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잡다한 이야기

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 이야기

korman 2022. 11. 22. 16:22

221116-221121 
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 이야기 - 남태우 - 열린문화

 

이런 걸 추억이라고 해야 하나 기억이라고 해야하나 잘 모르겠지만 내가 술이라 하는 것을 처음 입에 댄 것은 대학에 들어가 신입생 환영회 때라 생각된다. 그 당시 막걸리로 시작하여 ‘도라지위스키’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양주라 생각되는데, 당시에는 그래도 고급술 이라고 그것으로 끝맺음을 했고 그  술을 이기지 못하여 밖으로 나오다 끝내는 모두 계단에 쏟아버린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떠올랐다. 그러나 이 책에 그 도라지 위스키는 소개되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술이라 하면 모두 나라 안에서도 만날 수 있는 세월이 되었지만 양주에 무뢰한이었던 시절이었으니 그 도라지위스키가 나에게는 최고급 술이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위스키 흉내는 냈으되 아마도 도수가 좀 높은 소주에 색소를 섞어 위스키형태로 옷만 갈아입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제목이 술잔과 술꾼이야기로 되어 있지만 내용이 술과 관련된 저자의 에세이는 아니다. 책의 내용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술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 및 그 탄생과정, 유명한 술에 대한 생성과정이나 에피소드, 그리고 술과 관련된 재미있는 뒷이야기 및 유명인들과 얽힌 술과의 우스갯소리나 술에 얽힌 각국의 속담 등을 여러 전문서적으로부터 발췌하여 엮어놓은 술 정보의 요약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쓴 사람도 지은이가 아니라 편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어떤 술자리에서 술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면 이 한권에 요약되어 있는 내용으로 만도 충분이 대화에 응할 수 있는 요소는 갖추어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술을 한 번에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즐기는 편은 된다. 친구들과는 늘 농담으로 ‘酒님’을 가까이 모신다고 한다. 교회 장로출신인 한 친구는 그렇게 농담을 하는 친구들에게 얼굴을 찌푸릴 때도 있지만 그도 한자리에서 소주 2병은 거뜬히 마시는 주당이다. 그래서 그를 두고 더블주님을 모신다고 놀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술은 술시에 마셔야 한다고 한다. 단순히 친구들은 술을 마시는 저녁 시간대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공교롭게도 읽기가 같은 십이시(十二時)의 戌時가 저녁 7~9시 사이를 뜻한다니 술 마시는 시간이 戌時와 한통속이 된 느낌이다. 이 책에서 편자는 술 마시는 시간은 유시(酉時)라 하였다. 이는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라니 퇴근하면서 시작하여 술시까지 마시고 귀가하면 딱 좋은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술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 신이 술을 만들어 동물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었는데 누구에게 줄까 하다가 인간에게 주었다 한다. 그 이유는 인간만이 신과 닮았기 때문이었다나.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는 술과 관련한,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나 신화 같은 게 많이 기록되어 있다. 술 탄생의 과학적 근거로는 모두 부족한 이야기지만 그저 술꾼들의 세속적 표현으로 ‘알딸딸’ 해진 상태에서는 취중 대화로 재미를 이끌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의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편자가 ‘책을 출판하면서’라는 출판의 변으로 첫 페이지에 기술한 것은 술에 대한 오묘함이다. ‘불을 제압하는 게 물 (水克火)’이라 하고 물은 고여 있거나 아래로 자연스럽게 조용히 흘러가는 정적인 것이라 하며 불은 역동적이고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즉 서로 정 반대의 것이 잘 어우러져 극적인 조화를 이루는 것이 술이라 한다. 이렇게 극과 극이 만나 예술적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데 수시로 술을 마시면서도 술이 그 대표적인 조화라는 건 생각하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술에 대한 좋은 지식을 발견하게 되어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기야 독이 되는 것도 잘만 쓰면 약이 된다고 하니 그 또한 조화라 하겠지만 인생에서도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니 인생 또한 술의 성질과 비슷하다고 아니할 수는 없겠다. 그래서 우리는 술을 마시는 지도 모르겠다. 권두에 저자는 라틴어에 ‘In vino veritas (진리는 술 속에 있다)’라 적고 우리말에 ‘취중진담’과 비슷한 말이라 소개하였다. 그런데 그만 활자를 잘못 놓아 vreitas로 인쇄되었다. 오묘한 조화이긴 하지만 진리도 과다한 술 속에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또 하나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듯하여 혼자 속으로 웃었다.

2022년 11월 21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bxuRCOeP7Qc 링크

Saxophone - Historia De Un Amor (Unofficial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