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명절날의 시댁과 처가

korman 2019. 2. 3. 14:58




명절날의 시댁과 처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우스갯소리 중에 ‘스님, 목사, 신부’의 존칭에 관한 게 있다. 목사와 신부는 스님에게만 존칭어 ‘님’자를 붙이는 게 불만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서서 “그럼 스님은 ‘스'라고 부르랴?”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그들에게도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목사님, 신부님 하고 높여 부르기도 하며 스님은 ’중‘이라 내려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미투’라는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 이번까지 3번의 똑 같은 기사를 읽은 것 같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 때만 되면 이 기사가 난 것 같은데 실제로 이런 상황이 요구된 것인지 기자가 자꾸 베껴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분들이 전통적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시댁과 친정 가족들에 대한 호칭이 불공평하다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진다는 이야기였다. 즉, 자신의 입장에서는 시댁식구를 “아가씨, 도련님 등”으로 높여 부르는데 남편은 자신의 친정식구를 그저 ‘처남, 처제’로 존칭어 없이 부르며 자신은 시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는데 왜 남편은 친정부모를 ‘아버님, 어머님’ 대신에 ‘장인, 장모’로 부르고 있냐는 것이 요점이었다.


“미투”운동이 일어나면서 호칭이 이리 된 것도 성차별이라고 하는 것인데 여성가족부까지 나서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다른 건 몰라도 처가에 가서 존칭어를 붙이지 않고 처부모님께 장인을 (어른) 빼고 그저 ‘장인‘하고 부르거나 장모를 (님)빼고 ’장모‘하고 부르는 사위는 없을 것 같은데 아마도 이건 글을 쓴 기자의 덧붙인 이야기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적으로 그 ‘스님’의 ‘스'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마 전통문화와 관련된 단체에서 처남을 ’처남님‘, 처제를 ’처제님‘으로 부르게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곁들여진 글의 내용 때문이었나 보다. 그렇게 처남님 하려면 아가씨에서 ’씨‘ 빼고 도련님에서 ’님‘을 빼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양쪽을 동등시한다고 ‘아가’, ‘도련‘ 처남님’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시댁의 아가씨나 도련님 중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들도 있고 또 바꿔서 보면 누님과 결혼한 매형이 동생보다 나이가 작아도 동생은 매형 혹은 형님이라 불러야 하고 오빠와 결혼한 올케가 아가씨보다 나이가 작아도 언니라 부르는 호칭도 있으며 조카가 삼촌보다 나이가 많을 때는 조카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아내는 시가를 시댁이라 부르는데 남편은 처가를 왜 처댁이라 안 하고 처갓집 혹은 그냥 처가라고만 하냐고도 하였다. 하지만 많은 사위들이 처가댁이라고도 하고 있고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대신에 시가라고 하기도 한다. 이는 차별이라기보다는 같은 뜻의 한자어에서 오는 말의 편의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할 것이라 생각된다.


호칭은 그 나라의 전통에서 나온다. 우리가 서양문화처럼 이름을 부르거나 다른 대칭을 쓰지 않는 한 전통적으로 부르던 호칭이 다른 것으로 대치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난 아들이 결혼할 때 처가에 가서 장인, 장모라 하지 말고 ‘아버님, 어머니’라 부르라고 일러주었다. 나도 그랬었다. 그런데 나도 통 이해가 되지 않는 호칭이 하나 있기는 있다. 형수가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장가를 가면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 서방은 내 서방 하나여야 하는데 장가간 시동생을 모두 서방님이라 불러야 하는 것이다. 작은 아버지가 여럿 있는 사람들은 첫째작은아버지, 들째작은아버지....이렇게 번호를 매겨서 칭하기도 하는데 남편을 비롯해서 장가간 시동생이 여럿 있으면 첫째도련님, 둘째도련님에서 진화하여 첫째서방님, 들째서방님..... 이렇게 되어야 할까? 아무리 전통적 호칭이라도 이건 참 난해한 이야기다. 어찌 들으면 동서들이 내 서방님들(?) 뺏어간 꼴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회와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호칭과 존칭을 중요시 생각한다. 가정의 이러한 존칭과 호칭에 불만을 표출하시는 분들도 사회나 직장에서는 ‘00팀장님, 00차장님’이라 불리는 건 당연시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한편 가정에서 보면 도련님이던 아가씨던 이름이 불리던 사이던 간에 그 시간도 잠시라는 것이다. 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그 다음은 손윗사람이 아닌 한 ‘누구아빠, 누구엄마’로 통일된다. 부모조차도 자식이 자식을 낳고 나이를 먹으면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 그저 “어미야 아비야”만 있을 뿐. 이런 것들이 아무리 차별이라고 생각한들 없어지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차라리 그리 불리는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때까지 좀 참아주는 게 더 쉬운 일이라 생각된다. 00엄마, 00아빠가 될 때까지만.


그렇지 않아도 요새 가정이나 사회적 호칭이 아주 잘못되어 있는 곳이 많다. 요식업소에 가면 모두 이모나 언니라 부른다. 아주머니 혹은 아가씨라 불러도 존칭이 되는데 나이불문하고 사회적 존칭은 무시되고 모두가 내 가정의 손윗사람들이다. 집에서는 아이가 아빠라 부르는 사람을 아빠의 아내는 그를 오빠라 부른다. 이게 어찌 이렇게 되나? 오빠와 결혼한 꼴이 되나? 식당에서 이모라 불리는 사람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와서는 “주문하신 곰탕 나오셨습니다”라고 하고 카운터에 계산하러가면 “구천원이십니다”라고 한다.


호칭, 존칭, 차별...시대가 변하면서 고쳐져야 할 것들도 많겠지만 내 아이의 아빠가 내 오빠가 되거나 곰탕이나 돈이 나 보다 더 높은 존칭을 받고 있는 사회, 뭐부터 고쳐야 할까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번 가족이 모이는 좋은 날 이런 걸 일깨워주는 기자의 설날은 까치의 설날인 어저께였을까?


2019년 2월 3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