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복(伏), 견(犬), 구(狗)

korman 2018. 7. 26. 15:10




복(伏), 견(犬), 구(狗)


날씨가 무척 덥다. 만나는 사람마다 더워 죽겠다고 한다. 죽을 만큼 더우니 말의 최상위 포식자라 하겠다. 이 더위는 110여년만의 최고 더위라고 뉴스가 일러준다. 우리나라가 동남아시아의 여름보다도 더 더울 수가 있다는 것을 지금 느끼고 있다. 젊은 시절 중동의 사막에서 느꼈던 그 뜨거운 바람을 지금 우리나라 도시의 한 복판에서 맞고 있다. 도심의 대기온도를 높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날씨가 더운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집집마다 건물마다 거의 모두 달려있는 에어컨 실외기가 내 뿜는 더운 바람도 한 몫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과거 골목에는 건물 그늘에 앉아 골목을 통과하는 바람을 맞으면 시원하였지만 지금 도시의 골목은 그렇지가 못하다. 뜨거운 바람을 뿜어주는 그 에어컨 실외기가 골목마다 놓여있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가 시작되면 하늘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곳에다 대고 한 번쯤은 주먹질을 하고야 넘어가는 분들이 있다.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한 때는 매년 우리나라에서 시작하기 전에 ‘브리지트 바르도’라는 프랑스 여배우가 각종 시비를 걸고 들어왔었다. 그런데 그녀는 몇 년 전서부터 조용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그런 거 할 기력이 없는 모양이다. 인터넷 인물난에 그녀가 1934년생이라 나왔으니 84살이 넘어가고 있다. 건강하다면 그 나이가 그런 운동을 못할 만큼 많은 나이는 아닐 텐데 조용하다. 그녀의 나라에서도 19세기까지 개고기 정육점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알았나보다. 그녀가 한창 나댈 때 그녀에게 편지를 썼었다. 그리 동물을 사랑하는 민족이 어찌 거위를 학대하여 살찐 간 ‘푸아그라’를 비정상적이며 강제적으로 생산, 즐기냐고 물었다. 남의 나라 식문화에 참견 말고 당신 나라 거위나 학대하지 말라고 나도 한 번 나댔었다.


난 개고기를 먹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개고기집에 안 간 건 아니다. 일행이 개고기를 먹는다는데 그걸 말릴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난 삼계탕을 먹었다. 지금도 개고기 즐기는 사람을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개고기집이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하늘에 주먹질 하지 않아도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개를 반려견이라고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애완견에서 견권을 존중한다고 반려견이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난 무식하게도 어디다가 반려, 되돌려 준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 즈음에 심심치 않게 유기견이라는 단어도 같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기르다 싫어지면 버리기 보다는 관련기관에 혹은 개를 입양한 곳에 반려한다는, 돌려준다는 참 순진한 생각을 하였었다.


요즈음 유기견들이 많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장소에 따라 들개화된 큰개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는데 예전 같았으면, 특히 요즈음처럼 이런 더운 날씨에 그런 개들이 자유스럽게 돌아다닐 수가 있었을까? 이젠 개에 대한 용어가 하나 더 늘어나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애완견, 반려견, 유기견에 이어 위험견. 그러니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는 단체에서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위험견은 어찌해야 좋을지 좋은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예전부터 개고기를 먹었지만 애완견(犬)을 먹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애완견들이 조그마하고 귀여운 것들이라 개값에 비하여 식용으로써의 상품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 평생을 벌어 개값으로 바쳐도 모자랄 정도의 고가견도 있다고 하니 주위에서 기르는 개에게 잘못하였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생기겠다. 그러니 어찌 애완견, 반려견, 그 개(犬)을 먹겠는가? 사람들이 먹는 개는 같은 개과(犬科)에 속하기는 하지만 견(犬)이라 불리는 개가 아니라 구(狗)라 불리는, 백구, 황구 등으로 불리는, 크기나 고기의 양이 식용으로 상품성이 있는 것들이었다.


엊그제 미국의 동물보호단체원들이 우리나라 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였다고 한다. 사실 개고기는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는 건 아니다. 중국 사람들은 개고기 축제도 연다고 한다. 특히 북한에서는 단고기라 부르며 즐기는 것 같다. 그런데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왜 우리나라에만 대고 워라 하는 것일까?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속담대로 그야말로 ‘어느 집 개가 짖냐’식으로 대응을 안 하고 북한에 대고는 무서우니까 뭐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이 뭐라고 하면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88올림픽 때는 보신탕집들이 거의 뒷골목으로 숨었다. 그런데 북경올림픽 때문에 중국인들이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운동을 했거나 정부차원에서 그리 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단체들도 그저 우리 국민들에 대고만 피켓을 흔들지 말고 북한이나 중국 등 다른나라에다가도 좀 뭐라고 할 수 없을까?


어차피 인간은 포식동물의 맨 윗자리에 있는 잡식 동물인고로 먹고자 한다면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어떤 동물도 먹어치울 수 있다. 그러니 동물보호라는 것은 그 동물을 식용으로 하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식용이 되기 이전 그 동물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개고기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지 않는 한 먹는 사람들은 늘 먹는다. 또 그걸 먹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도축환경과 유통과정을 다른 육류처럼 제도권으로 가져오는 것이라 하겠다. 산 거위를 학대하여 비정상적인 간을 만들고 푸아그라라는 비싼 간을 즐긴다거나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기돼지나 송아지 고기를 즐기는 서양 사람들 다 동물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우리 개고기 식문화를 비난하는 것은 어쩌면 이율배반의 한 구석이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애완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개를 가지고 많은 장난을 한다. 개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털 자르고, 모양내고, 물들이고, 옷 입히고, 신발 신기고.... 이 모두가 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그 보다 우아하게 개와 산책을 즐기지만 개가 길거리에 배설하는 배설물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띤다. 동물관련 단체들은 때만 되면 개고기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 아니라 주인의 성향으로 개를 괴롭히는 행위(나는 개를 괴롭힌다고 생각한다.)나 길거리 배설물, 기르다 개를 유기하는 행위, 위험한 유기견 문제 및 위험견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관련법 등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견주들을 계몽하는 행동이 동물사랑의 기본임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2018년 7월 24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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