.
난 종교가 없다. 그 성인분들의 말씀이 어떤 것이었는지 서적이나 인터넷 등을 통하여 접하기는 하여도 해당 종교를 믿는 분들보다 내가 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위의 분이 하신 말씀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분은 올해도 열심히 전철에 올라 많은 말씀을 전하실 것이다. 따라서 전철에서 만나는 승객들 모두와 천당에서 다시 만나기 원하시는 분이라면 올해는 누구에게나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감흥이나 감동을 줄 수 있는 멘트를 개발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종로5가역에서 내렸다.
한 친구가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시빗거리가 되니 하지 말라 하였는데 그 분 말씀이 좀 안쓰러워 이야기 속에 넣었다.
2016년 1월 6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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