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인, 아름다운 생각
지난 달 후배의 소개로 패션 관련 프로그램을 협의 하고자 방문하였던 회사는 최근에 패션잡지를 창간하여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회사였다. 그 회사의 기획실장을 만났다. 처음 대한 그 회사의 패션잡지는 6개월에 한번 발간하는 것으로 두 종류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구성이 여타 기존의 패션잡지들과는 매우 달랐으며 참 독특한 것이었다. 기사는 거의 없고 사진들만으로 꾸며졌는데 디자인소개, 옷감소개 부분분석등 아주 최소한의 필요한 기사만이 있을 뿐 패션잡지라기 보다는 디자인의 추세를 분석한 6개월간의 패션사전이라고 하여도 좋을 그런 잡지였다.
그런데 그 구성보다도 더 독특한 것은 관련 기사였다. 보통 외국에 나가는 잡지는 해당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나가는데 이 잡지는 우선 한글기사가 먼저 실리고 그 아래에 영문으로 번역된 기사가 같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수입국에서 한글을 빼달라고 하면 수출을 거절한다는 것이었다. 잡지의 구성이 특이하다보니 해외 유명 잡지회사에서 그대로 수입한다고 한다.
수출하는 잡지에 한글을 우선하는 이유를 물은즉 그 잡지사 사장의 한글사랑 및 한글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라고 했다. 사장에 대하여 물은즉 젊은 여성으로 이제 한글도 세계적으로 커 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드는 잡지에 한글이 우선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라고 했다. 사업의 성패를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마음을 숙연해지게 만드는 분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한글 때문에 사가지 않겠다면 필지 않겠다. 사업하는 사람 중에 이런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사를 나눈 젊은 친구가 내 명함을 보더니만 참 독특하다고 한다. 순 한글에다 뒷장에 영문 겸용도 아니고 팩스는 전송으로, 핸드폰은 손전화로, 이메일은 전자우편으로 적은 것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묻는 그에게 언젠가 까페에 올린 글에서 밝혔듯이 지금까지 출장중 외국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한국에 한국글이 있느냐 한국말이 있느나” 라는 질문 때문이라는 대답에 눈을 크게 뜬다.
내친김에 트렌드가 어찌어찌 하다고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그 친구에게 한마디 던졌다. 패션쪽의 일을 하신다니 농담 한마디 하겠다고. “블랙과 화이트의 심플한 면과 레드와 그린의 칼라풀한 면이 컴비네이션된 유니크한 트렌드가 내년 패션의 메인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라는 말 공감하십니까?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우리말을 왜곡한다면 100년 후 우리말은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이 말에 그 친구 앞으로 트렌드라는 말도 조심하겠다고 한다.
최근에 어떤 단체에서 아이들의 등하교를 안전하게 하겠다고 일정 지점까지 아이들을 인솔하여 어머니께 인도하는 좋은 일을 구상하였는데 그 명칭이 “워킹스쿨버스”라고 한다. “어머니폴리스” “스쿨풀리스”이 이어 나온 또 하나의 신조어이다. 좀 더 우리말을 연구한다면 아이들에게 친근감 있고 우리말을 훼손하지 않는 명칭이 생겨날 것 같은데 굳이 이런 말도 안되는 영어표기를 해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외국어를 말하는 것과 우리말에 마구잡이로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것은 다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외국어를 잘 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그럴수록 자국어에 대한 사랑도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말 표현이 없어 외래어로 지명된 외국말들이야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전문직이라고 우리말이 엄연히 존재하는 단어들을 외국어로 바꾸고 우리말은 토씨만 남겨야 하는 것일까? 100년 후에는 6가지 언어 밖에는 남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 때쯤 우리말과 글은 어디에 가 있을까?
그 잡지사의 여사장이 다시금 존경스러워진다.
2007년 4월 열두번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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