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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Lunar New year)

korman 2023. 1. 24. 16:50

음력설(Lunar New year)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새해가 시작될 때는 업무상으로 교신하던 해외의 여러 업체들과 개인들로부터 의례적인 연하장이 이메일이나 핸드폰을 통하여 도래하였다. 지금은 이메일 보다는 거의 모든 연하장이 스마트폰을 통한 사진이나 영상형태로 들어온다. 물론 나도 한국적인 그림을 첨가하여 개인적인 연하장을 만들어 보낸다. 그럴 때마다 어떤 문구를 써야할지 고민이 된다. 사람도 같고 업체도 같은데 매해 같은 문구를 사용하는 게 너무 형식적인 것 같아 좀 다른 표현이 없을까 생각하기는 하지만 늘 같은 문구로 회귀하곤 한다. 하기야 다른데서 도래하는 것에도 뭐 특별한 건 없다. 늘 사용하는 "Happy New year!"가 있을 뿐. 개인적으로 좀 더 친분이 있는 사람은 건강이나 가정 등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서양에서 도래하는 크리스마스카드 겸 연하장엔 늘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가 표준문구로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건 종교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도 그 날을 연말연시의 일부분으로 즐기는 게 세계적인 대세이다 보니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그냥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양에서 오는 그런 연하장 문구에 변화가 생겼다. 이슬람권을 의식한 변화로 느껴졌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대신, 특히 크리스마스 표현이 빠지고 ’Holyday Seasons' 혹은 ‘Seasons Greetings'라는 문구만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이야 어느 나라 어느 민족과도 통상을 해야 하니 특정 종교적인 표현을 삼가 하는 게 시대적 흐름에 맞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무슬림들과 일한 경험이 있는 나는 진작 크리스마스는 뺐으니 뭐 별로 새로울 건 없었지만 서양 사람들이 종교에서조차 가지고 있는 그들의 우월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은 것 같아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다.

 

설날 연휴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특히 나이든 층에서는 양력 설날을 ‘신정’이라 하고 음력 설날은 ‘구정’이라 하고 있다. 우리 전래의 명절로 음력의 ‘설날’이라는 단어가 예로부터 사용되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정부에서 국민들의 이중과세를 방지한다고 양력 새해만을 강조하면서부터 ‘설’이라는 게 행정적으로 등한시되던 때도 있었다. 나라에서 그렇게 하던 때도 국민들은 ‘설’을 최대의 명절로 알고 있었고 중국과 동남아권 국가들은 새해를 축하한다는 연하장을 보내오곤 하였다. 서양에서야 음력을 사용하지 않으니 음력 새해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아시아권의 세가 확장이 되면서부터 나에게도 음력에 연하장이 오곤 하였다. 그런데 그 표현이 음력 새해 (Happy Lunar New Year)가 아닌 ‘중국 새해 (Happy Chinese New Year)'였다. 그런 문구가 들어간 연하장을 받고 반가워할 한국인이 있을까. 그 때마다 답장을 보내며 난 한국에서는 Chinese New Year가 아니라 Lunar New Year며 우리 한국에서도 음력새해를 즐기지만 그 용어가 “설(Seol)" 혹은 ”설날(Seollal)"이라 부른다고 토를 달아 보냈다. 그랬더니만 그 다음해에 같은 사람으로부터는 Chinese New Year가 사용되지 않았다. 물론 서양인들이 중국인에게 보내는 것에는 쓰던 대로 썼겠지만. 나도 중국인들에게 보내는 연하장에 고민이 좀 생겼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Chinese를 빼고 “Happy Your 春節 and Happy our 설날(Seollal)”이라 써 보냈다. 요즈음도 그렇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대의 흐름이 달라졌음을 인식하였는지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에게서 오는 연하장에 Chinese가 빠져있다. 대신 Lunar가 들어가 있다. 살펴보니 CNN이나 BBC의 일반 보편적 표현도 그렇다. 아마 중국인들에게는 한동안 누려온 Chinese New Year가 없어지는 추세이니 별로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영국박물관에서 설을 앞두고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의 설 명절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Celebrating Seollal 설맞이'와 'Korean Lunar new Year'(한국 음력 설)같은 표현을 썼다가 중국인들에게서 무지한 댓글 세례를 받고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했지만 안내문에서 '한국 음력 설'이란 표현을 빼고 음력 설 기원에 관한 설명을 추가하는 등 일부 조정을 했으며 댓글에 시달린 박물관 측은 여러 소셜미디어에 토끼를 들고 있는 중국 청나라 여성의 그림을 올리면서 해쉬 태그를 'Chinese new year'로 고쳐 적었다는 인터넷뉴스가 전달되었다 (참조 : https://v.daum.net/v/20230123115302464). 물론 중국이라는 큰 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이 춘절이라 부르는 음력설이고 지금도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많은 중국인들이 이 날을 즐기고 있으니 자신들이 한동안 독점하던 Chinese New Year라는 말이 살아지는 분위기의 타당성을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식백과에서 음력을 찾으면 음력을 사용하던 모든 나라들이 중국식 음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이제 세계적인 추세가 ‘중국음력’의 새해가 아닌 그야말로 비독점 ‘음력 (Lunar calendar)’으로의 표기가 확장되고 있으니 중국이라는 국명이 빠진다고 중국인들이 과한 댓글을 달 일도 아니라 생각된다. 물론 국가에서 댓글달기 운동을 벌렸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 그런 댓글들에 놀라 행사의 안내 문구를 수정하는 영국박물관도 그 이름에 걸맞지 않은 것 같다. 그냥 British Museum이라 붙여진 박물관의 보편적 영문 이름에 그 유명세 이상의 가치를 인정하여 우리는 본 이름에도 없는 ‘대’자를 붙여 ‘대영박물관’이라 불러주지 않는가! 그러니 이름만큼 채신이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한편 2023년 초입에 그런 유명한 박물관에서 우리의 설(Seollal)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는 소식은 중국인들의 댓글 공세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음력 설문화가 Chinese New Year를 벗어나 이제 독자적인 문화로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에 뉴욕 맨하탄 한복판 광고판에서 일제를 몰라내고 국산품의 네온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을 때만큼이나 반가움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Chinese New Year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Lunar New Year라 쓰는 사람들도 연하장의 그림은 중국풍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으며 난 나대로 Seollal문화를 강조하면 되겠다. K라는 알파벳이 어두에 달려 세계로 나가는 우리의 문화가 2023년 검은 토끼의 해엔 더욱 발전되고 온 지구촌으로 계속 뻗어나가기를 바란다.

 

2023년 1월 23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X_lj1zIvsnY 링크

Benny Andersson –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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