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잡다한 이야기

어찌 상스러운 글을 쓰려 하십니까

korman 2024. 5. 14. 17:30

240415 - 240430 
어찌 상스러운 글을 쓰려 하십니까 - 정재흠 -말모이

 

크지도 않은 사이즈에 두껍지도 않은 책을 읽는데 보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긴 시간을 할애해서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책의 크기와 두께를 생각하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데까지는 평소보다 꽤 길었다고 해야 될 것 같다. 물론 중간에 내가 속해있는 모임에서 만들어야할 문서들이 많이 있긴 하였지만 평소대로 아침 시간에 몇 장 지속적으로 읽었으면 그리되지는 않았을 것을 아마 나 자신이 좀 게을러진 모양이다.

 

이 책은 저자가 말하기를 에세이 형태라고 하였지만 일반적인 생활에서 일어난 것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글 ‘한글’이라는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이어 내려온 관련 자료를 탐구하여 한글이 양반층이나 지배층에서 언문이나 암클로밖에는 인식되지 못하였던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한글이 탄생 하고나서 지금까지 변화되는 과정에 이르기 까지 시대를 거쳐 온 각종 학교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글에 대한 에세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일반 독자가 생각하기에는 에세이라기보다는 한글 연구에 관한 한 권의 전문서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또한 이 책속에는 평소에 접해보지 못하였던 역대 국어교과서 및 그 내용에 관한 사진들도 많이 들어있어 책에 대한 흥미를 더하게 하고 있다.

 

우리말 단어의 과반 이상이 한자어로 형성되어 있다. 어떤 자료에는 70%이상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보았다. 내가 학생 때 보던 신문에는 단어는 모두 한자로 표기되고 토씨만 한글로 된 것들이 많았으며 개인의 이름은 무조건 한자로 표기가 되어야 했다. 그 때에도 한글은 우리글로써의 역할을 무시당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 때에도 한글날은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식층에서는 한글로 표기하여도 모두 그 뜻을 알 수 있는 단어를 굳이 한자로 표기하고 있었다. 그러니 한글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지식층 양반님들에게는 일반 백성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상놈 계급층에서까지 누구나 쉽게 익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데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고 중국에 사대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한자에 대항하는 우리글이 생겼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요즈음도 나이가 든 분들이 이야기하는 중에 ‘유식한 사람’이라는 말의 뜻은 어려운 단어, 즉 ‘한자로 구성된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 한글에 대하여 가장 궁금하였던 것은 삼일절 기념식에서 낭독되던 ‘독립선언서’에 관한 것이었다. 그 독립선언서를 보면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로 시작이 된다. 내 생각에 3.1운동 당시만 해도 이렇게 한자어로 쓰여진 선언문을 제대로 읽고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일반 백성들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고 차라리 그 선언문을 우리말로 풀어 한글로 썼다면 일반 백성들에게는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을 텐데 이 선언문 역시 모두 한자로 표기되고 토씨만 한글로 적혀 있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었다. 그 당시 아마도 내가 한자를 모르는 나이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3.1절 기념식에서 낭독되는 선언서가 낯선 것은 그 때와 비슷하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가 더 좋지 아니할까?

 

한 때 한자에 취약한 젊은 세대들 중에는 기성세대들이 한자와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면 중국에 사대한다고 하였다. 나이를 먹은 나도 한자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그 일침에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였고 그냥 한글로 적어도 뜻이 통할 수 있는 범용적인 일반 단어들까지도 굳이 한자로 표기하는 것에 동조하기가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요즈음도 무언가에서 좀 권위를 찾고 싶은 분들이 모인 곳의 간판을 보면 100% 한자로 표기한 곳들이 종종 눈에 뜨인다. 한글로 표기하여도 어떤 곳인지 다 알 수 있는 곳인데도 굳이 모두 한자로 표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요즈음 일부 젊은 세대들은 그런 분들이 한자어들을 즐겨 쓰는 만큼이나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를 우리말에 섞어 사용하거나 한글에 외국어를 섞어 표기한다. 심지어 공신력을 가지고 올바른 표현을 하여야 하는 방송에서조차도 국어와 한글을 망가트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우리말 단어에 해괴하게도 영문자 LER을 섞어 ‘000러’ 혹은 우리말 동사 뒤에 영문자 ler를 더 써 넣어 명사를 만드는 행위 같은 것이다. 또한 전 세대가 잘 사용하고 있던 문화는 ‘컬쳐’, 생활은 ‘라이프’, 잡지는 ‘매거진’, 아이들는 ‘키즈’, 엄마는 ‘맘’....수도 없이 많은 단어들이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데 앞장 서야할 전문기관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다. 정부기관들이 행하는 사업명도 한 몫 한다. 어린이 보호 건널목은 ‘옐로 카펫’, 안전 먹거리지역은 ‘그린 푸드존’....뭘 일일이 열거할까만 그래도 한글날이 오면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자고 많이들 앞장선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한 번 생각한 것은 외래어 표기법이다. 한글의 큰 장점 중에 하나가 외국어 발음을 거의 비슷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그들의 문자로 채택하고 있어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전 세계에서 한글밖에 없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국내의 외래어 표기법은 그 장점을 뒤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얼마 전 까지 일본의 수도 표기를 ‘토쿄’라고 하였다. 요새는 ‘도쿄’라고 표기하고 있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도쿄라고 쓰고 일는 건 ‘도꾜’라고 읽는다. 그냥 도꾜라고 써도 될 텐데 왜 굳이 도쿄라고 써야 할까? 음악 장르에 ‘록’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자막은 록이라고 나오는데 출연자들은 다 ‘롹’이라고 읽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우류 중에 로브스터라는 게 있다. 그런데 방송에서 이런 자막이 나오면 그림을 보기 전에는 모두 잘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뢉스터’ 혹은 ‘랍스터’로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어와 미국어의 발음에 대한 차이도 있겠지만. 한글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외래어 표기법의 존재가 아쉽기만 하다. 내가 늘 즐겨 쓰는 말 중에 영어의 영자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맥도널드 햄버거”라 한글로 쓰고 외국인에게 그 한글을 읽어주면 못알아 듣는 사람들이 없다.......이게 한글의 자랑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생각하였다. 이 책은 중학생인 손주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책이다.

 

2024년 5월 14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A5tfQi92UI0 링크

Canon in D (Pachelbel) - Viola &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