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까치와 까마귀

korman 2020. 3. 8. 21:27




까치와 까마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아침에 까치 소리가 많이 난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는데 내 집 창틀은 아니라도 온 동네가 요란하게 어디선가 울어대고 있으니 동네 전체에 혹은 동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있으려니 생각하곤 하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까치소리는 없어지고 그 대신 까마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길조라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흉조라 하였으니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좀 기분이 언짢기는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서양에서는 새가 우는 것을 새가 노래한다고 우리와는 다르게 표현한다고 한다. 그 정 반대되는 표현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앞에 “까치는 노래하고 까마귀는 운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괜스레 혼자 마음속으로 시빗거리를 만들고 있다.


오늘 아침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이 참 좋았다. 자연 하늘색 그대로 흰 구름이 몇 점 두둥실 떴고 가시거리도 시원하게 좋았다. 이런 날씨에 무슨 코로나냐고 혼자 중얼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계절의 여왕은 봄이라는데 그 봄을 몰고 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여왕은 왕관을 써야 하는데 올해 여왕은 어째 왕관은 다른데 감춰놔야 될 것 같다. 코로나가 왕관이라는 뜻인데 사람들이 그 코로나를 좋아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반가운 것은 오늘 아침에는 까마귀 소리는 없고 그 자리에 까치 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이 아침 까치소리가 이제 그 코로나로부터 서서히 벗어난다는 신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왕관이지만 코로나 보다는 크라운이라 하는 것이 더 품위가 있게 들린다. 그러니 이제 겨울의 코로나는 봄날의 크라운에 밀려나기 바란다. 혈압약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는 나이든 동네의사가 내가 건네 농담에 의자를 젖히며 웃었다. “예전 신진자동차 코로나는 엄청 좋았는데 코로나가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 때 그 코로나 자동차 공장은 내가 사는 도시 ‘인천’에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 시간에 마트에 가자고 하는 집사람 명에 대형마트는 아니지만 평소 자주 가는 곳에 들렀다.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일까? 6시에 여는 마트에 7시30분에 들어섰는데 주차장에서 한 참을 기다려야 했다. 입구에는 “마스크 미착용 고객은 출입을 제한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육코너에서 고기를 옮겨 담고 있는 직원은 마스크가 아예 없었고 생선코너에서 냉동 생선을 고객들에게 챙겨주는 직원을 비롯하여 다수의 직원들은 마스크를 턱에만 걸고 있었다. 집사람이 채소를 고르는 동안 한참을 바라봐도 그들의 마스크 착용은 변하지 않았다. 계산을 하고나서 안내데스크에 “아침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손님에게는 마스크 안 쓰고는 들어오지 말라며 직원들의 마스크 상태는 왜 그런가요?”라고 물었다. 상담직원의 아침 임기응변 대답이 빛났다. “손님들이 직원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마스크를 벗고 말하라고 해서 그래요.” 한 참을 바라봐도 누가 뭘 묻는 사람도 없었는데.


복권이 맞으면 세계일주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복권 맞는 것은 좀 있다가 해야겠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한국인 오지 말라니 갈 데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외교적 역량을 떠나서 다른 나라야 모르겠지만 미국,일본,중국에는 웃음이 나온다. 검사규정을 몇 번씩 바꾸어가며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코로나 탄생지를 다른 나라에 떠넘기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 같은 중국, 검사실태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그래서 숫자가 작은 것임을 감추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이용하려고 한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취하는 것 같은 일본 아베, 역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한국의 의료진이 미국의 보건당국에 코로나퇴치법을 묻고 있다”라고 말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미국 트럼프, 그런데 100여개가 넘는 나라에서 한국에 문을 닫고 있는데 다른 곳에는 적절한 상응조치를 취하지 못하여 많은 국민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유독 일본에만 상호주의를 내세우며 같은 조치를 취하는 우리나라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특정종교단체만 끼어들지 않았어도 우리나라의 기준과 기술로 아마 지금쯤 코로나는 잡혀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그 검사와 숫자의 기준을 다른 나라에 맞춘다면 우리 숫자도 지금의 절반정도로 줄어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고나면 늘어나는 숫자에 이제는 무감각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 곧 감염자가 만 명을 넘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짐작에 우리나라는 3월 안에 숫자가 수그러질 것이고 머지않아 우리에게 문을 닫았던 다른 나라들은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봐도 그 조짐이 보이지 않을까? 곧 우리나라에게 방역에 관한 손을 내미는 나라들이 늘어날 것이며 우리는 그 때 그들에게 문을 닫을지 열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색각이 든다.


마스크? 온 국민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뭘 이야기 하겠나. 코로나 봄바람에 실려 휙 날아갔으면 좋으련만. 코로나가 가면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가 그 뒤에 기승을 부리려나? 중국, 우리에게 좀 도움이 되는 이웃이면 안 되겠니?


2020년 3월 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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