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겨울엔 모기가 없다

korman 2020. 2. 27. 20:21




     사진 : 야후 합성


겨울엔 모기가 없다


작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지방마다 특별한 사투리가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나라들도 다 지방 사투리와 억양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누는 대화에 따라 다들 잘 알아듣는다. 그러나 어떤 단어는 통역이 없으면 절말 모를 것도 있다. 특히 나이 많은 토박이가 말하는 제주지방 사투리는 특정 단어뿐만이 아니라 말 전체를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방송에 나오는 분들의 사투리는 거의 알아듣겠지만 가끔 자막이 없으면 무슨 단어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작은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하루는 집에 와서 우는 것이었다. 왜 우냐고 물은즉 국어선생님께서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통상적으로 각종 XX년이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에서는 그쯤 되는 말이면 심한 욕에 버금가는 말이지만 그 지방에서는 다정한 사람들끼리 사용하는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처음 들은 아이들은 황당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에게 그 지방 사투리나 표현법에 대한 설명을 해 주고는 학교에 전화를 하였다. 전화 받으신 분이 교감선생님이었는데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금방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알아차리시고는 이미 조치를 취하였다고 하였다. 아마 나보다 앞서 많은 분들이 전화를 드린 모양이었다.


우리가 ‘말을 한다’라는 표현을 안 좋을 경우 다른 단어로 이야기한다. 이것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어 좀 다르겠지만 “입을 놀린다”. “주둥이를 놀린다” “조동아리를 놀린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내 아이가 경험한 그 친근감을 표현하는 사투리나 친구들끼리 술 한 잔하며 “지껄인다”라고 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이다. 이런 표현 중에서 좀 점잖은 표현을 고른다면 “찢어진 입이라고...” 라 하겠다. 요새 한다하는 사람들이 툭툭 던지는 말 가운데 주둥이던 조동아리던 찢어진 입이건 그 이상의 표현이 있다면 그 말을 선택하고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말은 때와 장소에 따라 가려서 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공인들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주어지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전국과 전 국민이 패닉상태에 빠져있다. 이런 중대한 국면에 자화자찬하시는 분, 겨울에는 모기가 없다는 분, 중국에서 들어온 우리 국민이 문제라는 분, 자치단체장이 방역할 마음이 없다는 분, 우한코로나가 아니고 대구코로나라고 하신는 분, 현 사태가 마귀의 짓이라 역설하며 어디로 꽁꽁 숨어버리신 분 등등. 이 분들 모두 하시는 말씀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이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때를 모르고 XXXX를 놀리고 있다. 해당되시는 분들이 내 글을 읽으면 오히련 나더러 아가리 혹은 손목쟁이 놀리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야 길에서 쌍욕을 하여도 그저 미친놈 취급 외에는 안 될 테지만 그들은 나와는 다른 위치에 있는 분들이다.


코로나19가 이토록 심하게 갑자기 퍼진 것은 특정종교단체 때문이 크다. 국가와 사회의 위기상황임을 인지하고 그들이 재빨리 솔직하게 협력을 하였다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아직도 협력적이거나 솔직하지 못하다. 아니 국민들의 신뢰를 이미 잃었다. 우리나라의 3대 종교 신자수를 합치면 나라의 총인구수보다도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요새 3대 종교단체 중에서 두 단체는 산하 기관에 모임을 자제하라는 통보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한 단체는 그리하라 하였다는 소식은 없다. 뉴스에 의하면 문제가 된 그 특정 단체는 아직도 숨기는 게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훗날 좋은 곳으로 가겠다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TV에 비쳐지는 의료진의 지친모습과 자신의 위험은 생각하지 않고 생업을 포기하면서 대구로 향하는 의료인들의 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하고 있다. 이 분들이 아니라면 누가 천사이고 누구를 위한 천당이며 극락이라 할 수 있을까?


지친 그들을 위해서라도 패닉상태에 빠진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조동아리”는 나오지 않기를 바래본다.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고 지금의 있는 자리에도 버금가지 못하는 자질이라면 그냥 그 입 다물라.


2020년 2월 27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Chopin Nocturnes)



'이야기 흐름속으로 > 내가 쓰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퉁이엔 희망이 모인다  (0) 2020.03.09
까치와 까마귀  (0) 2020.03.08
코로나, 그 잘못된 왕관  (0) 2020.02.23
쟁반위에 그리련다  (0) 2020.02.09
차례상앞의 그리움   (0) 2020.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