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흐름속으로/내가 쓰는 이야기

커피 한잔의 아침

korman 2007. 3. 6. 00:35
 

때때로 인간의 뇌에도 자명종 시계가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간밤에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아침에 늘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지고 버스나 전철에서 잠이 들어도 대개는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을 의학적으로 표현하는 전문용어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늘 그렇듯이 오늘 아침에도 6시경에 눈을 떴다. TV를 켜고 커피포트에 원두커피를 머그잔으로 연하게 두어잔 나올 분량만큼 넣는다. 유리로 된 원두커피 보관통을 열 때 퍼져나오는 커피향은 선잠을 깨워줌은 물론이고 이른 아침의 기분을 한껏 상쾌하게 하여준다.


TV를 틀어 놓고도 이 시간 종이로 된 신문을 펴지 않으면 무언가 무척 허전하게 느껴지는 기분은 오랜 세월동안 배어진 습관이기도 하겠지만 신문에는 TV에서 느끼지 못하는 정감과 향수가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머그잔 하나 가득 따르고 우선 각 기사의 타이틀을 살펴본다. 내가 생각하여도 이른 아침의 신문과 한 잔의 연한 커피는 무척 잘 어울리는 파트너가 아닌가 생각된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신문의 정치, 사회, 경제의 타이틀과 겹쳐지며 자세한 신문 기사를 읽을 필요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물끄러미 사회면의 타이틀을 바라보다 너무나도 상반된 두 기사에 눈이 멈춰버렸다. 하나는 어느 할머니의 전 재산 헌납 기사였고 또 하나는 대학입시에 합격한 자녀에게 그랜저 승용차를 선물한 부모의 이야기였다.


할머니께서는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자식도 없이 평생을 수절하며 생활보조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재활용품을 모아 마련한 당신의 전 재산 500만원을 당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모두 기탁 하였다고한다. 은행에 가다 혹시 나쁜 일이나 당하지 않을까 하여 베개 속에 간작하였던 당신의 피와 살점 같은 돈을. 이것은 아침에 호화롭게 커피잔을 들고 TV를 보며 신문을 들척이면서도 무언가를 손에 더 쥐어보겠다고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나에게 잠시나마 허공을 응시하게 만드는 기사였다.


한편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였다고 외제승용차를 선물하려다 주위의 눈을 의식하여 그랜저 승용차로 바꾸어 선물하였다는 기사에서는 신문을 덮고 말았다. 사회 통념으로 선물 받은 그 아이의 이야기가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기 때문이다. “고생한데 대한 보답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대학에 합격한데 대한 부모의 보답? 이 말을 어찌 해석해야 할는지 커피 한 모금을 꿀꺽 소리 내어 마신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 어디에 어찌 쓰던 누가 탓 할일은 못되지만은 너무나 극명한 두 기사에 오늘 아침은 커피를 좀 진하게 끓였어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려본다.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상쾌한 커피향을 더해 드리고 싶다.


2007년 3월 다섯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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