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철부지

korman 2022. 11. 24. 14:05

철부지

 

어느덧 11월도 며칠 남지 않았고 이제 12월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그저 이야기 하던 버릇대로 ‘세월은....’을 읊을 것이다. 매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보다는 같은 세월을 놓고 뭔가 다른 말이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뭐 신통한 건 떠오르지 않는다. ‘구관이 명관’이라 하듯 이것도 ‘구작이 명작’인 모양이다. 아무튼 달력은 어느새 마지막 장을 보인다. 동네 금융기관이나 안경점에서 새 달력을 받아 가라는 문자가 왔다. 그러나 선뜻 받으로 가는 게 내키지 않는다. 스마트폰에서 제공하는 달력을 인식해서가 아니라 세월 가는 게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 일게다.

사람들은 아직 “지금은 늦가을이지”라고 말하지만 계절은 이미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을 지났다. 그런데 길거리엔 아직 반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나도 겉옷은 긴팔이지만 속엔 아직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한낮에는 길거리에서조차 겉옷을 벗을 때도 있다. 산야에 아직 가을 단풍이 보이지만 절기로 따지면 가을인지 겨울인지 구분이 안 된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더욱 그러하다.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도 지났다. 눈은 추워야 내린다. 어제 내가 사는 동네엔 비가 내렸다.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비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가을비라고 불러야 하나 망설여진다. 가을비나 겨울비 하면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건 문학적인 생각이 많을 테지만 ‘소설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라는 옛말이 있고 보니 절기가 반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혹 지구가 반대로 도는 건 아닌지 과학적 지식에 혼미함이 섞여진다.

며칠 전 다녀온 현충사 목련나무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가 가지마다 수북이 돋아나 있었다. 동네 공원의 양지바른 곳 목련나무도 그렇게 되어 있다. 어디에선가는 개나리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봄꽃의 변화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징조다. 그렇다고 상식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대설이 며칠 안 남은 이 시기에 목련과 개나리의 변화에 다시 봄이 왔다고 외칠 수는 없을 터, 봄 같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더라도 온 산야에는 이미 빨주노초의 물감이 선명하게 뿌려져 있고 동네 은행나무 가로수는 그 노란 잎을 바람 속으로 모두 흐트러뜨리고 있으니 이제 곧 마지막 잎새가 창문 밖으로 내보일 것이다. 동네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공터엔 한 무더기의 코스모스가 지금 활짝 피었다. 그리고 앞으로 피어날 꽃봉오리들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지금 사계절이 모두 섞여있는 느낌이다.

세상에서는 그 나름대로 가져야할 상식과 지식을 모르고 아이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일러 ‘철이 없다’, ‘철이 안 들었다’ 혹은 ‘철모르고 날뛴다’ 등등 ‘철’과 관련된 지적을 많이 한다. 정신적으로 나이에 알맞게 영글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써 한 마디로 ‘철부지(철不知)’라고 한다. 철(계절)에 대하여 아는 게 없다는 뜻이 되겠다. 여기서 거론되는 ‘철’이라는 것은 원래 계절을 의미하는 그 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전에도 지금처럼 봄 같은 가을, 겨울이 있어서 철모르고 피어난 꽃들이 있었기 때문에 철과 관련된 말이 생겨났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철없는 사람들을 영어로도 be childish 혹은 be infantile라 한다고 하니 어느 나라에서나 분별력 없는 사람들은 역시 철없는 영유아 취급을 하는 모양이다. 한편 철에는 철(鐵)이라는 것도 있다. 이 철은 무겁다. 그래서 이 철을 지닌 사람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볍게 행동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계절의 철이나 쇠의 철 모두가 철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 같은 목적으로 쓰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나라에 초겨울 속의 봄처럼 철없는 사람들이 많다. 나라가 철든다 함은 나라의 기틀이 완벽하고 나라에 속한 모든 이들이 제 궤도에 올라 공전과 자전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 알맞게 돌아간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나 일부 철없는 사람들로 인하여 공전과 자전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철모르고 피어난 개나리와 목련은 내일 모레 내린다는 초겨울 비와 바람을 맞으면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곧 몸을 움츠릴 것이다. 코스모스도 자신이 늦게 피어진 것을 금방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공전과 자전을 무시한, 즉 상식과 지식을 무시한 철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철이 없다는 것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초겨울 개나리와 목련에 이어 윤중로에 벚꽃이 피면 자신의 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나? 

2022년 11월 24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AJM8btYbDU 링크

Autumn 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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