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때로는 구식이 좋다

korman 2016. 1. 31. 15:42

 

 

 

때로는 구식이 좋다

 

세면기에 물을 가두고 흘리는 집·배수장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니 결국 고장이 나고 말았다. 내 집 세면기의 집·배수장치는 팝업식으로 되어 가운데를 누르면 덮개가 아래로 내려가 집수가 되고 다시 누르면 위로 올라와 배수가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장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수를 시키기 위해서는 이미 사용한 물속에 다시 손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속으로 들어가서는 아무리 눌러도 위로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할 수 없어 조그마한 드라이버를 사용하여 강제로 올렸다. 그랬더니 덮개가 장치에서 분리되어 올라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스프링을 비롯한 장치의 하부가 배수구의 고리에 걸려 있었는데 그게 깨지면서 장치가 분리된 것이다. 배수구 고리를 비롯하여 뚜껑에서 스프링을 잡아주던 장치가 금속으로 보였지만 실은 충격에 깨어지기 쉬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찌 고쳐야 하나? 손을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치는 사람을 부르면 얼른 해결되겠지만 세면기에 물 가두지 못한다고 돈을 들여야 하나? 사람 잘못 만나면 팝업파이프만 갈면 될 걸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으니 멀쩡한 세면기까지 갈아야 한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어쩌나 하다 한나절을 보냈다. 뭐 간단한 게 없을까 생각하다 문득 고무마개를 떠올렸다. 세면대 초창기 시절 체인으로 연결되어 배수구에 끼워 집수하고 체인을 당겨 빼면 배수가 되던 검은색이나 흰색 고무마개. 지금 내 집에는 없지만 아직 어디에서는 쓰이고 있을 그게 생각났다. 그 단순한 마개 하나면 해결될 게 어쩌다 복잡한 장치로 바뀌어 세면대에서 배수파이프까지 뜯어내야 고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을까? 사실 체인에 달린 고무마개야 사용하기 좀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고장날일은 없지 않은가.

 

동네 철물점으로 향했다. 그 마개 이름을 몰라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나에게 가게주인은 간단한 한 마디로 나의 입을 막았다. “그런 건 이제 구식이라 나오지 않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철물점에서도 같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식이라도 어디에선가 그게 아직 쓰이고 있을 텐데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가게에 없으니 그리 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들른 곳에서 그걸 찾아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른 생각 안 하고 또 당연히 표준사이즈겠지 하고 가져다 세면기 배수구에 넣었더니 낭패스럽게도 이게 통째로 배수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무덮개의 사이즈가 배수구보다 작은 것이었다. 분명 세면기용이고 국산이라 쓰여 있는데 아직 표준화가 되어있지 않은 것일까? 할 수 없이 다른 용도로 나와 있는 비슷한 모양의 좀 큰 사이즈로 바꿨다. 그러나 이건 고리는 있으되 체인은 없을뿐더러 배수구 사이즈보다 컸다. 다행이 힘을 주면 고무가 줄어드는 톱니형태로 되어 있어 그냥 우격다짐으로 배수구에 밀어 넣으면 그런대로 사용할만했다. 체인은 집서랍에서 하나 발견하고 흡착식 고리를 달아 세면기에 고정하였지만 마개 아래 파이프 초입에 놓이는 이물질거름망은 설치하지 못하고 별도로 배수구 위에 걸쳐놓는 것을 사용하여야 했다. 따라서 집수마개 따로 그물망 다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여야 한다. 내 인내심이 다하는 날 팝업마개가 달린 원래의 파이프를 교체하리라 생각하고 좀 불편하지만 그리 사용하고 있다.

 

철물점 주인이 이야기 하는 구식 마개는 참 간단하다. 체인의 한 끝은 볼트넛트가 달려 있어 세면기에 끼워 고정하게 하였고 다른 한 끝은 고무마개가 달려 수동으로 배수구에 끼웠다 뺐다하면 된다. 그리고 거름망은 배수구 초입에 놓이게 되어있다. 그러니 체인이 끊어지거나 고무가 찢어진다 한들 아무나 손쉽게 고칠 수가 있다. 그런데 현대식이란 파이프까지 들어내야 고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으니 사용이 편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좋으나 한편 생활에 좋은 구조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이런 건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나 손쉽게 빨리 고칠 수 있는 구조가 좋은 게 아닐까? 생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적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디지털 시대에도 때로는 단순한 구식이 좋은 것도 있다.

 

2016년 1월 30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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