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바구니차와 전기톱에도 봄은 온다

korman 2020. 4. 28. 17:56

     

     

                                               음악 : 유튜브 (평온을가져다주는 첼로 향연 연속듣기)

 

바구니차와 전기톱에도 봄은 온다

 

 

이사람 저사람 이차 저차

분주히 오가는 사거리 로터리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어진

전깃줄 전화선 가지를 머리에 이고

멋없이 긴 키만 하늘로 올려놓은

회색빛 전주 옆에서

모든 가지 싹둑 잘려

전주보다 더한 매끈한 기둥만으로

봄을 기다리던 은행나무를 보았다.

 

 

2년 전 바구니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전기톱을 마구 휘두르며

저리 잘라내도 나무가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가지를 마구 잘랐는데

그래도 또 자를 게 남았던지

지난겨울의 끝자락에서

다시 바구니차를 끌고 와서는

2년 동안 몸통이 애써 길러놓은

그러나 아직 큰바람 맞을 힘도 없는

잔가지들을 치고 또 쳐냈다.

 

 

애처로울 정도로 잘려나간

은행나무 기둥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둥만 남겨놓는 건

다른 나무들 보다 많은 낙엽과

조금은 냄새가 좋지 않은

은행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봄이 오기도 전에 벌써

귀찮아질 가을을 생각하며

풍성해야 할 봄을

만나기도 전에 잘라내 버리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저리 잘리고도 봄을 맞을 수 있을까

빼앗긴 가지를 다시 돋울 수 있을까

창문 열고 내다볼 때마다

인간의 욕심이 과하였구나 생각되었는데

그래도 세월은 나무에도 약이었는지

검은 기둥 꼭대기에 연초록 가지가

아기 손가락처럼 튀어나와 이파리를 키워

은행나무 기둥모습 이제

하늘로 가지 오른 신작로 포플러를 닮았구나.

 

 

아서라 인간아

시커먼 아스팔트길 위에

노란 은행잎 바람에 날리는 것도

회색빛 도시민에겐 한 가닥 안식이 되고

고치에 끼인 그 작은 은행알 몇 개는

맥주 한 잔에 담은 정담의 촉진제인 것을

그리 봄잎 돋는 게 두려워

큰 가지 잔가지 모두 자르고

전봇대를 만들었더냐

아예 몸통에 대패질을 하지

 

 

원예사의 해박한 지식으로

은행나무의 미래를 위한

도시 속 생목환경의 개선이었겠지만

모름지기 가로수란

그 푸르름으로 거리에 그늘을 짓고

먼지에 절인 도시인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그러나

가지 잘린 몸통에 이파리 돋은들

내 몸 가릴 그늘 이루어질까

그래도 그 기둥에 봄은 감싸고돌아

초록 물감을 칠하고 있으니

행여 또 낼 모레 전기톱소리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2020년 4월 28일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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