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난 아직 한 살 더 안 먹었다

korman 2017. 1. 1. 16:11





난 아직 한 살 더 안 먹었다


늘 그랬듯이 아침 일찍 방의 안쪽 덧창을 열었다. 겨울철 남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해의 아침노을이 창문을 열면 얼굴에 와 닿기 때문이다. 2년 전에는 멀리 보이는 야산 봉우리 사이가 붉어지던 것이 1년 전 야산 앞쪽으로 늘어선 고층아파트 때문에 요새는 아파트들의 동과 동 사이 빈틈으로 해가 올라온다. 야산 보다는 좀 갑갑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창문을 열고 그렇게 아침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도시민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새해 첫날, 다른 날과는 좀 다른 기분으로 창을 열었지만 오늘은 그저 진한 회색빛에 가려진 아파트의 실루엣 외에 아침노을은 없었다. 전국이 다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구름에 가려진 동녘 가에 진한 황사가 겹을 쌓았는지 뿌옇기까지 하였다. 스마트폰에 전달되는 날씨에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라는 소식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시각이 정오가 다 되었는데도 아직 해는 안 보이고 하늘은 뿌옇기만 하다. TV에 비쳐지는 해맞이 그림이 깨끗하지 않은 것을 보니 전국이 미세먼지에 가려진 모양이었다.


올해 새해 첫날 첫 일은 원두커피콩을 가는 일이었다. 우추가루처럼 조금씩 갈아내는 수동 기계도 있기는 하지만 매일 그게 귀찮으니 조그마한 유리병으로 하나쯤은 전기그라인더로 갈아 놓는다. 오늘은 작년에 개봉하지 않았던 좀 진한 향이 나는 커피를 갈았다. 작년에 갈았던 커피는 어제 다 없애고 새해 아침에 진한 커피향이 번지도록 일부러 새 커피를 갈았다. 그 커피 한 잔을 들고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노을을 맞으려 하였는데 노을커녕 지금쯤은 중천에 있을 해도 아직 구경을 못하고 있다.


어제 방송에서는 전국 주요 지방의 해 뜨는 시각을 알려주었다. 이 조그마한 나라 안에서도 해가 솟는 시각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러나 전국의 신구해가 바뀌는 시각이 다른 것은 아니다. 문득 같은 나라 안에서도 새해를 다른 시각에 맞아야 하는 나라 사람들의 인사는 어찌해야 할 까 하는 생각이 났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가 3시간씩이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아마 동부사람들은 새해라고 야단법석을 떨 때 서부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하려면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캐나다나 중국, 러시아처럼 동서로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들은 다 그럴 테지만.


TV채널을 돌리다 보니 CNN에서 미국의 새해맞이를 생중계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새해의 표준시를 어디에 맞췄을까 보니 아마도 타임스퀘어가 있는 뉴욕이 제일 중요한지 동부시각을 카운트 다운하여 놓았다. 하기야 동부에서 중계하고 1시간 반 후에 중부 시카고쯤으로 가서 또 중계하고 3시간 후 서부 LA쯤에서 또 중계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에서 새해를 세 번 맞는 나라. 그 땅덩어리가 부럽다.


지나간 해에는 무슨 글을 썼나 살펴보니 작년에는 새해 첫날 그냥 빈둥거렸다 했고 2년 전과 4년 전에는 어머니께 편지를 띄웠다. 올해도 어머니께 고할 말들이야 많지만 1월에 음력설이 있으니 그 때 고해야겠다 하고 게으름을 피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새해 첫 달에 두 번의 새해를 맞이한다. 미국 부러워할 것 없이 해와 달 사이가 다 우리나라 땅이요 하늘이다. 우리나라 자손들이 실지로도 그리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조상님들이 지금 달과 별과 해 사이에 후손들을 위하여 간척사업을 벌리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새해 첫 날부터 욕심이 과하다.


요즈음은 새해 달력이 귀하다. 디지털 시대가 돼서 아날로그 달력의 수요가 별로 없으니 그 흔하던 은행 달력도 귀하다. 특히 탁상달력은 돈 주고 사야 할 정도가 되었다. 스마트폰 덕분이다. 달력에 표시하지 않아도 입력만 시키면 잊지 않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고 잠을 청해도 내릴 정거장을 지나치지 않을까 적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전화기 잊어버리면 완전 멘탈이 붕괴되는 사람들이 많다. 기계에 대고 말을 시키면 상냥한 여자가 말친구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외로움을 달래게 해 준다. 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도 더불어 많이 생기나보다.


세상을 미리 사는 사람들이 많다. 새달력을 받으면 12달을 잽싸게 넘긴다. 몇 초 안에 1년을 우선 미리 산다. 올해 10월에는 추석연휴가 있다. 그런데 그게 한 열흘쯤 연달아 휴일이 되었다. 그 기간에 벌써 국제선 예약이 끝났다는 뉴스도 보인다. 세월이 빠르다지만 10월까지 벌써 미리 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생일이 음력으로 등록된 나는 음력 새해가 안 되었으니 아직은 한 살 더 안 먹었다 외치고 싶은데.......


글을 쓰다 CNN 중계방송을 봤다. 그들은 우리시간 오후 2시에 첫 새해를 맞았다. 임기를 다한 반기문총장 부부도 단상에 있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군중들이 새해를 맞는 모습이야 비슷했지만 다른 것은 여기저기서 뽀뽀하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날리는 수많은 색종이 꽃가루들. 모두들 즐기고 다들 집으로 돌아간 후 새해 첫 날부터 청소원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겠다.


2017년 1월 1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