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참 자유스럽다.

korman 2019. 2. 1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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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유스럽다.


내가 사는 동네의 왕복 2차선 도로, 우체국 앞 주행도로 한복판에 운전자는 없이 비상 깜빡이만 깜빡거리는 자동차가 놓여있다. 이 차 때문에 교행을 못하니 같은 방향으로 가던 차들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로로 이동하고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온 동네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그런 소란이 일고 있는데도 운전자는 나타나지 않으니 양쪽에서 차가 밀리고 우리나라운전자들의 특성상 경적소리는 더욱 요란해 지고 있었다. 한참 만에 나타난 운전자는 미안한 기색 없이 차에 오르더니 쌩하고 가버렸다. 불법주차이기는 하지만 인도 쪽으로 차를 붙여 놓았더라면 그런 야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운전자는 어차피 불법주차인데 남이야 오가든 말든 내 편한 대로 하겠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자유가 이런 거라면 참 자유스럽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건물에는 거리이름과 번호가 조합된 도로명주소가 붙어있다. 숙달되면 내비게이터가 없더라도 목적지를 찾는데 무척 쉬워진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주택을 비롯하여 모든 건물에 세금을 들여 건물 입구에 주소판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 주소판이 식당, 주점, 유흥업소들이 들어선 거리에 가면 볼 수 없는 곳이 많다. 1층에 들어선 그런 요식업소들이 건물 외벽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치장을 하면서 이 주소판을 떼어내고 다시 붙이지 않았던지 그냥 그 위에 치장을 하였기 때문이다. 주소판을 만들어 붙일 때는 그에 따르는 법도 같이 만들었을 텐데 매일 그 타령인 것을 보면 그것을 떼어내는 사람들이나 단속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너는 너 나는 나인 모양이다. 자유가 이런 거라면 참 자유스럽다.


요새 어느 상업지구를 가던 불법 광고물이 판을 친다. 그 중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는 대표적인 것이 광고용 막대풍선이다. 바람을 넣으면 팽창하여 큰 비닐막대가 되는 이 광고판은 어느 쪽에 내놓던 간에 인도나 차로 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더 큰 문제는 전기를 써야 하는데 그 전기 공급원은 모두 밖에 방수도 되지 않은 채로 노출, 방치되어 있다. 따라서 눈비가 오는 날 행인들에 대한 감전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그걸 단속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그 숫자는 늘어만 간다. 아마도 누군가의 감전으로 인한 희생이 있어야 단속한다고 호들갑을 떨 것이다. 늘 그래왔으니까. 자유가 이런 거라면 참 자유스럽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국가다. 한 발 더 나가서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외친다. 나는 모르겠는데 그들은 두 민주주의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나이든 사람들이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는  민주주의국가는 법치국가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는 그들도 법치가 뒷받침이 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하거늘 자유를 외치기는 하여도 법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보지 못하였다. 표 때문인가? 법을 만드는 사람이나 집행하는 사람이나 지켜야 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민주와 법치와 자유와 권리와 의무를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자유가 이런 거라면 참 자유스럽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라고 하면 우선 떠올리는 게 ‘자유’인 것 같다. 그래서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붙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대표는 어느 나라인가 물으면 영국이나 미국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얼마 전에 영국의 저명한 이코노미스트 부설기관에서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지수’라는 걸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꼽는 국가 중 그나마 영국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을 뿐 미국, 프랑스, 이태리 일본 등 내노라하는 국가들이 우리 발아래 있다. 어떤 항목을 어떤 기준으로 조사하여 지수를 매겼는지 세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나라들에서 우리처럼 불법주차나 불법광고물을 설치하면 어찌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철저히 부자유스러워 지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자유라는 것이 법을 생각지 않는 거라면 우리는 참 자유스럽다. 


요새 우리사회는 남은 생각지 않고 나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가 판을 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고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자유가 으뜸이고 그 자유는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모두들 민주주의는 법치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것일까? 이래서 ‘법 없이’사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사람들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에서 법치 이전에 자유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자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혼자 사는 사회(사실 그건 사회라 할 수 없다)에서는 자율은 필요가 없다. 나만 자유로우면 되니까. 그러나 사회라 하면 자율이 우선적이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다른 이에게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배려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치에도 자유를 주기 위한 최소한의 융통성이 필요하지만 건널목을 콕 막고 주차하는 불법주차에도 자유에 대한 법의 배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지수가 내노라하는 나라들을 앞지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법치에 대한 의식지수와 자유에 대한 자율지수가 그 속에서 중요한 항목으로 취급 되었다면 과연 우리나라가 그 나라들을 추월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율적이지 못한 것에 적용되는 것이 법이고 자유의 근원은 자율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강하게 인식하고 있을까? 내가 하늘빛에 묻는다.


2018년 2월 16일

하늘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