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엘리베이터 걸

korman 2016. 1. 25. 16:20

 

 

 

 

엘리베이터 걸

 

버스에 차장이라는 승무원이 있다가 점차 인권을 생각한다고 말이 바뀌어 “버스안내원”이라 하더니만 오래전에 그마저 살아진 직업이 되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몇몇 시골에는 다시 버스안내원이 생겨나 노인들의 승하차를 돕는 것은 물론 가끔씩 짐꾼까지 되어주고 있다. 이 모습은 TV를 통하여 심심찮게 소개되곤 하였다. 노인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봉사자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농촌 마을들을 운행하는 버스에는 안전을 위하여 이런 안내원 제도가 모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졌던 직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한 때 “엘리베이터 걸”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큰 건물이나 호텔 및 백화점 같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의 승강기에 배치되어 비행기 승무원 같은 예쁜 유니폼을 입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올라갑니다.”, “내려갑니다.”, “몇 층 가십니까?”, 몇 층입니다.” 등등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던 기능직 여직원을 일컬음이었다. 그녀들은 늘 하얀 장갑을 끼고 탑승자를 대신하여 단추를 누르거나 타려는 사람이 있으면 닫히는 승강기 문을 인위적으로 길게 열어놓고 있기도 하였다. 그녀들이 승강기 단추 앞에서 시야각에 가려지는 사람들을 살피던 것은 승강기 문 내부에 자동차 백미러처럼 달려있던 볼록거울 덕분이었다. 그러더니 언제 없어졌는지 지금은 모두 살아지고 그녀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녹음된 기계음으로 바뀌어 벼렸다. 물론 볼록 거울도 살아진지 오래다. 요새도 어느 호텔이나 백화점에 그들이 존재하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 년 동안 내가 다녀본 곳에서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최근 집사람 때문에 수시로 병원 승강기를 이용하면서 어쩌면 병원 승강기에 만이라도 사라진 이 직업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실 병원의 승강기는 일반인들도 이용하지만 환자들에게 우선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환자들의 탑승시간은 기본적으로 휴대품처럼 늘 끌고 다니는 수액주사걸이로 하여, 또는 보행 보조 장치로 하여, 또는 휠체어 등으로 하여 정상인 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환자가 안전하게 승강기에 오를 때까지 환자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승강기 이용 예절은 탑승자 모두가 엘리베이터 걸이 된 양으로 탑승하자마자 많은 손가락들이 문 닫는 단추로 간다. 누군가가 뒤따라 탑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 뒤따라 타는 사람의 어깨가 문틈에 끼이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환자라면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 할 수도 있다. 물론 환자들도 탑승하면 문 닫는 단추부터 누른다. 내가 드나드는 병원의 승강기는 문이 열리고 자동으로 닫히는 시간이 약 5초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 5초를 못 참고 인위적으로 문을 마구 닫아버리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어떤 건물에서 문을 여는 단추는 있는데 문을 닫는 단추는 없는 승강기를 본 적이 있다. 또한 요즈음은 기술이 좋아 인위적으로 문을 닫지 못하고 자동으로 설정해 놓은 대로만 작동되게 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기술을 이용하던가 아니면 엘리베이터걸을 되살리던가 하는 것이 병원의 일반 승강기에는 필요하지 않을까? 화급을 다투는 의료진과 응급 혹은 수술환자들이 사용하는 특별승강기는 따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5초의 여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이며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2016년 1월 24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