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영어로 말한다는 것

korman 2007. 3. 24. 15:15
 

인천박물관에 있는

중국 원나라 철제 범종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호


지금은 그 열기가 많이 식었지만 몇 년 전에는 영유아 및 초등학교 자녀를 가지고 있는 젊은 주부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자녀에 대한 영어교육 열풍으로 무조건적으로 영어영상교재, 즉 비디오나 CD, DVD 등을 아이들에게 사주는 것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 이로 인하여 아이들의 교육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영상물이나 내용이 아주 조악한 프로그램들까지도 조기영어교육교재라는 화려한 포장이 씌워져서 판매되곤 하였다.


지금도 조기 영어교육의 열품은 가시지 않고 있다. 과거와 같은 영상교재를 무조건적으로 아이들에게 사 주는 풍토는 많이 살아진 것 같지만 아직 부모 곁에서 많은 것을 종합적으로 배우고 자라야 할 아이들을 영어 조기교육이라는 핑계로 낯선 외국으로 내 보내고 있다. 내용도 파악하지 않고 껍데기만 화려한 영상교재를 마구잡이로 아이들에게 사다주는 부모를 볼 때도 그랬지만 한창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등 떠밀어 외국으로 내 보내는 부모들을 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에서 인지도가 높아졌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영어교육은 필수 조건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앞날을 이끌고 나가야 하는 세대들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현대와 이어지는 미래를 살아가려면 영어는 제2의 모국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조기 교육의 열풍이 과연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으며 여기에 유행과 우월감을 쫒는 부모들의 사치심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도 나의 일이 영상 교육교재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인 관계로 몇 가지 아이들 영어교육교재를 미국과 영국에서 라이센스하여 국내용으로 제작, 판매한 경험이 있다. 두 나라의 교육교재를 비교하였을 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영국에서 만든 교재가 훨씬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쪽은 언제나 미국에서 만든 교재였다. 설사 그것의 내용이 영국교재 보다는 훨씬 못 미친다는 설명을 하여도. 


영어교재를 만들고 교재 전시회도 나가고 한다 하니 주위에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어떤 교재를 추천하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물음에 나는 항상 영국 교재를 추천하였고 그 중에서도 가능하면 BBC에서 만든 교재를 권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누구에게서나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똑 같았다. “그거 영국발음이잖아요? 미국발음 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럴 때 마다 나는 언제나 “미국식 영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영국영어가 영어의 표준이고 미국식 영어는 자라나면서 자동으로 알게 된다. 따라서 나는 처음에 표준말에 충실하기 바란다. 그러면 나중에 자라서 영국식, 미국식을 동시에 잘 하게 된다.......어저구 저쩌구”  나의 생각을 부가 설명을 하여 주지만 모두가 미국식 영어 앞에서 영국식 영어에 대하여는 무관심이다. 미국발음만을 고집하는 부모들의 대답은 모두 유사하다. 미국식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니까 미국발음을 해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남의 나라 말은 아무리 완벽하게 잘 한다고 하여도 그 나라 사람과 발음이 똑 같을 수는 없다. 그곳에서 태어나거나 어렸을 적부터 그 나라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그 나라 사람이 들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표가 나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아무리 서울 말씨를 써도 황해도 사람이 들을 때는 나의 집안이 황해도 출신 이라는 것을 알듯이. 민족마다 구강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며 자국어를 항시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금 난 우리의 영어교육에서 그렇게 고집하는 그 미국발음에 대하여 좀 짚어보고 싶다. 


전시회에 나가면 세계를 여행 것 같이 단시간에 많은 민족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 각기 다른 민족들은 의사소통을 영어로 한다. 따라서 영어의 위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유창하건 유창하지 못하건, 발음이 좋던 바쁘던, 억양이 투박하건 부드럽건, 높낮이가 자연스럽던 부자유스럽던 간에 서로 간에 의견 교환을 하고 거래를 하고 또 토론도 이어진다. 그런데 그게 우리처럼 모두 미국발음으로 이루어질까? 그 많은 사람들 중에는 물론 미국 발음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제3국인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영국발음이 기본이 되고 그 위에 그 나라 민족 특유의 발음이 더하여진다.


몇 해 전에 어느 무역회사에서 사원들에게 영어 재교육을 영국식 발음으로 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미국식 발음에 익숙한 사원들이 영국식 발음을 못 알아들어 제3국과의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어 그리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큰 교역상대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미국과만 교역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모국어를 쓰면서도 미국인과 영국인도 서로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다. 영국인들의 말을 빌리면 미국인들은 English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merican Language를 사용하기 때문 이라는 뼈있는 농담도 하지만.    


그렇게 미국발음에 목매다는 부모들도 자녀들이 학원에 나가게 되면 어느 나라 선생이 가르치는지는 따지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코 큰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학원 유명세가 있느냐 없느냐를 우선적으로 따질 뿐. 그리고 아이들을 유학 보낼 때도 호주, 뉴질랜드, 심지어는 필리핀으로도 보낸다.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보다도 더 이상한 영국발음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

   

다행이 한국인의 구강구조는 영어 발음을 다른 민족 보다는 잘 하는 축에 든다고 한다. 특히 영국영어발음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영국인에 가깝게 발음 할 수 있는 민족이 한국인이라는 영국신문을 인용한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래서 노력하면 미국 발음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미국발음에 집착하여 영국발음을 못 알아듣는 교육이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언어의 기본적인 목적은 상호 의사소통에 있다. 나의 미국식 영어 발음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제로 이 지구상에서 미국과 카나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영국식 발음을 기초한 그들의 발음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발음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상대의 발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그 보다 앞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예의를 갖춘 영어를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할아버지의 물음에 “야” 대신에 “예스”라고 대답하기 바라고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다고 배우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미국발음이 되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꾸짖기 이전에 미국과 영국의 각기 다른 표현의 차이를 가르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 아이들을 미국속의 한국인이 아니라 세계속의 한국인으로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 3월 스무네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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